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응권/매릴랜드치대 교정소아치과 과장
한 때 사람들이 송두율 교수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송두율 교수는 자신을 경계인으로 정의했고, 자신의 그런 운명을 ‘미래 진행형’일 수 밖에 없는 ‘해외 동포’로서의 인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경계인을 일종의 ‘회색분자’ 나 ‘기회주의자’정도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상황을 탓하면서 체념합니다. 김영삼 정부가 내 걸었던 세계화가 하나의 허세나 자가당착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복잡한 동북아 정세에다 한반도의 남북으로 갈려있는 상황이 경계인에게 설 땅을 배려할 만큼 여유가 없었던 시대 상황이라고 치부하자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기 문화를 뒤로 하면서도 새로운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일종의 혼합문화가 존재하듯이 경계인이 서 있는 공간을 “제3의 공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 한국인들은 원래부터 경계인 정서
사회학이나 역사학이 전공이 아닌 제가 거기에 무슨 토를 달겠습니까? 다만, 송두율 교수의 의견도 근간에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런 반향을 불러 일으킬 줄 누가 알았겠냐는 거지요. K-pop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만국 공용어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냐는 겁니다. 사실, 지금은 문화적으로는 ‘경계의 시대 (Age on the Boundary)’입니다. 경계 위에서 이루어 지는 것들이 각광을 받습니다. 크로스오버 음악이 대세를 이루어 가고, IL DIVO라는 다국적 그룹이 클래식 성악도 아니고 팝도 아닌 음악으로 인기 몰이를 합니다. 세계 대중 음악을 끌어가는 한국도 이제 막 그런 가수들이 등장하여 리드를 시작할 겁니다.
한국인들의 정서는 원래부터 경계인의 정서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수용하면서 새 것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반도의 나라라는 겁니다. 제가 미국인 동료들 한테 즐겨 하는 말이지만, 한국인의 감각은 “이태리 사람” 반, “아이리쉬 사람” 반으로 보면 된다고 말 합니다. 우리 안에는 이태리인의 열정이 있습니다. 싸이를 보면 그렇습니다. 내일을 꼼꼼히 따져 가기보다는 오늘 기분나는대로 소 잡아 먹고 놉니다. 물 마시고 이 쑤시는 멋도 있습니다. 반면에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서 주먹이 앞섭니다. 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면에서는 아이리쉬인들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혹독한 역사를 꾸역꾸역 살아낸 인내가 있습니다. 우리도 아이리쉬인들처럼 남의 땅으로 가서 억척같이 개척을 하고 그 땅에 뿌리를 내린 역사가 있습니다. 중앙 아시아를 거쳐 러시아에 퍼진 까레이스키들이 그들입니다. 또한, 미국 엘에이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한인들, 이번에 버지니아에서 일방적인 투표결과를 이루어 내고야만, 그 분들이 꼭 아이리쉬 같습니다. 본국 정부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일본인들과는 아주 다릅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서도 희망을 봅니다. 한국에서 안되면, 러시아로 이민을 가서라도 올림픽 무대에 서고야 마는 ‘빅토르 안’ 선수는 전형적인 한국의 경계인 입니다. 지금은 넘어지더라도 앞을 보고 가야 합니다. 쓰러져도 앞으로 쓰러져야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어차피 지난 50년의 한국 문화는 동서 문화 사이에 끼여 있었습니다. 정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끼여 있었습니다. 우리 경계인들이 그래야 하는 것 처럼 자신이 서있는 공간이 이 공간이나 저 공간에 속하여지는 것을 바랄 것이 아니라, 제3의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살아 가야 할 길입니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가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 그러하듯 너무 서둘러 결과를 보려 했을 뿐입니다. 세계화는 K-pop과 함께 ‘빅토르 안’ 선수와 함께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유전자는 퍼져 나가야 합니다.
# “한국인처럼 귀향 본능이 뿌리 깊은 사람 없어”
“닥터 배, 그런데 말이야. 우리 한국인처럼 귀향하려는 본능이 뿌리 깊은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 이 말은 1986년 가을에 만난 이정웅 전 KBS국장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다른 분이 그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방송국 PD로서 오랜 경험에 바탕을 둔 분에게서 들은 말인지라 쉽게 수긍이 갔습니다. 이 분은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카메라맨과 함께 세계 오지란 오지는 다 뒤져가면서 성공했다는(?) 한국인이 있는 곳은 모두 가서 인터뷰를 하였는데, 아무리 성공을 했어도, 아무리 험한 꼴 당하고 이민을 떠나 갔었어도, 모두 두고온 조국을 그리워하며 눈시울을 붉히더라는 얘기를 저한테 하는 겁니다.
