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깊은 불신 중의 하나가 왜 치과마다 충치 개수가 다르냐는 것이다. 충치 진단 개수에 따라 치료비는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것 같다. 치과의사는 충치를 진단하기 위해 주로 시진을 사용하고, 보조적으로 방사선 사진을 이용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이러한 진단 과정은 누가 보더라도, 언제 하더라도 항상 타당하고 신뢰도가 높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의과 검진 시, 장비를 이용한 진단검사 결과를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은 그 장비가 타당성있고 신뢰성 있는 장비라는 전제가 있다. 따라서 자신이 질병을 찾아내고 진단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면, 통계학적인 개념인 타당도와 신뢰도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충치를 찾아내는 과정(caries detection)과 진단하는 과정(caries diagnosis)은 별개의 개념이다. 진단(diagnosis)은 객관적으로 탐지(detection)한 질병에 대하여 그것을 치료할 치과의사가 축적된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질병상태, 치료계획 등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전문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진단 행위는 치과의사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탐지 결과는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치과의사 면허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인식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과의사를 탓할 일도 아니다. 충치가 사실 애매하다. 모든 게 그렇듯이.
진단의 타당도와 신뢰도를 이해할 때 알아야 할 개념에는 민감도와 특이도가 있다. 민감도란 질병이 있을 때, 그 진단도구가 질병이 있다고 하는 능력을 말하고, 특이도란 질병이 없을때, 진짜 질병이 없다고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진단도구 또는 치과의사는 충치를 진단함에 있어 민감도와 특이도가 높아야 한다. 최근 소개되고 있는 초기우식진단장비는 치아의 탈회에 따른 치아의 미세한 변화를 탐지함으로써 그 결과로 나타내는데, 민감도는 높지만 특이도는 낮은 특성이 있다. 반면 방사선 사진은 민감도는 낮지만, 특이도는 높다. 사람의 눈에 의존하는 시진은 민감도와 특이도는 모두 그리 높지 않다. 치과의사는 항상 오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재미난 예가 있다. A 치과의사와 B 치과의사가 6000개의 치아를 동시에 검사한 결과, 치과의사 A, B의 우식 진단개수는 각각 158개, 162개로 나타났고, 두 치과의사 모두 충치라고 한 치아는 120개, 충치가 아니라고 한 치아가 5800개이다.
이 두 치과의사의 일치율은 0.987(5920/6000)로 매우 높은 일치율을 보인다. 이렇게 일치율이 높은 두 치과의사가 우리 지역에 있는 것을 주민들은 고마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치과의사가 진단한 충치의 수는 모두 200개이고 이 중, 120개만이 일치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충치 진단능력에 있어 일치율은 60%로 임상적 상황에서 봤을 때는 매우 낮은 수치이다. 이 지역의 주민들이 두 치과의사에 의해 순차적으로 치료를 받는다면, A는 158개를 치료할 것이지만, B는 42개를 더 치료할 것이다.
주민들은 충치를 못 찾은 A와, 충치를 더 찾은 B 중 누구를 더 불신할까? 바로 이것이 치과의사가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며, 한번 내원한 환자를 계속해서 지켜드려야 하고 관리해드려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 치과의사가 많아진다면, 치과의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치과의사가 환자를 위해 임플란트나 교정, 심미 술식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질병의 진단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길 바란다. 특히 예방치과 진료와 평생구강건강관리를 하고자 하는 치과의사는 더욱 그러하다. 모든 일의 시작이 절반인 것처럼, 치료의 시작은 진단이 절반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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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부산대 치전원 예방치과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