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과의사과학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이 올해 보건복지부에서 정책 과제를 진행하면서였고, 그전에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용어에서부터 느꼈겠지만, 중요한 시기에 치과계는 그간 준비를 덜 했다는 것입니다.”
기초치의학 오피니언리더 사이에서 기초치의학의 현주소를 통찰하는 말이다. 이는 기초치의학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후순위로 밀려있다는 것이며, 차후 ‘K-Dentistry’가 전 세계 치과계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초치의학의 발전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치과계 100년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치의신보 기획 포럼 두 번째 ‘기초치의학의 트렌드와 전망’이 지난 9월 2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민정 치협 부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이석초 치협 공보이사가 포럼 좌장을 맡았으며, 기초치의학 분야에서 활약 중인 박윤정 교수(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구강생화학교실), 김동엽 교수(전북대학교 치과대학 예방치학교실), 정신혜 교수(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치과생체재료과학교실)가 패널로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패널들은 한국 기초치의학의 현 위치를 짚고, 타 산업계, 선진국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의 문제점과 장점을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한국 기초치의학의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그간 우리나라 치과계는 임플란트, 디지털, 영상 분야에 있어 전 세계 최고 선두 주자로 그 위용을 떨쳐 왔다. 이 가운데 기초치의학은 오랜 기간 국내 치과 임상과 산업의 뿌리를 형성하며 치과계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실제로 기초 연구를 통해 밝혀진 질환의 병태생리학적 기전은 새로운 치료 전략을 가능케 했으며, 나아가 치료제 개발, 진단 기술, 바이오마커 발굴, 정밀치의학 등 산업화로도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K-Dentistry의 근간인 기초치의학이 흔들리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초치의학에 관한 지원이 적극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미국의 한 대형 치과대학의 경우 기초 분야 교수 인원만 30명 이상 운영하며, 기초연구 기반 기술이전과 이에 관한 창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 일본 대부분의 국립치대에는 기초학교실 전담 교수진이 안정적으로 배치돼 있으며, 중국의 주요 치과대학은 국가중점실험실 형태(State Key Laboratory)로 대규모 기초연구 그룹을 운영하는 등 기초치의학 발전을 위한 잰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기초치의학교실 대부분 교수 인원은 2~5인 이내 소규모에 그치며, 서울대를 제외하고 국내 치과대학 기초학교실 교원 수가 20명 이하를 기록하는 등 인력 부족으로 학문 후속 세대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기초 연구와 임상 응용 간 단절되는 한계로 인해 응용연구에 따른 산업화 연계 또한 미약한 형국이다.
이석초 공보이사는 “기초치의학이 그간 어떻게 변화해 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발전할지 전문가들을 모시고 기초치의학 교육, 연구, 산업 연계 등 현 주소를 두루 살펴보고, 향후 비전에 관한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박윤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구강생화학교실 교수======================
“임플란트 앞세운 K-덴탈 ‘주춤’ 신기술 절실”
치과계 특색 있는 연구 잠재…접점 연결 골든타임
기초치의학·산업 성장 가능성 높아 다수 기업 관심

“한국의 기초치의학은 특색 있는 연구를 하는 연구자도 많고 가장 핫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산업과 중계할 수 있는 브릿지만 있으면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많습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박윤정 교수는 ‘약학 박사가 본 기초치의학 트렌드, 그리고 융합 과학의 비전’을 주제로, 약학 박사 출신답게 제약계를 예로 들며 기초치의학의 현황, 치과 산업을 진단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최근 제약계에서는 블록버스터 가능성이 있는 해외 기술이전이 잇따르며 올해 10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 ‘K-바이오(Bio)’가 굉장히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 이는 새로운 기전의 발견, 미충족의료를 개선하는 기술 등 혁신기술이 상용화되며 제약산업, 관련 연구의 체질이 바뀐 성과라는 설명이다. 