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1397~1450)께서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1443 겨울)하셨다. 이듬해(1444.2.20)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崔萬理, ?~1445.10)를 대표로 여러 대신들이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연명상소를 올리며 극렬히 반대하였고, 최만리는 세종의 노여움을 사 의금부에 갇히기도 했다. 이때 세종은 해박한 음운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최만리 등의 무식을 꾸짖기도 하였다. 이는 훈민정음 창제시 집현전 학사들의 도움 없이 세종이 홀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는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이후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을 설득하였을 것이고, 권제, 정인지 등이 훈민정음을 사용해 『용비어천가』를 지어 올렸다(1445).
창제 3년 후(1446 음 9월) 『훈민정음 해례본』[정음(御製序文 및 例義)+해례(制字解, 初聲解, 中聲解, 終聲解, 合字解, 用字例 및 鄭麟趾 序文)]을 반포하고, 이와 관계된 일을 처리하는 언문청을 설치했다. 이듬해(1447) 수양대군이 훈민정음을 사용해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설법을 담은 『석보상절』을 편찬했고, 이를 읽고 감명을 받은 부왕 세종은 석가모니의 공덕을 칭송한 노래인 『월인천강지곡』(1449)을 훈민정음으로 펴냈고, 그 이듬해(1450)에 승하(昇遐)하셨다.
약 10년 후인 1459년(세조 5년)에 간행된 『월인석보』(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 1권의 책머리에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이 실려 있는데, 이는 훈민정음 언해본[훈민정음(해례본)에서 어제 서문과 예의(例義)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세종의 묘호는 세종 승하 후 정해진 것이니, ‘세종어제훈민정음’이란 명칭은 훈민정음이 세종이 지은 것임을 분명히 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의 자주·애민·편이·실용정신이 깃든, 과학적이고 체계적이고 철학적인 훈민정음이 창제 후 약 600년이 지난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세계에서 주목받는 가장 완벽한 문자가 될 것이라고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81년에 현대 PC의 시초로 여겨지는 IBM이 출시한 개인용 컴퓨터는, 인텔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했으며, MS-DOS 운영 체제를 탑재했고, 모듈식 설계로 인해 다양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쉽게 추가할 수 있었고, PC 산업 표준 확립에 큰 역할을 했다. 이는 비즈니스와 가정용 컴퓨터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브랜드 신뢰성과 기술력 덕분에 빠르게 인기를 얻었고, PC 산업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필자도 비교적 얼리 어댑터(early adopter)였던 셈이어서, 1980년대 중반에 286 삼보컴퓨터(16비트)를 사서 익히고, 모뎀을 통해 컴퓨터를 전화선으로 연결하는 ‘하이텔 PC 통신’에 가입하여 하이텔 동호회 활동을 하며 채팅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하이텔(HiTEL)은 ‘한국PC통신 주식회사’에서 운영하던 PC통신 서비스로, 한국경제신문 뉴미디어국에서 한국 경제 프레스텔(Korea Economic Prestel)로 시작(1986.11.1.)해, 한경KETEL로 변경(1987.4.15.)되었고, 이후 하이텔로 이름이 변경되었다(1992.7).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코퍼스(Corpus, 말뭉치·말모듬) 언어학연구소’ 소장 마리 뒤부아(Marie Dubois)는 조부와 부친이 언어학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말이다, “15년간 연구 끝에 발견한 (한국이 빨리 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진짜 비밀은 한글에 있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의 PC 통신 문화 연구 시, 서울대 전산실에서 놀라운 보고서를 발견했는데, 1997년 기준 한국 PC 통신 하이텔과 천리안 일평균 게시글이 무려 50만 건 넘었고, 이는 같은 시기 일본의 PC 통신 니폰 넷의 세 배가 넘는 수치였다. 더 놀라운 것은 게시글 길이로, 한글로 쓰인 글은 한자로 쓰인 글보다 평균 두 배 이상 길었다. 같은 시기 일본과 중국에서는, 젊은 층조차 한자 입력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큰 어려움을 겪는 반면 한국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놀라운 속도로 대화를 주고 받았고, 1990년대 후반 한국의 PC 통신 사용자 수는 이미 일본의 두 배 중국의 세 배에 달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의 양도 압도적이었고 한 시간 동안 작성된 글자 수 비교시, 한글 사용자가 한자 사용자보다 평균 네 배 많은 내용을 작성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인터넷 보급률로 이어졌으며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정부 정책 덕분이라고 설명하지만, 진짜 원동력은 한글이었다. 쉽고 빠른 문자 입력이 가능했기에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온라인 소통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글의 창제원리를 알고 난 후 뒤부아 교수는 말했다. “내가 전문적으로 다루는 대규모 언어 자료 분석학의 관점에서 보면 한글은 마치 현대의 컴퓨터 작업 체계처럼 체계적인 규칙과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자음과 모음이라는 기본요소가 있고 이들을 조합하는 명확한 규칙이 있으며 그 결과로 모든 가능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글의 모듈식 구조였다. 현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는 작은 코드 단위를 조합하여 복잡한 프로그램을 만든다. 한글도 이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기본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글자를 만들고 이 글자들을 다시 조합해 단어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녀는 또 말하기를, “(여러 언어로 같은 내용 문장 입력 시간 측정시) 영어로 30초, 일본어로 45초, 중국어로는 50초가 걸렸다. 그런데 한글은 25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차이의 답은 한글의 구조에 있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라는 기본 요소의 조합으로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마치 컴퓨터가 0과 1이라는 기본 단위로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것과 비슷했다. 이런 구조는 디지털 시스템에 완벽하게 부합했고 카카오의 연구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AI 언어 모델을 학습시킬 때 한글은 특별한 장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글은 하나의 글자를 자음과 모음이라는 최소 단위로 분해할 수 있고 다시 결합할 수 있다. 이는 AI 언어를 학습하고 처리하는데 매우 효율적인 구조였다.”
최근 발음기관에 이상이 없는 언어장애 환아의 치료나, 자폐증 환자나, 난독증 환자의 치료에도 한글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증례도 여러 건이 보고되고 있다.
20세기 발명왕 에디슨의 전구가 지구의 밤을 밝힌 것보다, 과거 현재는 물론 미래 AI 시대를 밝히는 15세기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공헌이 훨씬 클 것임을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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