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분노와, 불신이 우리를 짓누르고 잠못이루게 한다.
분통터지지 않고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누가 있으랴.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곳곳에 노란 리본이 나부끼고 있다.
꽃다운 나이에 어른들 말만 믿고 바다속에 갇혀 몸부림 치다 유명을 달리한 죄없는 깨끗한 어린 영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인다. 명복을 빌어본다.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길 기원한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희생자 유족들의 아픔도 하느님께서 어루만져주고 보듬어 주시길 기원한다.
6·25때 19살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큰형님의 죽음을 목격했기에 그 가족들의 슬픔이 얼마나 클것인가를 나는 알 수 있다. 글쓰기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이런 일을 당하면서 믿는이나 믿지않는이나 하느님은 과연 있는 것인가? 계신다면 왜 침묵하고 계신가? 의아심을 갖고 분통을 터트릴때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가라앉은 배라도 들어 올리는 기적을 일으켜야 한단 말인가!
이시점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하느님을 탓하거나 원망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왔다.
나는 이번일을 계기로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해야 할 사람이 하나 생겼다.
그사람은 바로 선장이다. 자기만 살겠다고 자식같은 어린 학생들을 내팽개치고 어떻게 혼자만 탈출할 수 있단 말인가! 선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을 살만큼 산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그 경우에 처했을때 목숨을 바쳐 최선을 다할수 있었겠는가? 지하철에 폭발물이 터져 아수라장이 되었을때 내 목숨을 걸고 뛰어들 수 있겠는가? 강도를 만나 곤궁에 빠진 사람을 싸메주고 여관 데려다 돈까지준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처럼 길가다 불의하게 봉변을 당하고 맞는 사람을 도와 주었는가?
치과의사로서 조금만더 내가 신경을 쓰고 잘해주었더라면 기뻐했을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정말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며 상대방 인격을 존중하며 살아왔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선장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면 남는게 무엇인가? 그사람은 법대로 죗값을 받으면 그뿐이다. 누가 그사람에게 돌멩이를 던질 수 있는가?
문제는 내가 변화 되어야 한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기보다 나 중심의 삶에서 이웃을 생각하고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변해야 한다.
아무리 법을 강화하고 규제 해본들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이런 참사는 또 일어날 수 있다.
이번사건으로 우리사회가 입은 상처는 고통과 신뢰의 상실이다. 고통은 함께 나누면 작아지고 시간이 가면 해결 될 수 있다. 무너진 신뢰회복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구조된 어떤 학생은 인터뷰에서 “이젠 어른들 말을 생각해봐서 듣겠다”고 했다. 우리 모두가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하느님 중심으로 삶이 변화해야 한다.
성프란체스코 평화기도중 일부를 바쳐본다.
주님!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곳에 기쁨을 살게하소서
슬픔과 절망, 아픔이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이다. 이번에 희생되신 남윤철(35. 아오스딩) 단원고 선생님은 제자들을 구출하고 의롭게 선종하셨다. 그의 부친은 치과의사이시다. 아버님은 “의를 위해 죽었으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고 하셨다. 숙연해진다.
모든 영혼들이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길 기원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요,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나치는 학생들 보기가 민망하다.
변영남 성신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