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이 지난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에 상정되었다. 서비스법은 지난 2011년 12월 처음 입법 발의됐지만, 의료영리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법이라는 이유로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의 반대로 2년2개월째 국회에 계류 중이었다.
법조문에 의료와 관련하여 한줄 언급도 없는 서비스법이 의료영리화를 위한 법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그동안 끈질기게 시도된 정부 정책과 관련이 있다. 2008년 기획재정부는 업무보고에서 ‘의료서비스 규제 완화’ 방안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다양화를 위해 영리의료법인 도입 검토”와 “의료 분야 투자 확대와 다양한 의료서비스 확충을 위한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후 2008년 4월 정부가 발표한 1단계 발전방안에는 의료관광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해외환자유치알선, 의료기관 영리 부대사업, 의료기관 합병, 병원경영지원회사(MSO), 의료기관의 호텔 등 숙박업, 보험회사의 환자유치알선” 등을 허용하는 내용을, 9월 2단계에는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 회사 도입, 민간보험회사 건강관리서비스 겸업 허용, 1인 1개소 영업 규제완화, 비전문자격사의 의료기관 및 약국 영업 허용” 등을 담았다. 이를 토대로 2011년 11월 서비스법을 발의하였는데, 제2조(적용범위)에서 “의료, 교육, 관광·레저, 정보통신서비스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서비스산업에 대하여 적용한다”고 하여 공공적 사회정책에 해당하는 의료와 교육을 성장 ‘산업’으로 규정하였다.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이하 위원회)를 통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공공적 사회정책을 기재부 독단으로 처리하게 된다는 점 때문에 여론의 비판을 받아 국회에서 폐기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2012년 또다시 문제점을 일부 ‘개선’했다는 서비스법 제정안을 제출하였다. “교육과 의료, 정보통신 등의 명문이 빠진 대신 “서비스산업이란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을 말한다”고 규정하여 오히려 대통령령으로 위임함으로써 교육, 의료 뿐만 아니라 제조업 이외의 모든 분야를 서비스산업으로 포괄하도록 그 범위를 더욱 넓혔다. 또한 기재부의 권한이 일부 축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위원회를 통해 기본계획이 정해지고, 이에 따라 각 부처의 실행계획이 결정되도록 함으로써 기재부가 서비스산업으로 규정될 수 있는 모든 사안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비스법이 의료영리화를 위한 법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첫째 서비스산업발전을 명분으로 의료영리화 정책추진의 근거가 될 수 있고, 둘째 영리병원 도입과 같이 보건복지부와 기재부의 의견이 대립할 경우 위원회에서 기재부 입장에 따라 영리병원 관련 도입 법률개정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영리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행보에는 거리낌이 없다. 지난 9월 19일 200만 명의 반대서명과 70%이상의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한 데 이어서, 서비스법을 기습적으로 상정한 것이다. 또한 경제자유구역 내 해외병원 개설시 외국의 의사, 치과의사 면허 소지자의 비율 10% 기준을 삭제하는 내용의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의 개설·허가 절차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21일 입법예고하였다. 내국인 진료 허용, 국내 자본 투자 허용, 내국인 의료인 고용 허용 등 수순을 밟아가더니, 외국인 의료인 기준마저 삭제하려 하고 있다. “외국인 진료를 위해 해외병원을 유치하겠다”는 명분은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리고, 사실상 국내 영리병원을 허용한 것이다.
영리병원이란, 한마디로 투자와 배당이 가능한 병원을 말한다. 외부의 민간자본이 병원에 유입될 수 있고, 결산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이윤을 배당할 수 있어, 원칙적으로 의사 혹은 비영리법인만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명시한 의료법과 상충된다. 의료법에서 비영리법인은 수익사업으로 돈을 벌어도 배당을 해선 안 되고, 인건비·시설투자·연구비 등 병원의 설립 목적에 맞도록 써야 한다.
정부는 부대사업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영리자회사를 허용하도록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한 이유에 대해 “병원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부대사업이 제한돼 있어 의료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므로, 영리 자회사를 통해 수익이 늘어나면 병원 의료업은 개선되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진료 외의 부대사업 중 일부를 수행하는 것으로 영리화와 무관하다”고 하였다.
과연 그럴까? 영리 자회사의 수익은 결국 의료정보가 부족한 환자가 내는 의료비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2005년 국내에 도입된 ‘다빈치 로봇 수술’ 사례가 대표적이다. 로봇 수술은 “의사의 손 대신 로봇이 환자의 뱃속에 들어가 수술 부위를 절제·봉합하는 등의 시술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2005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처음 도입한 뒤 큰 성공을 거둬서, 30억 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를 대형 병원들이 앞 다퉈 사들였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다빈치 로봇 수술 기기를 갖춘 나라가 됐고, 병원은 고가 기기의 원가를 회수하기 위해 환자들을 유인했다. 로봇 수술은 일반 수술보다 6~10배나 비싸다. 2011년 6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로봇 수술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장기 생존율이나 재발률, 합병증 발생률 등에서 일반 개복 수술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지 않다는 게 결론이었다.
환자들은 병원에 가서 써야 할 돈이 크게 늘었는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까 민간의료보험에 더 의존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성은 OECD 평균(80%)을 한참 밑도는 60% 안팎이다. 반면 의료비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 1위를 달린다. 의료비가 증가하면 건강보험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초래한다. 공공의료 보장성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다. 의료보장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지면 당연지정제가 지켜져도 건강보험이 유명무실해진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사람들이 더 건강해질까? 타일러 코언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거대한 침체’에서 “수많은 연구는 보건의료 분야에 들인 비용이 실제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표시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보건의료에 많은 돈을 썼지만 국민을 더 건강하게 만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1인당 보건의료비는 6931달러로 일본인(2580달러)의 3배, 칠레인(772달러)의 10배에 이르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미국인의 수명은 77.9살로 일본인(82.6살)이나 칠레인(78.6살)보다 짧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비싼 대학 등록금과 수억원의 개원 비용을 스스로 감당한다. 공공 지원은 거의 없다. 이 과정을 거쳐 의사 집단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자영업자’로 규정하게 된다.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급여진료만으로 병·의원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급여진료, 선택진료가 발달하게 되고, 병원은 장례식장·주차시설 등 ‘비의료사업’으로 수익을 올린다. 법적으로는 모두 비영리기관인 병의원들이 사실은 대부분 영리기관으로 운영되어 영리추구가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제도와 운영의 불일치는 한국의 의료의 현실이다. 이것이 정부가 의료영리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이유이며, 국민들이 이미 의료계가 영리추구를 하지 않느냐고 비난하는 이유이다. 또한 동시에 더 이상의 의료영리화가 추구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개선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의료의 영리성을 더욱 강화하여 완전히 상품화 하는 것으로 정부가 추구하는 의료영리화이다. 다른 하나는 공공성을 확대하여 의료를 원래 모습으로 탈상품화하는 것이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치과계는 수년 동안 피라미드형 불법네트워크치과와 불법 사무장치과와의 전쟁을 겪으며, 의료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때 불어 닥칠 수 있는 폐해를 몸소 겪어왔다. 환자가 “치료의 대상”이 아닌 “수익을 남겨야 하는 상품”이 되면 비의료인의 불법진료,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저가 재료 사용, 환자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위험한 시술 등으로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는 것을 경험해왔다.
그러하기에 결론은 하나,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의료법은 제 1조에서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건강할 권리는 민주주의 사회가 국민에게 기본적으로 보장해야할 최우선 가치이다. 의료영리화로 인하여 훼손돼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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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탁 서울지부 법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