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학장으로서의 모험

  • 등록 2010.01.14 00:00:00
크게보기

40대 중반 학장으로서의 모험

 

“네가 학장이 되다니,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나?”
2년 전 2008년초 우리나라 나이로 45세에 치과대학 학장이 되고나서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친구나 선후배에게 듣는 말은, 첫 마디가 “축하한다”였고, 의례 둘째 마디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독백하듯 중얼거리던 위와 같은 말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 사람이 내게 하는 말이 날 축하하는 말인지 자신의 나이 듦에 대한 자탄인지 헷갈리곤 했다. 지방대학교의 치과대학장이나 치전원장님들 중에는 내 나이와 큰 차이 없는 연세에 학장을 하셨던 분들이 적지 않고, 현재 하고 계신 분들이 꽤 계심에도 이런 소리를 들음은 “내가 나이보다 동안으로 보이기 때문일 게야”라는 남이 들으면 수족위축증(손발이 오그라드는 증상)을 일으킬 자아도취로 축하의 뜻만 받아들이곤 했다. 긍정의 힘을 믿어야지… 직책에 비해 젊은(?) 나이라는 것이 일에 손해를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권위의식 같은 걸 걸치고 있을 필요가 없이 말단 실무자를 직접 찾아 발로 뛰고 얼굴을 맞대어도 부담이 없어서 편했다. 


생전 처음하는 일이란 것이 늘 생소하기 마련이겠지만, 정부로부터 재산신고를 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은 충격이었다.  필경 국립대학교 학장을 하면서 축재를 할 수 있단 의미이겠건만, 오히려 쥐꼬리만한 지방 국립대 학장 판공비보다 딸린 식구들 경조사 챙기기를 포함해서 나가는 돈이 더 많았으니, 공무를 열심히 보다가 재산 줄어든 걸 혹시 나라가 보상이라도 해주려고 신고하라는 건 아닐까? 그런데 요건 암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이루어지진 않을 것 같다.


학장으로서 시간을 가장 많이 써야 했던 일은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고 막힌 곳을 뚫고 다니는 일이었는데 이게 어지간히 시간을 잡아먹는 일인지라, 2년의 임기동안 온통 이런 일을 하다 보니 교수로서의 연구, 학생들에 대한 강의, 임상진료 등(물론 집안에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낙제이고…)은 바닥점수를 면하기 어려웠다. 골치 아프고 속상하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그나마 탈출구가 된 것은 대학동기들과 결성한 밴드로 보름에 한번 하는 짧은 연습과 연말에 펼쳤던 공연이었다. 고맙다 Rocker 동지들아.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적지 않은데, 무엇보다 날 격려해주고 지원해준 분들의 고마움을 마음 속에 깊이 갖게 된 것이 소중한 소득이고,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의 능력의 수준을 다시 가늠해 볼 수 있었다는 것도 소득이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 역시 큰 소득이었다. 그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소주 한 잔 사시면 말씀드릴지 생각해 보겠다.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들으시는 데에 소주 한 잔 정도는 투자하셔야… “세상에 공짜는 없다”도 가장 중요하지는 않아도 꽤 중요한 요소니까.


이제 평교수로 돌아갈 때가 왔다. 주변에서는 “한 번 더 해야지” 또는 “더 큰 일을 해야지”란 이야기들을 툭툭 던져 왔다. 이런 말을 믿으면 팔랑귀라고 생각하면서도 간혹은 솔깃 솔깃 했다. 정작 큰 유혹은 달콤한 칭송의 말이 아니라, 임기 말이 되어가니 마무리를 못 지은 벌여 놓은 일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었다. 일개 학장이었던 내가 이럴 때에는 대통령을 하던 분이 계속하고 싶은 맘은 얼마나 클까. 다시 출마하면 당연히 당선될 것처럼 믿는 것도 자만일 터이고, 경험이 쌓이고 완결할 일이 남았다 해도 시작할 때보다 임기 말의 내 스스로의 에너지가 줄어들어 있음을 돌아보고는 그간 못한 교수 노릇을 충실히 하는 길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적어도 한 번을 더 하려면 이전보다 더 잘해야 하는 법. 에너지가 더 충만해야지 줄어들어 있어서야 안 될 일일테니까.


마음을 정하고 나니 배낭 하나 짊어 메고 노마드의 자세로 새 초원을 향한 탐험을 시작하는 듯 자못 새로운 기대가 일어난다. 세상의 가장 큰 불행은 틀에 박힌 삶이 아닐까. 아직 밟지 못한 초원이 있는 한 단조로운 삶이란 없이 하루 하루를 새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실 모든 치과의사 선후배 동료분들께서 2010년 한 해는 모두가 지난 해보다 조금 더 스스로를 대접하고 높게 여기는 방향을 향해 흥미로운 탐험을 시작하시길 기원한다.
자, 다시 한번 새로운 출발이다.

박덕영 강릉원주치대 교수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관련기사 PDF보기



주소 :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 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대표전화 : 02-2024-9200 | FAX :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 광고관리국 02-2024-9290 |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