# ‘빅토르 안’은 한국의 경계인
빅토르 안 선수가 드디어 금메달을 따고, 그의 아버지가 눈물을 쏟는 장면을 아침에 인터넷을 통해서 보고 나니 하루 종일 마음이 싱숭생숭했습니다. 러시아 매체와 인터뷰 하면서 아마도 선수생활을 마치면 모스코바에서 살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귀화를 했다는 말은 용병과는 다릅니다. 용병은 마음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안 선수도 러시아가 굉장히 고마울 겁니다. 한국에서 내침을 당해 막막할 때 손을 내밀어 주고, 부상으로 재기가 될지 그렇지 못할지 확신이 없는 상태의 선수를 어쨌거나 믿고 받아 주었으니까요. 마치,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저를 장학금 줘 가면서 받아준 캐나다의 제 모교와 비슷한 겁니다. 그러니 캐나다에 대한 제 마음과 비슷할 것 같아 안선수의 마음을 읽는 것이 그닥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기꺼이 캐나다를 제2의 조국으로 택했던 것 처럼, 안 선수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아온 과정과 그의 나이가 그 당시의 제 나이와 비슷하다보니 가슴 한 쪽이 먹먹해져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가족들과는 다른 국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아마도 러시아인들이 마음을 열어 주기 시작하면 한 편으로 고맙기도 하고 이젠 됐구나 하는 안도감이 오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럼, 내가 러시아인 이란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겁니다. 더구나, 그 나라는 이민자만으로 생긴 나라도 아닌데… 그래서 “빅토르 안은 그저 한 외국선수에 불과하다”는 말을 내 뱉은 그 빙상코치의 입을 주먹으로 치고 싶을 만큼 괘씸한 겁니다.
그래도, 소 잃은 집에 외양간은 고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소가 싫다고 들이 받고 나갔는데 왜 우리가 ‘우리’를 고쳐야 하냐? 고 물으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같은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자란 한국인이면, 이민가면서 ‘이 썩을 놈의 나라, 나 떠나면 폭삭 망해라’하면서 가는 사람 없습니다. 떠날때는 욕하면서 떠났더라도, 아무리 이민간 나라에서 크게 성공해도, 모두들 조국을 그리워 하며 삽니다. 아무리 못 되먹은 딸이 집을 나가도, 그게 내 딸인지라 돌아오면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아비의 심정과 비슷합니다. 내가 나라 밖에 살아서 직접 도움은 못 주어도 마음으로는 늘 응원하면서 삽니다. 그게 재외국민의 평균치입니다. 그러다가, 혹시 내 위치에서 뭐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돕다가 걸려서 반역죄로 감옥살이한 후 얼마전에 전자 발찌 푼 미국의 그 분도 그냥 평균 한국인의 평균치 생각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해외에 있는 한국인을 무시하는 한 한국은 절대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 설 수 없습니다. 그건 한국인이 못나서가 아니라, 나라 크기가 작아서 그렇습니다. 절대 국민 수가 모자라니 아무리 애를 써도 한계가 있는 겁니다. 국민을 늘려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라 밖에 내 편을 많이 만들어 두는 겁니다. 이스라엘 처럼, 스위스처럼, 해외 동포를, 그게 3세가 되었던 4세가 되었던 있는대로 포섭해서 내 편을 만들어 두면, 그게 국력이 됩니다. 영사관에 와서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족보 좀 캐 보고, 그 친구가 설령 파란 눈을 가졌어도, 피부가 좀 까무잡잡해도, 여권을 내어 주자는 겁니다. 확인해서 범법자만 아니면 그렇게 하자는 겁니다. 제 박사학위 동기가 분명히 브라질에서 왔는데 독일 영사관을 들락 거리더니 독일 여권을 받아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의 일입니다. 부지런히 자녀를 많이 낳아 훌륭하게 키워서 나라에 이바지하게 만든는 것이 물론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교육을 제대로 시키면서 나도 잘 살기가 어려워 인구가 자꾸 줄어드는 마당에, 나라 밖의 인재는 손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것과 비슷한데, 왜 속 좁은 생각만 하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자신과 좀 다르다고 ‘기회주의자’로 몰고, 저 놈이 없어져야 내가 잘 되는데 하면서 인맥 동원해서 길 막고 하면, 어느 실력이 있는 사람이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견뎌가면서 그런 사회와 조국을 위해서 자신의 미래를 포기 하겠습니까?
러시아로 이민간 안현수씨는 한국계 러시안으로 살다가 죽을 겁니다. 캐나다 시민권 받은 저는 미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구하고 있지만,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살다가 죽을 겁니다. 그래도 제가 아는 것은, 저는 한국인이고, 한국인으로 살다가, 한국인으로 죽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보는 반 중국계인 제 외손주는 그가 자라면 그런 할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면서 한국을 도울 겁니다. 이 것이 제가 말하는 경계인으로 사는 삶입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제가 만난 러시아인들은 대개 유태인들 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공산정권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수가 밖으로 빠져 나왔고, 그 중 많은 수가 미국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정부에서 천문학적 돈을 써가며 그들을 러시아에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으로 이주 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필요한 나라입니다. 나라의 운명이 그들의 인구를 어떻게 유지하고 늘려가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러시아에서 나온 정착민들은 그들이 러시아에서 겪었던 고생에 비하면, 총알이 좀 날아오고 폭탄이 터지는 것은 그저 대수롭지 않았기 때문에 요르단강 서안을 따라서 멋지게 지어 놓은 집들이 천국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 얼마 살다가는,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왜냐하면, 그 작은 나라에서도 본국에서 태어난 유태인과 러시아에서 이주해온 유태인들을 차별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이민 나가도 아무도 욕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엘에이 지역에 자리잡은 유태인들은 정신력이 아주 강하고 자식들을 위하는 마음은 한국사람들이 본 받아야 할 만큼 대단합니다.
