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cervical abrasion이라는 병명은 들어 봤어도 cervical abfraction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개업을 하고 한참이 지나 잠시 미국서 공부를 할 때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class V의 non-caries lesion중에 abfraction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치아에 가해지는 flexural force에 의해 치경부가 파절되는 현상으로 비정상적이거나 과도한 교합력에 의해 흔히 생기는 질병이다. 그런데 이런 치아의 문제를 갖고 있는 환자분들이 정말 많다. 특별히 단단하고 질긴 음식을 즐기는 분들이 많은 우리나라에 많은 것 같고 대부분 글래스아이오노머 혹은 컴퍼짓레진으로 수복하고 교합을 조정해 주는 것으로 치료를 하게 된다. 그런데 좀 더 심한 경우 크랙과 심한 파절로 발치를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음식에 대한 기호와 저작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보내려면 남아 있는 치아를 정말 아끼고 보호하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른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읽은 글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는데 여기에 짧게 옮겨 본다.
“어릴 때 청각 장애를 앓아 귀가 먹었던 한 할머니가 뼈암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왔다. 할머니는 평생 시각 장애 할머니들과 함께 살며 수발했다. 서로에게 눈과 귀가 됐다. 시각 장애 할머니들은 안마로 생계를 꾸려 왔다. 청각 장애 할머니가 암에 걸려 몸져눕자 시각 장애 할머니들이 조를 짜 매일 병원에 왔다. 그러고는 온몸을 몇 시간씩 마사지해줬다. 청각 장애 할머니는 보살핌 속에서 삶을 편하게 마쳤다. 호스피스 의료진은 ‘죽어 감’을 보면 ‘살아 옴’이 보인다고 말한다.”
매일의 임상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즐거움을 주고 건강을 지켜주던 치아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 있던 자리에서 뽑아내는 마지막 집행을 참 많이 하고 있다. 그러면서 발치겸자에 딸려 나온 녀석의 지난 아픔들을 돌아보게 된다. 주인의 잘못된 ‘살아 옴’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에는 생을 마감하는 슬픈 운명의 녀석들… 습관이란 참으로 가공할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결국 구강건강이라는 것이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습관과 절대적인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치과의료인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사람들에게 좋은 습관을 갖도록 교육하고 지도하는 일이지 싶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이를 악물고 또 빠득 빠득 갈아야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어찌하는가?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의 다발성 abfraction을 수복하고 때로는 재갈 같은 스프린트를 입에 물리면 다인가? 치아를 치료하면서 동시에 마음까지 힐링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습관은 좋은 마음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에 지쳐 시리고 아픈 치아 감싸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우리가 따뜻한 위로와 보살핌으로 마음을 먼저 치유해 주려는 노력을 다한다면 그들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주고 평생 제 자리를 지키며 즐거움과 건강을 지켜주는 녀석들이 주인과 함께 생을 마감하게 해 주는 해피엔딩을 맞이 할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명진 크리스탈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