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를 일으킨 다나의원과 같이 1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한 의료기관이 또다시 적발됐다. 보건복지부는 원주시 한양정형외과의원에서 환자 100여명이 C형 간염에 감염됐다고 하였으며, 제천 양의원 역시 주사기 재사용 사실이 확인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현장조사를 하는 한편 면허취소도 불사하는 등 처벌규정을 강화하겠다고 하고 있다. 지난해 뇌병변 장애 2급 판정을 받고 수전증을 앓으면서 진료를 하다가 생긴 다나의원 사태로 인해 복지부에서 ‘의료인 면허신고제 개선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하였는데, 더 나아가 정부가 주도하여 자질문제가 있는 의료인의 면허를 제한하겠다고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다. 최근 강남 소재 건강검진센터에서 수면내시경을 받는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의사가 검찰에 고발되면서, 의료인의 성추행에 대한 문제의식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의료인의 성추행은 국민의 신뢰를 배반하는 것은 물론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지난해 3월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등록된 회원 1만768명을 대상으로 ‘2015년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에 응답한 1,793명 중 성희롱은 33.0%, 성추행은 13.7%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해자로 교수가 24.5%, 상급 전공의 19.6%, 동료 및 직원 12.2% 순으로 조사되어 성희롱, 성추행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과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12월에는 여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전 교수 박모씨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9월에는 연구실 조교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서울대 전 교수 배모씨가 불구속 기소되었다.
의료인이 국민들에게 전문직으로서 신뢰를 잃으면, 사회는 의료인과 맺은 사회계약의 선을 넘어 타율로 다스리려고 한다. 전문직이 스스로 자율정화하는 기능을 상실하거나 부실하게 되면, 사회는 법과 규칙 등을 만들어 규제하려고 한다.
사회가 의료인에게 신뢰를 주는 것은 의료인이 가진 지식과 기술이 신뢰할 만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의료인이 사용하는 지식과 기술이 명시적이고 합리적이며 이타적인 가치와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을 경우에 국한된다. 그러므로 사회는 의료인이 엄격한 직업윤리를 갖추고 자율적으로 전문지식과 술기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며, 높은 전문 직업성을 갖출 것을 당연히 요구한다. 그러기에 자율정화는 전문직업인의 생명과도 같이 소중한 가치를 갖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법에 의하면 의사나 치과의사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직역단체가 자체적으로 징계할 방법은 거의 없다. 2011년 개정된 의료법에 각 중앙단체의 징계요청이 있을 때 1년 이하의 면허정지를 할 수 있게 하였지만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조항이다. 협회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어 경고를 해봐야 이로 인한 불이익은 거의 없어 사실상 자체 징계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제도상 허점 때문에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일반인은 자체 징계를 하지 않는 의료인 단체를 제 식구만 감싸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보게 되고, 이는 의료인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왔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변호사 등의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종사자들의 단체 결성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어, 단체는 구성원 권익보호 증진 등의 ‘자율성’은 물론 국가나 사회가 요구하는 ‘공익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전문가 단체의 공익적인 역할의 필요성에 따라 변호사법에서는 각 단체의 자율성과 공익성 확보를 위해 소속 회원에 대한 징계권을 규정하고 있다. 변호사는 변호사법 7조에 따라 개업을 하려면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을 해야 하고, 변호사법 8조에 의해 변호사의 자격이 없거나 결격사유에 해당되는 자, 심신장애로 인해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자, 공무원 재직중의 위법행위로 인해 형사소추 또는 징계처분을 받거나 그 위법행위와 관련해 퇴직한 자로서 변호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해서는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변호사에 대한 징계 또한 변호사법 92조에 의해 징계위원회가 제1차적 결정권자로 권한을 행사하고 징계 종류 또한 영구제명, 제명, 3년 이하의 정직,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견책으로 다양하다. 이 같은 1차적 징계 권한은 대한변호사협회의 노력으로 1993년에 법무부에서 이관됐다.
하지만 의료법에서는 의료인 단체의 소속회원에 대한 징계권 규정이 전무해 자율성과 공익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실정이다. 이에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행정처분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료인단체 중앙회에 강력한 자율 징계 권한을 보건복지부로부터 위임받아야 한다.
자율징계는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나 범죄를 한 회원들에 대한 징계를 함으로서 전문가집단으로서의 고도의 품위와 의학수준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징계를 위한 징계가 아니라 회원들을 계도하고 발전된 수준으로 회원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또한 자율징계권은 헌법재판소의 현행 사전 의료광고심의 위헌 판결 이후 심의제도만 남고 강제조항은 사라진 광고심의의 실효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각 단체의 중앙회는 회원에 대해 ○ 개설허가 및 면허 취소 ○ 1년 이하의 전부 또는 일부의 자격정지 ○ 500만 원 이하 과태료 ○ 견책 - 사회봉사, 윤리 및 보수교육 명령 등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한다. 징계의 한 종류로 부과되는 윤리교육은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교통안전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일정 시간 강의료를 내고 받도록 할 수 있다.
자율징계권을 위한 의료법 개정을 위해 정부와 여론의 협조 및 국회의 입법화 등에 대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율정화가 가능하도록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역량 및 소양을 함양해야한다. 자체적인 윤리교육 강화에 관심을 갖고 진료를 하면서 꼭 지켜야 할 전문직 직업윤리와 의료윤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야 한다.
전문직으로서 의료인에게 윤리성이 강조되는 것은 자신의 건강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의사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자-의사 관계의 속성에 의한다. 의료인으로서 명예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의료 윤리를 익히고 실천하는 노력이 모든 치과의사들에게 시급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