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치아아끼기운동(19)] 어금니

  • 등록 2013.02.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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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치아아끼기운동(19)

  

자연치아아끼기운동(상임대표 서영수)이 국민의 구강건강 지키기에 앞장서는 바른 치과의사상을 고취시키자는 취지로 본지에 칼럼연재를 시작한다. 월 1회 게재되는 칼럼에서는 자연치아아끼기운동이 말하는 의료인의 근본 자세에서부터 치과계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과 대안이 제시될 예정이다.

  

어금니

 

강남에는 내가 아는 오래된 치과 하나가 있다. 한양아파트 앞 사거리에 갤러리아 백화점이 들어서기 전, 그러니까 한양쇼핑센터 영동점이 그 자리를 대신하던 까마득한 시절부터 치과는 그 자리에 어금니처럼 콱 박혀서 존재해 왔다.


 이가 아프거나 아파올 낌새가 보일 때마다 어린 나는 늘 그 치과에 갔다. 내게 ‘치과에 간다’라는 문장은 곳 ‘의사의 품에 안긴다’란 뜻과 다름없었다. 차가운 금속성의 기계 장비에 딸린 작은 진료 의자에 누워 있노라면 치과의사는 신중한 몸동작으로 나를 감싸 안듯 진찰하고 치료했다. 진료행위는 조심스러웠으나 망설임 없이 정확했다. 내 작은 입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말초적인 감각의 향연들? 뚫는 소리와 타는 냄새 그리고 신경을 건드리는 날카로운 통증?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욱 공포심을 자극했다. 그때마다 위무하듯 나를 감싼 채 치료하는 치과의사의 따스한 몸에 매달리고픈 충동이 일었다.


 그 후로도 나는 그 치과에서 많은 치료를 받았다. 사랑니 발치는 물론 치아교정을 거치면서 들쑥날쑥 비뚤비뚤하던 내 치아는 서서히 바르고 튼튼하게 자리 잡아 갔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어린 시절 ‘품에 안기던’ 그 때 그 기분으로 아직도 종종 치과에 들른다. 자연스러운 치아관리와 보존에 대한 선생님의 짤막한 강의를 듣다보면, 역시 ‘자연스레’ 피어난 그 분의 흰 머리와 함께 세월의 무늬가 선명한 병원 시설 곳곳에 눈이 간다. 병원은 낡았되 너저분하지 않고, 꾸민 것 없이 소박하되 그래서 늘 새롭다. 손잡이를 돌려서 채널을 바꾸는 14인치 브라운관 티브이가 아직도 선명한 채 재잘대고, 치과를 방문한 어린 아이들의 활짝 웃는 얼굴 사진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며, 긴장해 굳은 몸으로 진료 의자에 누우면 빡빡머리 시골 소년들의 흑백사진이 천장에서 웃고 있는 것이다. 참된 개성이란 이토록 자유롭고 아름답다.


 이런 분위기와 어울리게 늘 하는 말씀이 어떤 것도 자연스런 내 이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린 나는 별다른 느낌 없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자연치아를 아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자존심이요, 자신감이라 것을….


 압구정동과 청담동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가게가 입점했다 나가고, 또 들어오길 반복한다. 한껏 차려입은 청춘들이 경쟁하듯 지붕 접힌 외제차를 몰고, 만두집에서 와인을 따라 마시는 개성 강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 거리를 걷노라면 정신없이 돌아가는 휘황찬란한 세상사에 알 수 없는 현기증을 느끼곤 한다. 살아서 영악해질수록 나는 옛것이 그리워지는데, 이 그리움의 끈을 잇는 건 바로 나와 함께 나이 먹어가는 내 상아질의 치아다. 내 치아는 늘 제자리에 어금니처럼 박혀있는 그 오래된 치과와 잇닿아 있다. 쉽사리 뽑지 않고 신중하게 닦고 치료하며 보수해온 내 치아는 성형외과가 즐비한 압구정동과 청담동을 지날 때 더 자유롭고 아름답다.


 의사와 환자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친밀해진다. 모든 환자는 자신의 환부에 예민하다. 내가 그러하듯, 전문적 지식은 없을지언정 아픈 이의 동물적 감각으로 의사의 진정성을 파악한다. 환자의 환부를 다만 도려낼 때, 당장 환자는 편안해지겠지만 치유할 수 없는 정서적 이물감은 잃어버린 유년기처럼 입속에서 늘 욱신거릴 것이다. 환부를 포함한 한 사람의 정서까지 어루만져줄 때, 의사는 단순한 인체수선공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한다. 친밀할 때, 환자는 비로소 치아를 드러내고 의사 앞에서 환히 웃는다. 그 미소는 의사와 환자 양자 모두에게 보람된다. 우리는 보람된 하루를 삶으로써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비로소 행복하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은 카페거리로 유명한 청담동 언덕배기가 당신께서 막 개업하셨을 당시에는 다만 황무지 돌산에 불과했다고. 점심 때, 소일삼아 돌산을 오르던 그 젊은 의사의 뒷모습을 나는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서 세상은 변했다. 돌산은 현재 목 좋은 곳이면 귄리금 1억을 호가하는 장소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건강한 내 상아질의 치아에 감사하고 또 안도한다. 치과의사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자연은 아름답고 흉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치과가 고맙다. 내것은 다중요하고 소중하다. 특히 자연치아를 아껴서 무덤까지 가지고 가보자.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나경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4학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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