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치과의사 그리고 논쟁

  • 등록 2014.06.13 10:17:25
크게보기

사진은 치과의사들에게 가장 친숙한 미디어 중의 하나다. 학부 때 강의시간이면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어김없이 슬라이드가 가득 담긴 카로셀 트레이를 가지고 등장하셨다.

강의 도중 슬라이드 하나가 잘못 삐져나가 카로셀이 버벅거리면, 끼여있는 슬라이드를 손상없이 재빨리 빼내어 강의에 지장을 주지 않게 하는 것이 조교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라고 할 수 있었다.
또 빛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혹한 조건인 환자의 입안을 촬영해야 하는 임상사진은 고도의 사진 지식과 숙련된 촬영기술을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치과대학 동아리 중에 사진 서클이 대부분 있었고, 치과의사 중에는 프로사진작가 못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고수들이 많다. 동문회 행사가 있을 때면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사진 잘 나오는 ‘포토 포인트’를 열심히 찾고 있는 사진부 선·후배님을 어김없이 볼 수 있으리라. 

디지털 문명은 치과계에서도 이러한 사진의 생산과 소비가 너무 쉽고 방법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임상사진이 코닥 슬라이드용 아날로그 필름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10여 년 전부터 급격하게 넘어온 것은 간편해진 생산과 다양한 소비가 함께 시너지를 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치과의사들은 그 수준과 눈높이에 관한 한 세계최고 수준의 사진을 대량생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상당수의 임상가들이 진료실에서 매일같이 임상사진을 촬영하고 있고, 이를 상담자료와 강의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또 지인들과 온라인 상에서 수시로 토론하며 개인 블로그와 병원 홈페이지에 홍보용으로 쓴다. 그런 측면에서 아마도 필름 카메라 시절 100여 년 동안 생산되었던 이미지가 이제는 하루 만에 진료실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그러나 이미지의 범람은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때로 환자는 병원 홈페이지에 증례를 허락없이 게재하여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며 법적책임을 병원 측에 제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치료전·후 사진의 경우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라면 환자의 사전동의가 필요하다. 또 관대한 편이었던 학술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도 초상권에 대한 법적 해석은 점점 더 엄격해지는 추세에 있다. 

디지털은 복제가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진다는 엄청난 장점과 치명적인 단점을 동시에 갖는다. 컴퓨터 자판 한 두 개를 누르는 것만으로 쉽게 다운받거나 아니면 적어도 ‘print screen & paste’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저작권 관련한 분쟁이 더 빈번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누군가가 찍은 사진이 창작물이라기 보다는 공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면서도 이미지는 온라인에 넘쳐나고, 필자도 발표를 위해 필요한 이미지를 찾아 슬라이드에 넣다보면 나중에는 출처가 어디인지를 스스로도 기억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게 우리는 어디까지가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것인지 조금씩 감각이 무디어지기 시작한다.

임상사진은 과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창작물일까?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이어야 한다.

치과계 내의 법 감정과는 달리 임상사진의 경우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현재 법원의 판단이다. 치료 전·후의 환자 사진은 치료의 효과를 나타내려고 하는 실용적 목적으로 촬영된 것이므로 피사체의 선정, 촬영방법 등에서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인정되지 않아 사진저작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상사진을 홈페이지 등에 도용한 경우 영업활동상의 이익을 침해한 행위에 대한 정신적 손해만을 배상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임상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원하는 사진 하나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하고 인내가 필요한지를 우리 치과의사들은 모두 알고 있다. 따라서 사진의 도용은 법률적 책임 외에 도덕적 책임에서 더 엄격해지는 것이다. 

가끔 필자는 주위 지인의 사진을 사용한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면 흔쾌히 원본을 보내주시는 경우가 많다. 사진에 ‘courtesy of 누구누구’라는 글자를 넣는데, 때때로 제공자께서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되었다”라는 반응을 보일 때마저 있다. 하지만 필자는 적어도 임상사진의 경우 필자가 촬영하지 않은 자료에 대해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을 도용하지 않고 출처를 밝히는 것은 분명히 제공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홈페이지를 찾는 환자 그리고 강연을 듣는 참석자에게 사용자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진실성 그리고 매너일지도 모른다.

박상섭 리빙스톤치과의원 원장

박상섭 리빙스톤치과의원 원장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 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대표전화 : 02-2024-9200 | FAX :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 광고관리국 02-2024-9290 |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