제 환자 중에 그런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민 온지 10년이 채 안되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므로 식구들 중에서 아이가 영어를 가장 잘 했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 엄마, 아빠와 얘기할 때는 쉭쉭거리는 러시아 말로 합니다. 그 아이의 아빠는 아직도 러시아 방송을 듣고 봅니다. 술 한잔할 때도 러시아 술집에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예, 맞습니다. 유태인입니다. 그것은 제가 저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하고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캐나다 여권을 가지고 미국에 사는데, 한국인의 명절을 지키면서 집에서는 한국말을 하면서 살고, 그들은 미국에 살지만, 집에서는 러시아 말을 하면서 유태인의 절기를 지키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진 국적에 상관없이 그들에게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Raison D’etre (존재의 이유) 입니다. 그들에게 배신자는 국적을 바꾼 사람이 아니라, 유태인이기를 거부한 사람입니다. 왜 어쩌다가 미국의 유명인사가 자기는 유태인이였노라고 요즘 말로 ‘커밍아웃’ 합니다. 그러면, 무슨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매스컴에서 떠들지요.
영화 배우 폴뉴먼이 그랬고, 감독 스필버그 때도 난리가 났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인이라는 국적은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유태인이라는 그들의 뿌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피츠버그 스틸러즈에 하인즈 워드 선수가 한국인이라면서 커밍아웃을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만약 그가 유태인이였으면 난리가 났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데, 어쩌라고?’ 하는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었습니다.
왜 말이 이렇게 길어지는가 하면, 우리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우리 한테는 ‘나라 = 국토’였습니다. 따라서 땅을 떠나면 그 사람은 속된 말로 ‘배신 때리고’ 저만 잘 살려고 다른 나라 사람이 된 사람으로 이해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나라 = 사람’ 입니다. 따라서 어디가서 어느 나라의 국적으로 사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잠깐! 유태인들은 나라가 없었지 않았나요?’라고 되묻고 싶으시지요? 예, 맞습니다. 그들은 1948년까지 나라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 말은 이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국경이 없어지고, 왕래가 잦아지다보니, 다시 말해서 세계화되다 보니, 앞으로 우리가 살 세상이 유태인의 그런 국가관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과 시대에 살게 생겼다는 겁니다.
마카비 올림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4년에 한 번씩 모이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세계의 유태인들이 모여 자기네끼리의 올림픽을 합니다. 웃기는 것은 그게 국가 대항전입니다. 꼭, 올림픽에서 그러는 것 처럼, 각국의 대표 선수들이 거기 모여 열심히 경쟁을 합니다. 그래도, 끝낼 때는 자연스럽게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나누어 갖고 헤어집니다. 우리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우즈벡 등에 흩어져 사는 우리의 4세, 5세들 중, 그들이 원하면 한국사람으로 인정해 주어야 국력이 자란다고 봅니다. 또, 고조 할아버지가 일제 때, 멕시코 농장으로 팔려가 얼굴에서 아예 한국인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멕시코인이 서류들고 와서 ‘내 성이 곤잘레스-슈나이더-킴’이라고 말하면, 한국인으로 인정을 해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그가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될 만큼 되면, 우리 여권을 선듯 내 주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럼, 우리의 순수성은 어디로 가는데요? 라고 묻고 싶으신가요? 그 혈통의 순수성이라는 것이 조금 지나면 없어진다니까요? 배우 폴뉴먼 얼굴이 중동사람처럼 생겼었나요? 강남의 성형외과에서는 모든 여성들의 얼굴을 열심히 ‘세계화’하고 있는데 왜 유독 이것만은 안된다고 고집하시냐구요. 스필버그 감독이 왜 오십평생 잘 살다가 늙으막에 “근데 말야, 나 실은 유태인이야” 라고 말했을까요? 생각해 보셨나요? 제 생각에는 그게 자신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자랑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하면, 동족들이 따뜻하게 받아주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걸 겁니다.
제발 이제는 이것 때문에 가르고, 저 것 때문에 돌아서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유승준과 빅토르안을 비교해가며 억지로 비교 논문을 써 가면서 신문에 내어 자신의 유식을 들어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은 우리는 죽으나 사나 같이 살아 갈 한국인 공동체입니다. 나라가 작은 것도 힘에 겨운데 그걸 가르고 쪼개서 어쩌겠다는 건가요? 이제 세계화는 본격적으로 시작 될 겁니다. 세계화로 가면 갈 수록 세계 방방곡곡에 퍼져있는 한국인의 디아스포라가 힘을 발휘할 때가 올겁니다. 4년 뒤, 누가 압니까, 까레이스키 중 한 사람이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평창의 언덕에서 스키를 타고 달릴지? 그 때가 기다려 집니다. 미국에 사는 국적이 애매한 재외 한국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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