반면 K-바이오 이전 ‘K-Dentistry’로 기대를 모았던 국내 치과산업은 임플란트를 중심으로 한 수출이 치고 나가며 대표적인 임플란트 기업들이 전 세계적인 수출 실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새로운 기술을 내세우지 못하고 중국 등 신흥 시장의 물량 공세에 밀리며 가격경쟁에 함몰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윤정 교수는 “기초치의학의 경우 2%가 안 되는 정부 R&D 예산에 의존하고 있고, 융합연구를 할 수 있는 예산도 많지 않아 단기적으로 실적을 낼 수 있는 임상시험이나 인허가 건수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계속해 가격경쟁 위주의 산업구조로 치우치면 시장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임플란트 중심의 산업에서 벗어나 치과 관련 약제나 소재, 치료술식에 필요한 의료기기의 개발 등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강질환 치료제의 경우 경구투여나 피하주사 등의 방식으론 치료효과를 보기 어려운데, 최근 기초치의학과 인접 학문, 예를 들어 약제학, 생체재료학, 의공학들과의 융합 과학으로 치과용 약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기초치의학 분야에는 사실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 교수와 연구자가 많다. 생체재료학, 구강생물학, 디지털, 예방, 프로바이오틱스, 마이크로바이움 등 굉장히 핫한 연구들이 치의학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각 분야의 접점만 연계해 줄 수 있는 중계자가 있다면 충분히 시너지를 내 치과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기업 다수가 이 부분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기초치의학은 각 영역에서 진주를 하나씩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실로 어떻게 꿰어 줄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이렇게 기초와 임상, 산업을 잘 이을 수 있도록 중개연구, 오픈 이노베이션이 뒷받침된다면 치과계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김동엽 전북대 치과대학 예방치학교실 교수======================
“연구 재현·지속·창의성이 치의학 미래 자산”
일본·미국·한국 연구 환경 차이 통한 방향성 제언
박사 후 포닥(Postdoc) ‘성장 사다리’ 필요성 강조

“우리나라도 기초학문에 대한 꾸준한 투자, 인력 양성 시스템 정비, 장기적 연구 인프라 조성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연구의 재현성·지속성·창의성이 균형을 이루는 건강한 생태계야말로 한국 치의학 미래를 위한 핵심 자산이 될 것입니다.”
김동엽 교수는 ‘일본, 미국, 한국의 연구 환경 현황과 차이’를 주제로 나라별 연구 환경의 장단점을 설명했다.
김동엽 교수는 기초치의학 연구에 대한 장기적 투자를 강조했다. 일본, 미국의 기초연구 생태계는 각각 30년, 50년 이상의 시간을 거쳐 토대가 완성됐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비, 단기 성과 위주의 시스템 등으로 인해 독립적 연구자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어 꾸준한 인력 양성이 힘들다는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일본은 교수, 준교수, 조수(조교수) 체제로 기초학 교실을 운영해 연구의 연속성과 재현성을 높였다. 연구 주제가 단절 없이 후속 세대로 계승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다만, 수직적 구조로 인한 학문적 보수성과 폐쇄성이 존재해 자유로운 발상이나 협업에는 제약이 따른다.
미국은 연구자 간 활발한 토론과 아이디어 교환이 자유로워 도전적 연구 설계가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 장비·기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비용 효율성도 뛰어나다. 다만, 토론과 협업에 익숙하지 않은 연구자는 고립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빠른 결과 중심의 연구 환경으로 인한 재현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박사 후 포닥(Postdoc)으로 가기 위한 ‘기회의 성장 사다리’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김 교수는 기초연구의 파급력이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만큼, 치과계 발전을 위해서는 기초치의학 인재 양성이 필수적이라고 전했다.
현재 기초연구를 통해 밝혀진 질환의 병태생리학적 기전은 새로운 치료 전략을 가능케 하며, 나아가 치료제 개발, 진단 기술, 바이오마커 발굴 등 산업 방면으로도 확장할 수 있어 그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특히 치의학 분야는 정밀 의학, 바이오인포매틱스, 분자진단기술 등과 융합이 이뤄지는 등 발전 양상이 남다르다.
