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rum
몇 초의 여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힐 때쯤 “잠깐만요”라는 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다.
피곤했고 그래서 빨리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열림 버튼을 꾹 누르고 그 사람을 기다렸다.
나머지 한 손으로는 아까부터 해오던 모바일 게임 타이니 팜의 불타는 알에서 이번엔 봄꽃 사슴이 나올까 희귀 동물 유니콘이 나와 줄까? 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 동승하자던 이 사람의 발걸음은 뭔가 조잡하고 분주한데도 내 예상시간보다도 많이 느렸던 것이다.
‘아~놔…’하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그 조잡하던 소리의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지팡이! 아차 싶었지만 되레 죄송하다는 말씀을 인사처럼 하시는 분에게 나는 “아 예~” 하고선 멍청히 서 있었다.
그러고선 사과도 못한 채, 평소 다른 분들께는 잘도 하던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조차 제대로 못한 채 집으로 와 꽤 오래도록 불편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핏 들려오던 그 조잡한 지팡이 소리는 행여 내가 기다릴까 조바심 내던 당신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던 걸음이었을 텐데… 나는 화장실이 급하지도 않았고 좀 더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는데….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다 보니 평소 내가 여유를 갖지 못한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엇비슷한 일들이 몇 가지 떠올랐다.
내가 다니는 학교 대학병원에서는 PK가 되면 수련의의 술식을 보면서 또한 어시스트도 같이 하게 된다. RO 시절 어깨너머로 술식 진행 상황을 잘 지켜봤다 한들 실전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수련의 생각을 앞서 나갈 수는 없다.
그 시절 분주하지만 뭔가 조잡해서 수련의의 불만을 이끌어냈던 내 동작들은 그래도 아마 아주 분주한 동작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토록 분주했던 RO, PK, 인턴을 거쳐 이제 드디어 수련의 2년차다. 세월이 흘러 흘러 그 시간동안 나는 더 빨리 빨리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있다. 그렇게 조바심내서 달려올 일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며칠 전에도 난 레지던트 2년차였고, 분주하기는 하지만 마음에는 들지 않는 그들의 보조를 받으며 불만을 어필하려 하기도 하고, 어쩌면 해버리기도 한다. 그러곤 그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어김없이 미안함의 눈치를 본다.
그때도 나는 화장실이 급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그들이 얼마나 분주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PK를 거쳐 간 수련의인데도 말이다.
그 때의 나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쓰긴했겠지만 본의 아니게 선배들에게 갑갑함을 느끼게 했을 텐데 이제와 올챙이 시절이 없던 사람 마냥 몇 초의 시간이 소중해서 PK들을 죄송하다는 말을 인사처럼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또 가족들에겐 어땠나….
나는 PK들과 내 가족들에게 좀 더 상냥한 사람이 될 수 있었지만 촉박한 시간들이었고 여유가 없었노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며 매 순간 스스로를 바빠서 여유가 없는, 그리고 짜증을 잘 내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하며 씁쓸한 마음을 가졌다.
이렇게 엘리베이터 사건으로 인해 내 성급함을 후회를 한다한들 당장 내가 성인군자가 되어 주변의 모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씁쓸함이 썩 기분 좋지는 않기에 지금까지의 나보다 좀 더 여유를 가져보는 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 이 순간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경화
부산대치과병원 보존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