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가 시작되자 나와 동떨어진 숫자들이 유난히 분주해 보였다. 코스피 지수는 연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금값 역시 사상 최고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이어졌다. 아침 진료를 시작하기 전 습관처럼 휴대폰으로 뉴스를 훑어보다 보면 진료실의 고요함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하루를 살고 있지만 각자의 속도는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숫자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꼭 뒤쳐지는 건 아니겠지만 마음 한켠 괜시리 조급해져서 첫 환자를 보러 진료실로 들어가는 발걸음도 빨라진다.
점심시간 무렵이면 직원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투자 이야기가 오갔다. 진료가 없는 잠깐의 틈을 타 휴대폰으로 주식창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다. 그 와중에 나도 아는 척, 친한 척을 하고 싶어서였는지 “국내 주식은 이미 오를 만큼 오른 것 같다’ ‘차라리 미국 주식을 공부해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그 말에 진료실 선생님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장은 내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움직였다. 이후에 국내 증시는 한참 더 올랐고, 내가 추천했던 미국 증시 종목은 조용히 횡보 중이다. 그때 깨달았다. 괜한 참견은 하지 않는 편이 서로를 위해서 낫다는 것을. ‘원장님이 사지 말라고 했던 그 종목 지금 많이 올랐어요...’ 라는 말에 속이 긁혔지만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작년부터 미국 증시에 투자를 하고 있다. 국내주식은 손절의 아픈 기억도 있고 진료시간에 거래에 신경쓰면 안될 것 같은 나름의 이유에서이다. 미국 증시도 많이 투자할 현금도 배짱도 없어서 남들이 많이 하는, 회자가 많이 되는 ETF 및 개별종목을 조금씩 사는 형식이다. 당장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보단 치킨값, 아기 분유값이라도 벌어볼 생각이었다. 소액이라도 수익은 커녕 손실이 났을때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투자했던 종목이 운좋게 급등하면 ‘좀 더 많이 넣을걸...’ 하면서 무릎을 치고 아쉬워했다. 주변에서 누가 어느 종목으로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질 때도 있었다. 숫자는 늘 비교를 부르고, 비교는 쉽게 마음의 평정을 깨뜨린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 시장에 발을 들였는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묻게 된다. 나의 초심은 치킨과 분유값이었는데….
그간의 실적으로 보나 성향으로 보나 나는 투자보다는 본업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오르내리는 그래프를 예측하고 매수매도 타이밍을 잡는 일보다, 하루하루 진료 예약표를 확인하고 환자를 맞이하는 일이 훨씬 익숙하다. 적은 숫자지만 꾸준히 찾아와 주시는 신환, 추운 날씨에도 예약 약속을 지켜 내원해 주시는 구환의 얼굴은 언제 보아도 감사하다. 시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방향을 바꾸지만 치과 매출은 하루하루 차이는 있을지언정 열심히 일한만큼 플러스다. 물론 내 건강과 주변 여건이 받쳐줬을때의 얘기다. 그래서 어디선가 읽은 유명 투자자의 말이 떠오른다.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투표기계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울이다” 당장의 수익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시간이 지나 결국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 말을 곱씹다 보니, 투자 뿐 아니라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숫자들 앞에서도 ‘그때 살걸~ 그때 팔지말걸~’ 이런 부질없는 상상은 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지금 투자하고 있는 미국주식도 밤늦게 자주 시세창을 들여다보지 말고 푹 자려고 한다. 당장의 성과에 조급해하기보다는, 본업에 충실하면서 천천히 길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투자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일 아침도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에 몸을 꾸겨 넣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