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를 의대, 치대에 보내고 싶으시면 지금부터 전략을 세우셔야 합니다. 특히 의대나 치대는 1% 최상위권 학생들이 가는 곳인 만큼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겠죠. 요즘은 의학 계열 입시를 목표로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준비하는 부모님들도 더러 계시니까요. 특히 수학 선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강남의 한 수학학원. 학부모 20여 명이 학원 입학과 관련한 설명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손에는 ‘초등 의·치대 특별반 모집 설명회’라고 적힌 전단이 들려 있고, 펜으로는 학원 관계자의 입시 관련 설명을 분주하게 받아 적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바로 옆 학원도 비슷한 풍경이다. ‘의대·치대·한의대 입시는 초등학생부터’라는 문구가 담긴 광고가 버젓이 걸려 있고, 자기 몸집만 한 가방을 멘 아이들이 해당 학원으로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아이들을 배웅하는 학부모들이 전부 초등학생 저학년 자녀를 둔 젊은 학부모라는 점이다. 그들 중에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8살 자녀를 치대에 보내기 위해 학원을 보낸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학부모 A씨는 “요즘 의학 계열 진학을 꿈꾸는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서 선행 학습을 한다. 영어는 물론 수학은 5년은 기본으로 선행한다. 우리 아이도 선행 학습으로 치대 입시를 준비할 생각이다. 힘들겠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치대 등 의학 계열 입시를 준비하기 위한 사교육 열풍은 오래전부터 지속돼왔다. 문제는 최근 의학 계열 진학 쏠림 현상이 심화되며 선행 학습에 뛰어드는 아이들의 나이대도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일부 학원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를 틈타 7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입시 특별반 모집을 펼쳐 사회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와 관련 대치동의 한 강사는 “의학 계열 입시를 대비하고자 상담하는 학부모들이 갈수록 늘고 있고 자녀의 나이대도 많이 내려갔다. 작년 의대 증원 덕에 그런 문의가 더 늘었고 모집 정원이 다시 준다고 해도 특별반 마케팅은 더 늘 것”이라고 진단했다.
# 지나친 선행 학습·과열 경쟁 내몰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비판하는 의견도 나온다.
올바른 직업관을 형성하고 나아가 사회적 소통 능력을 길러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아이들을 너무 일찍이 입시 경쟁 구도로 내모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학원에서 만난 초등학교 4학년생 김 군은 의대·치대 준비반을 2년 전부터 다녔지만, 여전히 수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또 또래 아이들보다 한참 앞서 진도를 나가고 있음에도 어딘지 불안한 모습도 역력했다.
김 군은 “수업 내용이 어려워서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친구들이 내가 못 푸는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때면 너무 힘들다. 이러다가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 싶고 의대에 못 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된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특별반에 다니는 초등학생들이 대부분 의료인을 꿈꾸면서도 그 가치를 돈에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치과계 내부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서울 소재 한 치대 교수는 “의료인이 되기 위해서는 학업 성적이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환자를 대하는 건강한 마음”이라며 “어릴 때부터 입시만을 목표로 경쟁하다 보면 그런 중요한 걸 배우는 시기를 놓치기 쉽다. 또 초등학생 때부터 치과의사를 단순히 돈 잘 버는 직업으로만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달려오면 나중에 치과의사가 되고 난 후에도 돈을 좇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초·중·고 사교육 비용은 갈수록 늘어 지난 2024년에는 29조1919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도 대비 2조775억 원(7.7%) 증가한 수치로 그중 초등학교 사교육비는 13조2256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정부가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제재를 펼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의료 계열 입시가 고소득 직업으로의 지름길로 전락한 가운데 올바른 직업관 형성을 위해서라도 관련 대책 및 모니터링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