김 교수는 “기초치의학은 단순히 교육과정의 기초지식을 배양하기 위한 과목이 아니라, 치과 산업의 혁신과 임상의 기반이 되는 필수적인 지식 기반”이라며 “기초의 튼튼한 바탕위에서 산업과 임상도 발달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 정신혜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치과생체재료과학교실 교수=================
“기초치의학 입문은 가볍게, 리스크는 최소화”
‘5년제 연구 전문의 과정’ 치의과학자 확보 방안 제시
언제든지 로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안전망’ 설치 중요

“기초치의학 전공 연구 프로그램 참여 시 어드밴티지를 주는 등 학생들이 가볍게 기초치의학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하고, 이들이 언제든지 로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실패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회를 열어주자는 겁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정신혜 교수가 ‘치과의사과학자, 치과의사로서의 또 하나의 진로’를 주제로 국내 치과의사과학자 인력 양성 문제를 지적하고, 이에 따른 인재 유인책으로 5년제 연구 전문의 과정을 제시했다.
이날 정 교수는 자체 설문 결과 치의학대학원 학생 다수가 기초치의학에 대한 흥미는 물론,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현 교육 제도와 진로 실패 리스크가 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학생 다수가 연구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학업·임상 실습과 병행이 어려운 탓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연구 지원사업 공고와 신청 방법에 대한 접근성도 부족한 형국이다. 실제로 정 교수가 학생 1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8명(78.1%)은 기초치의학 연구는 임상과 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고 응답했다. 또 학부 시절에 기초치의학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10명 중 6명(62.4%)이 찬성했으며, 2명 중 1명(52.4%)은 향후 연구 참여 의향도 있었다. 이에 반해 학부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로는 시간 부족이 42.6%로 가장 많았으며, 관심 부족도 33.7%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연구지원 사업이 학생 다수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공고와 신청 방법에 대한 접근성은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혹여나 과학도의 길을 걸었다가, 로컬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기초치의학 연구에 관한 관심을 잃게 했다는 해석이다.
정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간표 조정과 학점 인정, 방학 집중형 프로그램 등 제도적 보완이 요구되며, 연구 지원사업에 대해서도 단순 정보 제공을 넘어 체계적인 안내, 멘토링, 지원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치과의사과학자 인력 양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재 유인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는 치대생이 기초 전공을 하면서 임상 환자를 볼 수 있도록 하거나, 5년제 연구 전문의 과정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5년제 연구 전문의 과정은 우선 첫 1년은 연구 연수를 포함한 박사 과정 등을 시작하고, 2년 차에는 연구 인턴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지원할 수 있게 해주고, 거기에 따른 어드밴티지를 주는 것이다. 이후 3년 차부터는 동일한 전문의 과정을 거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파격 정책 지원 바탕 학생 연구 관심 키워야”
이어진 패널 토론 시간에는 참여 패널 모두가 한목소리로 기초치의학 인재 유입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래 자산인 학생들이 기초치의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파격적인 지원 정책으로 연구에 대한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윤정 교수는 “융합 과학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지만, 산업 전반과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분야 융합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러한 융합연구에 대한 인센티브나 지원이 필요하고, 산업체에서도 융합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되, 성과가 나오는 경우 기초치의학 연구에 다시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동엽 교수는 “가장 시급한 것은 인력 양성 문제”라며 “현재 연구부학장으로서 학생들의 연구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학생학술경연대회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추가 및 보충실험을 바탕으로 논문 작성 및 투고 등 전 과정을 경험토록 하는 연구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경험은 학생들에게 또 다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그중에서는 반드시 기초치의학에서 그 뜻을 펼칠 인재도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정신혜 교수는 “저는 수련 마치고 나서 개원해야겠다는 마음이 굉장히 뚜렷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도 교수께서 적극적으로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알려줬고, 여러 가지 서포트도 많이 해줘 치과의사과학자의 길로 왔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임상이라는 환자 개개인 치료 외에 연구와 학문을 통해 치의학 전체를 바꿔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민정 부회장과 이석초 공보이사는 차후 치의학 연구의 산실이 될 국립치의학연구원 운영 방안에 관한 의견을 더했다.
이민정 부회장은 “최근 혁신이 넘치는 시대 속 기초치의학이야말로 미래 치과계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판이 될 것”이라며 “오늘 좌담회는 기초치의학 발전을 위해 협력과 비전이 확장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여러 가지 비전을 제시해줘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석초 공보이사는 “기초가 튼튼해야 우리의 임상과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면서 “국립치의학연구원이 설립되면, 기초치의학 연구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정책적인 연결 고리를 끊임없이 후배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역할을 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