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대림미술관에서 하는 슈타이들 전시회를 다녀왔다. 전시회 제목은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 슈타이들과 어떻게 책을 만드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도서관과 서점에 참 자주 다녔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도 하고 그 와중에 소장하고 싶은 도서가 있으면 서점에 가서 구매하기도 하곤 했다.
그 많은 책들 속에서 내가 꼭 사서 소장하고 싶었던 책은 어떤 책이었을까. 보관하며 읽고 또 읽고 싶은 책도 있었고 빌리기 힘든 신간이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산 적도 있었고 막연히 책 자체의 느낌이 좋아 소장하고 싶었던 책도 있었다.
많은 책들을 보면서 나는 책의 내용물, 즉 스토리에만 집중을 했지 책의 표지, 크기, 서체 등에 관한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책의 내용은 작가가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책이라는 물건 그 자체는 누가 만들어 내는 것일까. 출판사에서 책을 인쇄하기는 하지만 그 표지 디자인이나 글자, 어떠한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 등의 편집은 누가 해 내는 것일까.
그동안 책을 만드는 사람에 있어서 작가에게로만 시선을 집중시켰다면, 책이라는 물건이 내용과 함께 예술품으로 인정받기 위해 작가 이외에 어떠한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회였다. 편집-종이의 선택-교정쇄-색 교정-운송의 과정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며 내가 가진 궁금증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슈타이들은 세계적인 출판계의 거장이다. 한 권의 좋은 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쏟아 붓는다. 책을 스토리만 존재하는 단순한 종이와 잉크의 배합이 아닌 책 그 자체를 소중한 가치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시회에는 A부터 Z까지의 조합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글자들이 다양한 색과 크기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같은 내용의 글자라도 크기에 따라 색깔에 따라 그리고 쓰인 종이의 질감에 따라 서로 다른 느낌을 풍긴다. 또한 같은 글자와 내용이라도 옆에 들어가는 삽화에 따라 느낌이 잘 살아나고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같은 내용물과 이야기라도 어떤 그릇에, 어떤 느낌과 감성으로 얼마나 어울리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그 책이 예술작품으로서 지니는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책 한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렇듯 많은 노력과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전공서적과 그 외 도서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방대한 지식과 그분들의 숱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담을 이렇게 편하게 책상에 앉아서 볼 수 있게 공유해 주시니 어찌나 감사할 일인지 모른다. 소설책, 여행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너무나도 새롭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책 한권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책을 통해 경험하고 그 주변의 지리까지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앉은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호사이다.
또한 이제까지 책을 만드는데 있어 저자분들만을 생각했다면, 이야기를 담아내어 읽기 쉽게 책이라는 물건을 만들어준,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할 일이다. 독자인 나는 이들이 만들어준 작품을 즐기는데 감사하며, 일상의 행복을 이분들께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지희
이플러스치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