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깊은 소관탈(하)

  • 등록 2010.01.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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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깊은 소관탈(하)

 

<지난호에 이어 계속>


거친 파도와 싸워가며 소관탈 암벽에 로프를 묶느라 30분을 먼저 허비한 후에야 겨우 닻을 내릴 수 있었다. 닻줄과 소관탈에 맨 로프를 동시에 잡아당겨 배를 고정시켜야 한다.
한참동안 소동을 벌인 후에야 배를 고정시킬 수 있었다. 소관탈과의 거리는 30m, 똥 여와의 거리는 70m. 조 사장이 점지해준 야간 돌돔낚시 최적의 위치를 잡았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채비를 갖추어야 한다. 돌돔 떼를 유인하기 위해 이 선장은 한꺼번에 크릴 4장을 썰망에 투입하고 조류를 따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조류의 속도는 구멍찌 낚시에 적당한 초속 50cm 정도였다.


H교수는 과감하게 중장비인 10호대를 펴고 나는 예민한 가마가쓰 슈퍼인테사 1호대에 쮜리겐 제로 찌, 릴은 시마노 스텔라 3000번에 원줄은 쎄가 5호, 목줄은 3호 브이하드를 사용하고 바늘은 가마가쓰 7호로 스마트하게 데뷔했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해서 쮜리겐 구멍 찌에 초소형 전자 찌를 부착하니 조류에 따라 흘러가는 전자 찌의 빨간 불빛이 은은한 황혼을 배경으로 수평선에 나부끼는 신비경을 연출한다. 석양 속에 아스라한 한라산 정상도 낙조에 물들어 어둑한 주홍으로 빛나고 그 주변을 유유히 맴도는 발그레한 구름들이 여유롭다.


2m면 그리 높지는 않은 파도였지만 배가 양측 로프로 고정되어 롤링이 매우 심했다. 선상낚시를 시작한지 한시간만에 뱃멀미로 허무하게 무너지며 전의를 상실한 H교수는 눈물 콧물과 함께 위장을 깨끗이 비운 후 조용히 선실로 퇴장하고 만다.
뱃멀미가 얼마나 무서운가? 게다가 배를 타기 전에 멀미약까지 왕창 먹어댔으니 이제는 돌아갈 때까지 다시는 낚싯대를 잡아보지도 못할 것이 뻔했다. 칠칠찮게 이 정도의 파도에 혼수상태가 되어가지고 여기까지 다 와서 엎어진 몰골이 그게 뭐야! 프로가 되려면 아직 멀었어, 당신은…


혼자서 100m쯤 암초를 따라 찌를 흘려보내고 되감기를 반복했다. 입질은 없지만 선장은 크릴을 계속해서 투입한다. 오후 9시 반이 되도록 헛손질만 반복하다가 드디어 50m 전방에서 전자 찌의 불빛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아~ 기다리던 이 순간! 힘껏 챔 질을 했으나 재수 없는 밑 걸림이었다. 한참동안 바위와 씨름하다 원줄까지 잡아먹고 말았다. 20분이나 걸려 채비를 다시 갖추니 밤 10시가 넘는다.   보기에도 딱한지 이 선장이 커피를 한잔 끓여다 준다. 한참 후 그 위치에서 찌가 다시 잠겨들었다. 행여나 하고 챔 질을 했지만 또 밑 걸림. 진작 매듭 사를 2m만 올릴걸! 용만 쓰다가 찌와 채비를 또 떨어뜨리고 말았다.


파도 따라 깜박깜박 멀어져간 내 찌! 우수리 목줄 달고 사라져간 내 찌! 고기얼굴은 구경도 못하고 그 비싼 쮜리겐 찌와 목줄채비를 두벌씩이나 날렸다. 손해액이 무릇 기하이뇨?
자정이 지나도 조용했다. 선장은 오늘밤 수온이 너무 낮은 것 같다고 딴전을 피운다.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든 건 알지만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 너나 잘 하세요~ 다. 오호 애재라, 이러다 완전 꽝치고 빈손으로 돌아간 게 어디 한두 번의 일이었던가?


두 시를 넘기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한다. 이제서부터 버텨내는 건 오로지 정신력일 뿐이다. 요동치는 배에서 일곱 시간동안 헛손질을 계속하면 심신이 피로해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선장도 지쳤는지 선실 문에 기대앉아 도로~롱 거리며 코를 곤다. 선실안의 H교수와 선실 밖의 선장이 함께 코를 골아대는 소리가 묘한 화음을 이루며 마치 꿈속의 자장가처럼 들린다. 에잇, 나도 그만 들어가 잠이나 잘까?


그러나 어떻게 온 낚시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이 밤을 날려버릴 수는 없다. 서울 도심 속의 높다란 건물 11층에 있는 우리 치과에서부터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 지하철로 땅속을 달린 다음 비행기로 하늘을 날아 또 허겁지겁 땅 위에서 택시타고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배까지 전세 내어 예까지 왔다.


게다가 오늘을 기다려 얼마나 많은 밤들을 가슴 설레며 뜬눈으로 지새웠던가?
사그라져드는 전의를 스스로 북돋우기로 했다. 썰 망에 크릴밑밥을 더 집어넣고 절벽을 따라 채비를 거듭 흘려보냈다. 쉬지 않고 건너편 벼랑을 향해 주걱으로 밑밥을 뿌려주는 품질도 계속했다.
저수지 밤낚시 때에 흔히 들려주던 처량한 산새소리도 울리지 않는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오로지 소관탈 암초에서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소리만이 교교할 따름이다. 


새벽 3시가 지난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 온다. 어느 누구라도 이 몰골을 본다면 비싼 돈 주고 사서 고생하며 무슨 청승이냐고 핀잔을 주겠지…
어쩌면 야속하게 이리도 반응이 없을까? 혹여 소문난 낚시도사가 납신 것을 이미 눈치 챘는지도 몰라!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이 감기는데 70m 전방에서 명료하게 빛나던 전자 찌가 스르륵 빨려들며 벌건 불빛을 물속으로 흩뿌렸다.
잠긴다… 투명한 밤바다 속으로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번진다.
왔다!  숨이 멎고 머리가 싸악 맑아지며 온몸에 짜르르한 전율이 스친다. 마구 방망이질치는 심장의 고동이 가슴을 두드린다. 인간사 백팔번뇌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잽싸게 스풀을 올리며 힘껏 잡아채는 순간, 삐-잉 하는 피아노소리가 밤바다를 갈랐다.
선장은 튕기듯 일어나고 반원을 그린 낚싯대 끝은 쐐-액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빨려갔다.

 

김영진 영진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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