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는 오늘, 이런 생각을 했다...”
배철수 성대모사였다. 40대 남자라면 그저 목을 조금 눌러서 목소리를 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배철수 성대모사라고 생각했다. 조회를 시작하면서 직원들의 주의를 끌어보고자 그렇게 회심의 성대모사를 했다. 내 귀엔 꽤 비슷하게 들렸다. 반응이 없고 좀 어리둥절해 보이는 직원들, 그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희 배철수 몰라요...”
그랬다. 우리 직원들은 배철수를 모르는 세대였다. 나이가 좀 있다 하는 직원도 나와 열 다섯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니 안철수는 알아도 배철수는 모를 만 하다. 차라리, “제가 갑철숩니꽈~”라며 권위를 잃어버린 원장의 하소연이라도 들어 주길 바래 보는 게 나을 뻔 했다.
어느새 40대 중반, 나보다 나이가 적은 환자가 점점 많아지더니 이제는 환자군의 절반 정도는 나보다 어린 것 같다. 노년 환자분들을 대하고 이해하는 일은 점점 쉬워지고, 청년 환자분들을 대하고 이해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나는 나 너는 너, 확실한 경계로부터 묻어나오는 우리 청년들의 어른스러움이 오지랖 넓은 나를 간혹 당혹스럽게 만든다.
우리 직원들, 배철수를 모르면 어떠한가. 청년 환자들과 말 통하고 느낌 비슷한 우리 직원들이 알려주는 대로 상냥한 말씨로 상세하게 설명하여 왕년의 안철수처럼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보자. 나도 잘 모르겠는 일은 직원들에게 맡기자. 나보다 똑똑한 직원들… 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이 일, 저 일 하다 보니 내가 원장인지 봉직의인지 헷갈리는 상황에 다다른다. 내가 치료확인서를 써서 갖다 주는데 실장이 왜 나에게 고맙다고 하는 걸까... 자기가 나에게 시킨 일을 내가 해서 갖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여보게... 내가 원장이라네... 잊지 말아주게...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한 우리 청년 세대, 내가 그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그들도 나를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배철수를 왜 모르냐며 계속 배철수 성대모사를 하면 안 될 일이다. 정치적 수사는 잘 모를지라도 순수한 개발자의 열정과 고뇌를 통감할 줄 알았던 우리 청년들에게 적어도 그들이 아는 철수로서 다가가야 할 것 같다.
어느 지친 저녁, 야간 진료를 하고 있는 나보다 더 지친 얼굴로, 떨어진 골드 인레이를 들고 찾아온 청년 환자를 보았다.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는데... 청년 환자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 또 오지랖이 발동한다. 시적해보니 쓸 만 하다. 골드 인레이에 샌드를 치고, 치아에 에칭을 하고, 수퍼 본드로 골드 인레이를 붙여 준다. 깔끔하게 팔리싱하고 양치를 시킨 후, 치료 결과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고생 많아요.” 한 마디...
늦은 시간에 치과에 와서 치료를 받느라고 고생이 많다는 말이었을까. 낯선 것, 잘 모르겠는 것으로 가득 찬 젊은 날의 하루를 숨가쁘게 살고 온 청년의 마음에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말이었을까. 질척이고 싶지 않아 돌아선 나의 발걸음. 청년들과의 접촉은 그렇게 짧음과 쿨함의 연속이어야 좋은 것 같다. 애정을 쏟았다는 사실은 찰떡같이 달라붙은 골드 인레이가 나를 대신하여 오래 오래 말해주리라.
나도 한 때는 실장과 세 살 밖에 차이가 안 나는 젊은 원장이었다. 지금은 모르는 것을 그 때는 알았었는데... 잊어버리는 게 많을수록 뒷방 늙은이가 되는 날이 재촉될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젊은 피가 끓어오르는 봉직의를 환자분들께 소개하는 날을 맞이하겠지. 내가 돌보던 환자분들을 총명한 눈빛, 날렵한 금손으로 돌보아주는 봉직의를 만나는 날을 위해서라도 내 안의 젊은 원장을 잊지 말아야겠다. 멀지만 가까운, 기억 속의 나를 자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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