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치아아끼기운동(17)] 성주를 위해 오랜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그대들 - ‘자연치아’를 찬양하노라!

  • 등록 2012.12.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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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치아아끼기운동

17
자연치아아끼기운동(상임대표 서영수)이 국민의 구강건강 지키기에 앞장서는 바른 치과의사상을 고취시키자는 취지로 본지에 칼럼연재를 시작한다. 월 1회 게재되는 칼럼에서는 자연치아아끼기운동이 말하는 의료인의 근본 자세에서부터 치과계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과 대안이 제시될 예정이다.

  

성주를 위해 오랜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그대들
‘자연치아’를 찬양하노라!


6·25전쟁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필자는 이제 70세가 넘은 나이로 그 당시엔 칫솔도 흔치 않았고, 굵은 소금이나, 집 앞 냇가 고운 모래를 치약 삼아 손가락으로 이를 닦던 시절을 지냈다. 그 후 피난시절, 튜브에 든 그 향긋한 치약의 향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엔 다양한 기능의 칫솔, 치간 칫솔과 치실에, 향기 좋은 갖가지 기능성 치약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이를 닦으며 느끼는 그 상쾌함이란!


나는 이를 닦을 때 거울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말하기와 노래 부를 때가 아니면, 늘 감추어져 있는 치아를 치실과 치간 칫솔로 골고루 닦아내고, 냄새 좋은 치약으로 칫솔질을 하고 물로 헹구고 나면, 내 치아들은 개성 있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어쩌면 그렇게도 치아마다 그 생김새가 다양한지, 그 모양만큼이나 그 역할도 다를 터.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 입 속엔 반듯하고 잘생긴 치아들이 가지런히 짜여 있는데, 특별한 모양과 색깔로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는 친구들은 어딘가 어색하다. 크라운이 씌워져 있는 치아는 임금만큼이나 갇혀 있어 답답할 테고, 원래 주인 대신 자리를 차지한 능력 모자란 색깔 바랜 친구들은 찜찜해하며 박혀 있고, 쿠데타로 성주를 몰아내고 성을 차지한 그들은 언제고 쫓겨나리라 불안해하며 버티고 서있는 이들 ‘인공치아’에 비하면, 그 오랜 세월 꾸준히 자기 성주를 위해, 성문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적을 자르고 씹으며 부상까지 당하며 성을 지켰고, 성주가 바르게 말할 수 있게 제 역할 다하느라,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고생고생하며 살아남은 그대들‘자연치아’를 찬양하노라!


한결같은 여름의 푸른 숲과는 다르게, 나무들이 나름의 아름다운 빛깔로 제 모습을 드러내던 지난 늦가을 어느 오후, TV 화면에 나타난 충격적인 장면 ‘치과의사와 환자의 난투극.’


이 장면이 떠오르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어째 이런 일이!


소년시절 내가 살던 작은 도시에는 치과병원이 단 두 곳뿐이었고, 치과의사는 ‘선생님’이란 특별한 의미의 칭호를 받으며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귀한 분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치과치료를 받은 적이 없는 나의 소년시절, 기억나는 것이라곤 치과의사선생님이 동네 아이들에게 큰 알사탕을 나누어주는 만화장면 뿐이다. 그리고 청년시절 치과의사선생님께 내가 저지른 불경의 실수가 나에겐 최고의 선택과 용기였다고 느껴지는 사건 하나, “아무 설명 없이 어금니 잇몸에 마취주사, 목적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이 뽑으려고,’ 순간의 갈등, 술 약속 핑계로 병윈 탈출.” 그 사건 후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고, 지금도 살아남아 내 성을 지켜주는 그 어금니가 혀끝으로 어루만져 질 때마다 기분이 좋다. 장년시절부터 지금까지는, 서울 모 치과대학의 세 분 교수님들께 몇 년을 알뜰하게 치료받고, 이젠 1년에 한 번씩 병원에 가면서 교수님께 드릴 책을 고르는 즐거움과 함께, 나의 ‘원군’(자연치아)과 ‘지원군’(인공치아)이 합세하여 성을 지켜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아니, 즐거운 마음으로 치과병원에 간다고? 남들이 웃지 않을까도 싶다.


어느 날 그 치대교수님께서 청탁 아닌 강압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는데,(거절하면 치료 시 고통이 두려워…) 이 기회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여러 해 전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에 갔을 때, 부러웠던 초등학교 내에 있던 치과병원. 그 병원은 모든 학생이 수업시간을 불문하고, 언제나 정해진 순서대로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치료 받는, 밝고 작은 규모의 치과병원이었다. 이 제도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치과치료에 대한 불안과 치료비 걱정, 그리고 모든 이의 자연치아 보존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싶다.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치아)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치아)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치아)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바 있는데 나는 괄호 속을 ‘치아’로 바꾸고 싶다.


흠이 좀 있어도 이렇게 단단하고 잘생긴 ‘자연치아’를 대신할 자 있을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성실
강원대 명예교수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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