경희대 치과대학 13기… 79학번, 1960 년생.
1979년 3월 입학, 1985년 2월 졸업. 면허 번호 5033 , 나의 치과의사 이력이다.
경희대 치과대학 졸업 30주년…졸업 30주년 기념여행.
20대 초반에 입학하여 ,치과대학 6년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동기생들…
학창시절 6년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36년을 함께 해온 동기생들.
졸업 30주년 행사를 위해 1년간 곗돈을 모아서 준비해 온 우리 50대 중반의 남녀동기동창들.
졸업20대 초반에 입학하여, 치과대학 6년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동기생들…
학창시절 6년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36년을 함께 해온 동기생들. 40명은 지난 5월 23일 5월 25일 , 석가탄신일을 낀 연휴에 2박3일의 졸업 30주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는 전날 밤, 개인적인 행사로 새벽 1시에 겨우 귀가하여 여행 짐을 꾸리기 시작하면서나의 졸업여행은 시작이 되었다. 설레이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교차하여 잠을 잘 생각조차 하지않고 충혈된 토끼눈으로 밤을 꼬박 새고, 새벽 5시 인천공항행 첫 셔틀 버스에몸을 싣고 가는 동안, 셔틀버스를 놓치지 않고 무사히 탔다는 안도감에, 그간 나를 눌러왔던 어깨의 짐이 다 내려진듯, 날아갈 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인천공항으로 달려가는 한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꼭두새벽부터 서로들 알람문자로, 카톡으로 깨워주고, 챙겨주며, 007 첩보작전을 방불케 현재 자신들의 이동경로를 카톡으로 생중계 보고하며, 전국 각처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우리들은 50대중반이 아닌, 수줍은 20대 치과대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경희치대 13기 동창들, 1979년 입학당시 80명, 졸업은 100명, 이중 어어쁜 8명의 여학생들.
여학생들 중 반은 이미 재학중 남자동창들에게 찜을 당해 , 과커플을 이루며 6년 함께 붙어다니며 학창시절을 보내어, 싱글족들의 부러움을샀고, 남자 동기 중 2명은 용감하게도 여자선배 수련의에게 구애를 하여, 결혼까지 골인을 했으며, 나머지여자동기들도 든든한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개업을 했고, 한달에 한번, 적어도 두달에 한번은 만나며, 지금까지 끈끈하게 변치않는 30년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특별한 동창들이다.
필자의 선친께서는 “동기 동창 남자들과는 절대로 사귀지말라!”는 엄명을 예과 1학년때부터 내리셔서, 치과대학 6년 내내 남자 동창들에게 별 관심을 두지않았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가까이서 찾을것을… . 미국 대학의 교수로 계시던 작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필자는 초등학교때부터 미국유학의 꿈을 키웠다. 매년 여름방학때 마다 한국에 나오시는 작은아버지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고 들으며, 팝송과 영어공부를 일찍부터 하였으며, 예과 2학년인 1980 여름방학 때, 선친을 조르고 졸라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린 세계치과대학생 회의에 참석을 한것이 내 인생의 첫 해외여행이었고, 이 해외여행을 끝내고 난 뒤 부터, 나는 “치과대학 졸업후 반드시 유학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다. 1985년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1986년 결혼과 동시에 부부유학생으로 미국유학을 떠나, 1992년에 6년의 미국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경희의료원 교정과 대학원으로 다시 들어가기전까지, 대학 동기들의 소식들을 잘 접하지 못하였고, 결혼식에도 참석을 못했고, 졸업후 전국으로 흩어져 개업하고있는 동기들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은 터라, 여행가기 전부터 누가 오는지 무척 궁금하였고, 가족 및 부부동반으로 참석하는 남자동기들도 있다는 소식에 졸업여행이 더 기다려졌다. 의,치,한의과 및 간호학, 약학 등 의약계열이 모두 한 건물에서 공부해던 의약관 시절, 낡은 의약관 건물에서 밤늦게 공부하다가 나와서, 원형극장 옆 음악대학을 산책하며 듣던 감미로운 음악소리는 별천지 같이 느껴졌고, 원형경기장 계단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노래소리를 부르며 잠을 깨우고, 재잘대던 그 시절, 쌓인 공부에 대한 중압감으로 봄꽃향기, 가을 낙엽 가득했던 축제기간에도 마음편히 즐기지 못했던 그 시절, 난방이 되지않는 의약관실험실에서, 얼어서 뻣뻣해진 회충 샘플을 꺼내서 꽁꽁 언 손 호호 불어가며 스케치 하던 예과 시절, 동물해부학 숙제를 한다고 닭 한마리를 삶아서 살은 발라먹고 뼈만 추려서 골격을 맞추어야했던 방학, 진저리 나는 병리학 현미경 슬라이드 땡 시험, 눈이 푹푹 쌓였던 의약관 밑으로 체육대학 내려가던 지름길이었던 계단길. 