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나는 오늘은 인생 가장 젊은 날

2023.07.05 15:17:39

Relay Essay 제2560번째

생물학에서 말하는 세대(世代)는 일반적으로 한 생명체가 태어나서 생활사를 마칠 때까지의 기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회학에서 말하는 세대는 일정한 기간(약 30년)을 한 단위로 하는 연령층으로서, 이들은 공통의 체험을 토대로 해서 그들이 갖는 의식이나 풍속을 공통으로 공유하는 연령층을 가리킨다고 한다.

 

86년 당시에는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9살과 20살 정도로 일률적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입생들이 모였었다. 신입생 시절 수업시간에 왜 치과대학에 지원했는가에 대한 발표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 동기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던 내용은, 아버지는 약사인데 자전거로 출근하시고, 2층의 치과의사는 차로 출근해서라는 답변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한바탕 웃고 지나갔지만, 92년에 졸업해서 치과의사로서 30년을 지내고 보니 정말 심오한 내용이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우리 경희치대 20회 졸업생들은 여러 면에서 감사한 마음들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남들보다 다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대학의 전공을 선택했던 이유였던 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고, 이제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보니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문득 느껴가고 있었고, 그때 젊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 같다. 사회학적으로 한 세대인 ‘30년’이라는 세월은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각종 동아리 모임에서 술 마셨던 이야기, 잘 정리된 노트로 시험 본 이야기, 땡시험이나 재시 와 삼시로 조마조마했던 순간들, 수업시간의 다양한 해프닝 등 당시에는 몰랐던 이야기도 정말 많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삼 다시 떠올려보았다.

 

지난해로 졸업 30주년을 맞이했지만, 최근 몇 년간 코로나로 기념 여행을 계획하기 어려웠다가, 올해 6월 연휴에 경주로 제법 많은 친구들이 함께 다녀왔다. 6개월 전부터 세심하게 준비해준 친구들 덕분이었다.

 

첫날 오후, 정원이 예쁜 카페에서 학부 시절의 번호순으로 자신의 최근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그 시절과 같이 웃고 박수치고 공감하면서 떠들다보니, 어느새 20대 초반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그 시절 MT와 같이 한방에 모여서 캔맥주를 마시면서 예전 이야기도 나누었다.

 

다음날, 골프팀은 번호순으로 조편성을 하여 진행하였고, 관광팀은 구룡포 바닷가 해변에서 대게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예전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한창때 나이트에서 추던 춤으로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친구도 있었고, ‘영일만 친구’를 노래방 테이블로 올라가서 열창하는 친구도 있어서,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골프팀 친구들이 골프를 하는 동안에, 관광팀으로 포항 구룡포에 다녀와서인지 영일만 친구의 가사와 동해 바닷가의 모습이 어우러진 그런 밤이었다.

 

젊은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여어어엉 일만 친구야

 

 

즐거웠던 일정을 마치고, 여행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이번 여행에는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했던 친구들을 초대하여 반가운 인사들을 나누었다.

 

문득 어떤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는 젊은 시절의 날카로움이 무뎌지고, 이해의 폭이 커지는 것이 좋게 늙어간다는 것이라는 말이 등장하였다.

 

언젠가부터 내 몸은 그렇게 말하지만, 마음만은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던 중에, 몇 년 전 서울시청 앞에 걸려있던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문구에 감동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적어보았다.

 

그런데 한 친구가 말하기를 “유성아 나 익기 싫어”라는 말에 아차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친구에게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노래 동영상을 단톡방에 올려주었고, 출퇴근길에 수십 번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눈물마저 맺힌 것은 정작 나였다.

 

젊고 어린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 늙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렵고 슬픈 것이 어쩌면 솔직한 심정이다. 아무리 익어간다고 좋게 표현해보지만 유쾌한 과정은 아닌 것 같다.

 

저녁 시간에 20대인 딸에게 이번 여행과 동기 단톡방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젊음이 재산이고 소중한 가치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아빠도 20대 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대화는 그렇게 단절되었다. 야속했지만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젊은 시절에도 그만큼의 어려움과 아픔이 있었던 것 같고, 그렇게 말하는 어른 세대들에 대하여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어차피 세월을 지내고 나서야 젊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저 덕분에 20살 풋풋했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고, 젊은 시절의 날카로움도 무뎌지고, 세월과 추억의 소중함을 느낄 수도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30주년 졸업 기념 여행용으로 제작한 현수막의 문구가 생각났다.

 

‘우리 만나는 오늘은 인생 가장 젊은 날’

 

40주년 졸업 기념은 9년이나 남았는데, 이제 우리가 기다리기에는 너무 멀다. 그냥 입학 40주년인 2026년에 더 많은 친구들과 건강한 모습으로 더 멋진 여행을 가고 싶다.

 

최유성 전 경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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