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修鍊(수련)과 瞑想禮讚(명상예찬)

2023.04.12 14:46:35

Relay Essay 제2548번째

목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봄비님이 내리는 축복의 날에 휴진을 하는 목요일이므로 어김없이 온전히 홀로 있음을 경험하며 절 수련과 명상을 하고 난 뒤의 투명한 내 자신을 본다.

 

깊은 충만감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이러한 행위는 나에게 있어 너무도 귀한 시간이다.

 

법정께서 자신만의 투철한 자기질서를 가져야 한다는 귀한 말씀을 남겨 주신 덕분에 나만의 투명한 자아를 완성하기 위해 일상속에서 경건하게 촛불을 밝히고 매주 2번 나를 붙들고 있는 수행이 있으니 절 수련과 명상이다.

 

“절”이란 저를 낮춤의 줄임말이라는 뜻이 있듯이 절 수련은 나를 낮추는 닦음이니 감사의 마음을 얻는 것이요, 그로 인해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현상이 모두가 나와 무관하지 않고 고마운 존재임을 깨닫게 되어 시야가 넓어지게 하는 좋은 수행법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서 비로소 타인의 고유한 모습이 보이는 법입니다. 명상은 몸의 건강을 회복(가부좌를 하면서 복식호흡을 하기 때문)하고 사색의 힘을 키워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기적인 삶이 아닌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하나의 닦음으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자연인으로 살아가면서 음양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동적인 운동(절)과 정적인 운동(명상)을 생활 속에서 동시에 하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모든 에너지는 한번 발생이 되면 소멸되지 않고 우주 저 끝까지 영향을 주고 또 다른 형태나 현상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나타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고 물이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고 이 수증기가 비의 형태로 다시 물로 되었다가 온도가 낮아지면 다시 얼음이 되는 것처럼 자연현상에서 이와 같은 순환의 현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절을 할 때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원하는 에너지는 절대 소멸되는 법이 없고 그 대상에게 온전히 옮겨갈 것입니다.

 

어릴 적 우리들의 부모님이 정한수 떠놓고 자식들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던 것과 같은 의미이리라! 에너지의 전달에 있어서 파동의 개념에 비추어 봐도 기도나 절을 통해 대상에게 행위나 마음으로 직접 전달하는 것이 神(신)이라는 제삼자가 가운데 끼는 것보다 오히려 효과가 클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온전히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내 이웃을 위해 간절히 기원하는 이러한 행위의 에너지는 절대 소멸되는 법이 없고 그 대상에게 온전히 옮겨갈 것입니다. 이러한 절을 올리다 보면 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어 있으며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더 나아가 지구와 우주의 평화로운 질서를 위해 간절한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는 이 세상의 자연은 얼마나 눈부신지요? 내 주위에 있는 부모형제들은 또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가요? 또 나를 알아주는 주위의 지인들은 어찌하여 내 주위에 맴돌며 나를 돕고 있을까요?

 

이 세상은 우연이란 없고 인연의 끈을 넘어 필연으로 엮어져 있고 내 이웃 또한 나의 부름에 응답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도 고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인 ‘시크릿’과 ‘에너지 버스’라는 책이 우리들에게 인기가 좋아 많이들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들 책의 요지는 나로부터 나오는 긍정적인 생각 및 에너지는 주위에 흘러 들어가 비슷한 파장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내 주위에 끌려와서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과 현상이 나타나게 되므로 긍정적인 좋은 생각을 하며 살라는 것이다.

 

예전에 TV에서 “절”에 대해 자세하게 방영이 된 것을 본적이 있다. ‘1.8평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중증의 병자가 절을 해서 좋아졌다는 내용이다. 막연한 대상을 향해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과 처와 자식 그리고 부모형제, 친척을 위해 그리고 나의 주위에서 좋은 에너지를 주고 있는 분들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의 내용을 자세히 적시하고 대상자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일배, 일배를 올리는 것입니다.

 

절이라는 행위는 결코 어느 종교의 전유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간절한 마음이 없이 막연히 천배, 삼천 배를 드리는 것은 단순한 운동일 뿐입니다.

 

다음으로 명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법정선사께서 이르시기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딱 2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경험에 의한 것이요, 둘째는 명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아주 귀한 지혜의 말씀으로 나는 이 말씀을 온전히 담고 있다. 법정께서 하신 충만함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제는 담았다고 자부해본다. 요즘 현대사회에서 넘치는 정보에 의해 우리의 뇌는 혹사당하고 있음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명상이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을 위한 명상인가? 간단하게 표현하면 지식덩어리인 단단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어리석게 살아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如實知見(여실지견)의 맑고 투명한 본성을 찾기 위한 연습 아니겠는가?

 

명상이란 궁극적으로 사색의 힘을 길러서 자신만의 투명한 내면세계를 통해 영혼의 자유로움을 얻기 위함입니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임을 알아야 합니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습니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고 법정선사께서 일러 주셨습니다. 비우고 닦는 이러한 행위를 하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신성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어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나아가 남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자연을 사랑하며 충만함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물질 만능주의에 흠뻑 적셔져 있는 자신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들을 잠시 접어두고 명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인 풍요로움을 얻고 자연을 공경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소유는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가? 나를 내려놓고 덜어냄으로써 가능한 일임에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자신을 비워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명상을 해야 합니다. 심신의 가득참을 느끼면 주위의 모든 현상이 눈부시게 고마운 존재로써 자신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무아지경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명상의 일종입니다. 장인들이나 농부들이 일하는 것도 명상이므로 이들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선하고 자연에 가까운 자연스러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절과 명상을 함으로써 한 생각 일으켜 한 사람의 좋은 생각이 자신을 맑게 하고 이웃을 맑게 하여 그 청정함을 사회에 메아리로써 발현된다면 이 사회를 맑고 향기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박현배 전주 박현배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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