어느해 무척 추운 겨울, 그 눈 덮인 미끄러운 계단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계단 바닥 끝까지 엉덩이 꽁지뼈를 통통통 부딪치며 내려갔던 남자 동기생의 일화는 아직까지 배꼽 빠지는게 웃는 주제가 되었다. “여기서 미끄러지면 꽁지뼈 부러지겠다”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을 붙잡아줄 겨를도 없이 호리호리한 몸매였던 친구는 엉덩이를 계단에 부딪치며 혼자 내려가고 있었고, 우리는 너무 놀라서 계단위에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웃음도, 울음도 나지 않았던 그순간, 한참을 지나서야 우리는 계단 맨 밑바닥에서 주저앉아 정신 놓고 있는 친구를 부축했다.
아름다운 대학시절은 이렇게 우리들 곁을 지나 30년의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인천공항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은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았으며, 대부분의 동기들은 30년이 지나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에, 익숙한 목소리로 대학시절 그 모습, 그대로 인 것이 너무나 다행이고 신기하기 까지 했다. 남편을 따라 온 부인들, 가족들도 대학시절 미팅할 때의 그 모습으로, 편안하게 여행에 동참하게 되어 우리 동기들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독차지하며 여행 내내 즐거웠으리라 믿는다.
우리 13기 동기들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들이 많았다. 박사학위 받은 사람이 제일 많았으며, 학교에 교수로 남은 재원들도 많았고, 전국 각처에서 유능한 치과의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동기들이 제일 많은 기수이다. 우리 13기 동기들 중 제일 먼저 박사학위를 받은 신구대학교 허성윤 교수, 메스컴에 명의로 자주 거론되는 구강외과 이백수 교수는 6년 내내 일등을 도맡아해서, 일찍부터 Surgeon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탁월한 실력의 소유자, 대한여자치과의사협회장을 맡아 여자치과의사의 공적인 지위를 격상시킨 재색을 겸비한 최영림원장, 임플란트 수술의 1인자 이며 신의 손을 가진 박원배 원장, 지방에서 제일 큰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김철수 원장과 오세웅 원장, YAP레이저 신경치료의 일인자 박선희 & 조종만 박사 커플, 아들 셋 미국서 교육 시키느라 잘되는 병원까지 문 닫고 미국으로 들어간 재벌집 사모님 신현미 원장은 재벌집 사모님 답지않게 소탈하고 방학때 마다 한국에 나올때면 친구들 선물을 바라바리 챙겨서 먹여주는 참으로 따뜻하고 완벽한 여성스러운 친구이다. 함께 치대 밴드 Molars 멤버였던 제주도 토박이 은발 신사 김경락 원장은 19대 와이즈맨 총재 취임식을 끝내고 혼자 상해로 오는 열정을 보여준 멋진 친구이다. 베이스기타,기타, 섹소폰 등 못하는 악기가 없을뿐 아니라, 제주도 오케스트라 단장직을 맡고 있으며, 윈드서핑 실력도 프로, 골프실력도 프로인 사나이 중의 사나이, 지면 관계상 더 많은 유능한 동기 친구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한눈 팔지 않고, 제 역할을 묵묵히 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기친구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편안하다.
이번 졸업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동기생 40명 모두가 한방에서 다 함께 발 마사지 받았던 밤이었다. 50대 중반의 남녀 친구들이 모두 누워서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리고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며, 여행에서 피로한 다리를 마사지 받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서로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아픈 곳 한번 더 보듬어 주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고, 걱정해주면서 2박 3일의 행복한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렸다. 오십이 넘는 나이가 되면 친구들도 남녀 구분이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동기들 모두 건강하게, 천직인 치과의사의 길을 굳건히 지키며, 우리의 우정을 오래오래 변치말자 !!!
경희치대 13기여 ! 영원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