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8번째) 세월을 거슬러 간 여행(상)번 / 신 덕 재

  • 등록 2009.09.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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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덕 재
중앙치과의원 원장


세월을 거슬러 간 여행(상)번


이여행은 두 아이의 여행이다.
한 아이는 예순 살이 넘는 노인아이의 여행이고, 다른 여행은 열 살 된 여자아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의 여행이다.


노인아이의 여행은 이러하다.
자동차 뒤꽁무니에서 나는 기름 냄새가 좋다고 정신없이 쫓아다니던 때로의 여행이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담벼락의 흙을 밥인 양 먹던 때로의 여행이고, 머리에 땜통을 이고 살던 때로의 여행이고, 하얀 DDT 가루를 머리와 온 몸에 뒤집어쓰고 좋다고 뛰어 놀던 때로의 여행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때로의 여행이다.


여자아이의 여행은 이러하다.
정말로 이런 한 때가 올지 모르는 때로의 여행이고, 상상이 안 되는 때로의 여행이고, 풍족함과 여유로움이 꿈에서만 갈 수 있는 때로의 여행이고, 그리움으로 바라보는 때로의 여행이고, 무한한 희망을 간직한 채 이룰 수 있는 때로의 여행이고,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질 수 있는 때로의 여행이다.


그러니까 노인아이는 55년을 뒤로 거슬러 간 여행이고, 여자아이의 여행은 2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아니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르나 그래도 언젠가는 오겠지 하는  희망을 위해 앞으로 거슬러 간 여행이다. 이러한 여행이 2009년 7월 30일 캄보디아 깜풍치아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노인아이는 이번 여행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번 캄보디아 여행은 네 번째다. 네 번째 여행이라고 하지만 첫 번째 여행과 같다. 지금까지 캄보디아 여행은 나를 위해,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간 여행이다. 순수한 관광 여행이다.
이번 여행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떨어진 지방도시 깜풍치아에서 모 의료봉사단체와 함께 한 의료봉사 여행이다. 해외 의료봉사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남을 위하고, 남을 기쁘게 하는 여행이 처음인 것이다. 남을 위한 여행이어서 그런지 떠나기 전부터 설 흥분과 기대가 앞섰다. 지금까지 많은 여행을 했지만  이번 여행처럼 마음 뿌듯한 여행은 없다. 멋진 여행이고 나에게 눈물을 안겨준 여행이다."


여자아이는 이번 여행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저는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아프면 그냥 아파야 해요. 아프면 눈물로 아픔을 참지요. 울다보면 낫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겼어요. 내가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에서 왔다는 분들이 우리에게 약도 주고, 아픈 데를 고쳐 주기도 해요. 엄마가 부처님께 빌어서 부처님이 오셨나 봐요. 아니면 하나님이 오셨나?  하여간에 울지 않고도 나의 아픈 데를 고칠 수 있었어요. 더욱 기분이 좋은 것은 내 동생이 이제 칭얼거리지 않아서 좋아요. 매일 이가 아프다고 했는데 이제는 안 아프데요. 부처님인지 하나님인지 할아버지인지 아버지인지 모르나 참 고마우신 분들이에요. 저는 지금 알지도 못하는 세상에 와 있어요. 이런 일은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참 좋은 세상인 것 같아요. 이런 세상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깜풍치아 도립병원에 마련된 진료소에는 생선 곱 같은 끈적끈적한 공기가 훈훈한 열기를 머금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찌고 삶고 있다. 어젯밤 호텔에서 맡은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하다. 천장에 달린 선풍기는 가장 느린 속도로 돌고 있다.
진료를 하는 29명의 선생님들과 봉사자 모두가 땀으로 범벅이다.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역하다.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 60년대 어느 마을에 와 있다.


수없이 밀려오는 환자들 때문에 몸을 추스릴 겨를이 없다. 허리는 끊어지는 듯 아프고, 종아리에는 팽팽한 힘줄이 섰다. 온 몸이 후줄근하다. 정말로 고생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다.
노인아이의 등줄기에 물골이 생겼다. 이마에는 영롱한 구슬이 달렸다. 그래도 지금 등줄기와 이마의 땀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4~50년 전 노인아이가 받았던 사랑의 봉사를 해 주어야 한다.


사랑의 봉사? 서울을 떠날 때 어렴풋이 사랑의 봉사에 대해 생각도 하고 각오도 했지만 사랑의 봉사는 정말로 피곤함과 고달픔이 자동적으로 따르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사랑의 봉사가 힘들고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새로운 열정과 기쁨도 준다. 이상하게 몸은 지쳐 가는데 마음은 자꾸 상쾌하고 맑아진다. 한 사람이라도 더 치료를 하고 싶은 열정이 생긴다. 왜 일까?  이것이 아마도 진정 사랑의 봉사이리라.


사랑의 봉사가 노인아이의 누나를 불러왔다.   
55년 전 노인아이의 누나는 장질부사로 죽었다. 그때 노인아이는 누나가 왜 죽어야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약간의 약과 먹을 것이 있었다면 노인아이의 누나는 살았을 런지 모른다. 지금 노인아이가 하는 사랑의 봉사 같은 것 말이다.
부질없이 누나를 생각하던 노인아이 앞에 어린 꼬마 녀석이 발버둥을 치면서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울고 야단을 치고 있다. 일곱 살이라고 하는데 다섯 살도 안돼 보인다. 꼭 55년 전 노인아이다.
“아이고, 이 녀석아! 지금 치료를 안 받으면 너 평생을 고생한다."


꼬마 녀석 엄마의 닦달과 노인아이 특유의 고함치기 치료법으로 무사히 꼬마 녀석 치료를 마쳤다.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니 노인아이는 더위 먹은 사람처럼 멍청하다.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더워 죽겠는데 말이다.
다음 환자는 꼬마 녀석의 누나란다. 열 살이란다. 그런데 꼬마 녀석과는 달리 여자아이는 조용히 치료 의자에 눕는다. 모든 것을 체념했는지 아니면 누나이기 때문에 의젓해서 그런지 모르나 꼬마 녀석과는 딴판이다.


치료를 하려던 노인아이는 여자아이의 눈을 보는 순간 왈칵 울고 말았다. 해맑은 여자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인아이는 여자아이의 눈물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설움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올랐다. 55년 전 맥없이 죽은 누나가 거기에 있었다. 고생만 하고, 동생한데 부대끼기만 하고, 엄마로부터 잘 못했다고 매만 맞고, 굶기를 밥 먹 듯 하고, 항상 우선순위 꼴찌였던 노인아이의 누나가 여자아이의 눈물 속에 있었다.
노인아이와 여자아이가 함께 울고 있다.


“누나의 죽음은 장질부사로 죽었지만 사실은 굶어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며칠을 먹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염병이 도니 염병에 걸릴 수밖에……."
“누나의 죽음은 내가 죽였는지도 몰라. 먹을 것이 조금 생기면 내가 독차지 하고 먹어 버리니 누나는 항상 굶을 수밖에……."
“내 누나는 항상 너처럼 소리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다 죽었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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