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의 덫

  • 등록 2013.07.18 00:00:00
크게보기

가치관의 덫


남녀평등을 지향하며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할 무렵, 저는 성차별적인 말이나 행동이나 글을 접하게 되면 그 사람을 대역죄를 저지른 죄인마냥 몰아붙이며 전투를 벌이곤 했습니다. 남녀, 나이를 불문하고 성평등 의식이 낮다고 여겨지는 모든 이들이 그 대상이었으니 제가 싸워야 할 적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지인들은 제게 말을 할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거나 저를 못마땅해 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럴때마다 가장 괴로운 사람은 무엇보다 제 자신이었습니다. 언쟁에서 승리를 했건 비겼건 패했건 간에 한동안 그 잔상이 맴돌아 평상심으로 돌아올때까지 심리적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 가치의 초점은 그 사람이 가진 성평등한 의식과 말과 행동에 맞춰져 있었고, 그것으로 그가 생각있는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설거지용 세제를 많이 사용한다고 환경 문제에 매우 큰 가치를 둔 교무님에게 의식 없는 사람으로 몰리며 원치 않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가치를 두는 면을 갖고 있으며,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에 위배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나쁘게 코드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간지키기에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은 약속시간에 늦는 사람을 문제있는 사람으로 취급하며 꼴을 못봅니다. 어떤 사람은 약속 어기는 꼴은 잘 보는데 잘난척하는 사람 꼴을 잘 못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겸손을 가치있게 여기고 사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능력을, 누군가는 성실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기 가치관에 맞으면 그런 사람들을 좋게 보거나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시하거나 따돌리거나 싸웁니다. 그런 면에서 가치관은 곧 다툼의 선, 갈등의 선, 편가르는 선이 되기 쉽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이래야 한다’는 가치관을 강하게 가진 사람은 가족, 직장동료, 혹은 자주 어울리는 누군가와 부딪치는 일이 많아집니다. 


‘왜 저렇게 꾸물대지? 자기일 하나도 제대로 못하나? 왜 남의 험담을 하지? 천박해, 더러워. 줏대가 없어. 생각이 없어….’


이런 배타적인 가치관은 울타리를 치는 행위와 같습니다. 울타리로 이편 저편을 나누게 되고 상대편에 선 사람들과 갈등이 일어납니다. 갈등은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그로 인해 괴로움이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만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면 반드시 주변 사람들이 싫어하게 되고,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나도 그들도 고통을 받습니다. 


가치관은 곧 그 사람의 그릇입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했습니다. 군자는 그릇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릇이 커도 테두리가 있으면 반드시 수용되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울타리를 많이 치고 그릇이 좁을수록 수용력이 없어집니다. 사람들과 부딪침이 많다면 내 안에 가치관이 강하여 울타리가 많고 그릇이 좁아 수용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고, 화가 나고, 불편함이 많을때 ‘내가 이런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구나’ 하고 바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전문지식이나 경험이나 특성이 강할수록 가치관에 갇히기 쉽습니다.


가치관의 노예, 가치관의 덫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떤 신념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지언정 남에게 그것을 들이대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것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해답은 사람 숫자만큼 많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장오성 교무
원불교 송도교당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관련기사 PDF보기



주소 :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 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대표전화 : 02-2024-9200 | FAX :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 광고관리국 02-2024-9290 |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