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소원이란 공권력에 의하여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에 헌법재판소에 제소하여 그 침해된 기본권의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헌법소원은 ‘기본권이 침해된 당사자’만이 제기할 수 있으며, 과연 ‘청구인의 기본권이 침해되었는지’ 여부를 따지는 소송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8. 7. 16. 96헌마246 사건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의료법 등의 위임에 따라 치과전문의자격시험을 실시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행규칙의 개정 등 절차를 마련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가 위헌임을 확인하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이 사건의 청구인들은 당시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치과의사 면허를 받았을 뿐 아니라 구강악안면외과, 소아치과 등의 전공의수련과정을 “사실상 마친 자”들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보건복지부장관의 입법부작위에 의하여 이들의 ‘치과전문의’라는 직업선택의 자유 및 수행의 자유 그리고 다른 의료분야의 전문의와의 관계에서 평등권이 침해되었다고 결정하였다.
청구인들은 헌법소원심판청구서에서 보건복지부장관 및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치과전문의자격시험을 실시하지 아니한 부작위와 함께 위와 같은 보건복지부장관의 입법부작위에 의하여 기본권이 침해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에서 심판대상은 당시 법령 하에서 치과전문의자격시험을 실시하지 아니한 것과 제도 자체의 미비 두 가지였다.
논리적으로 두 심판대상은 양립할 수 없다. 만약 전자의 치과전문의자격시험 불실시가 위헌이라면 이는 당시 법제도하에서도 충분히 시험을 실시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므로 후자의 제도적 미비를 이유로 한 입법부작위는 성립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우선 적법요건의 판단에서 전자의 청구에 대하여 당시 법령에 의하여 청구인들이 구체적으로 치과전문의 자격시험의 실시를 요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당시와 같이 완비되지 않은 제도하에서는 어느 누구도 치과전문의자격시험 실시를 요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자의 청구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제도의 미비 자체로 청구인들이 직업으로서 치과전문의를 선택하고 이를 수행할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입법부작위에 대한 위헌을 결정하였다. 이와 같은 결정의 취지에 의하면 보건복지부장관은 반드시 청구인들이 전문의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치과전문의제도를 정비하여 시험을 실시하여야 한다.
당시 의료법 및 그 시행령인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은 치과전문의제도 실시를 예정하고 있었다. 치과전문의제도가 실시되려면 전공의를 수련할 수 있는 수련병원이 지정되어 소정의 수련을 받은 의사들이 배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치과전공의를 지도할 ‘치과전문의’와 ‘기준에 따라 지정된 수련병원’ 등이 존재하여야 한다.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를 마련하지 않았었고 그로 인하여 치과전문의 시험 실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당시까지 치과전문의시험이 실시된바 없어 치과전문의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과전문의 수련병원을 지정한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수련의들을 지도할 전문의가 없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당시까지 사실상 전공의 수련과정을 거친 자들에게 전문의 자격을 부여하는 경과조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최초의 전문의자격제도를 실시하기 위하여 과도기적인 조치로 사실상의 수련을 마친 자들에게 시험이나 연수 등 일정한 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면, 경과조치는 수련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자들로 한정할 수는 없다. 전문의 자격제도 시행 이전 사실상의 수련을 받았다는 점과 치과의사로서 일정기간 당해 전문분야 업무에 종사한 자들이라는 점에서 서로 일치하는 자들 중 일부에게만 경과조치가 이루어진다면 바로 평등권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정적으로 치과전문의제도가 실시되려면 이미 일정한 수준의 전문의로서의 수련을 받고 업무에 종사해온 소위 ‘기수련자’들에게 차별없이 전문의자격취득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이 보건복지부장관의 입법부작위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침해되었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맞도록 치과전문의 자격제도를 합헌적으로 시행하는 길이 될 것이다.
행정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의 취지는 행정청이 입법을 하지 않은 부작위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보면 어떠한 내용이든 행정청은 일정한 시행령 및 시행규칙 등을 제정하는 입법행위를 하면 위헌적인 상황은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실시를 위한 입법이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이는 또 다른 위헌문제로 발전하여 다시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으로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치과전문의제도가 이러한 문제들을 철저히 검토해 안정적으로 실시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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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익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전 헌법재판소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