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9월 29일 발표한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0.3%에 달하는 1051만 4천 명으로 집계됐다. UN은 고령 인구 비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 사회에 첫발을 들인 후 17년 만인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불과 8년 만에 초고령사회가 됐다. OECD에서 비교적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됐던 일본, 캐나다조차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10년, 14년씩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유례없이 빠른 셈이다. 올해 첫 20%를 넘은 고령 인구 비중은 2036년에는 30%를, 2050년은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에 따라 생산연령인구(15~64세)에 대한 고령 인구(65세 이상) 비중을 나타내는 노년부양비는 올해 29.3명에 달하지만, 2035년 47.7명, 2050년 77.3명에 도달예정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OECD 최고 수준을 이어왔으며 특히 고령층에서 심각하다. 2022년 80세 이상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0.6명으로, 전체 평균의 두 배 이상이다.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지면서 정신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노년기의 우울증이 바로 그런 경우다. 우울증 환자는 2022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고, 증가세는 고령층에서 두드러져 이제 노년기 우울증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노년기 우울증이 늘어나는 이유는 정체성 상실, 사회적 고립, 경제적 불안, 건강 상실, 회복탄력성 부족이라고 한다.
젊을 때는 큰 충격도 잘 견뎌내지만, 나이가 들면 작은 일에도 크게 흔들리게 되는데 이때 우리를 지탱해 줄 가장 큰 무기 중 하나가 ‘유머’가 아닐까 싶다.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맞이하며 유머를 잃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그 시간이 좀 더 여유롭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초고령화 사회로 가장 먼저 진입하고 이런 사회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노력을 하던 일본의 실버 세대들이 만든 시집을 실버 센류라고 부른다. ‘센류’는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로 5-7-5의 총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를 말한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란 책은 무려 11만 수가 넘는 센류 응모작 중에 선정된 걸작선 여든여덟 수를 추려 담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노인들의 일상과 고충을 유쾌하게 담아낸 실버 센류는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의 주최로 2001년부터 매해 열리는 센류 공모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처음 실버 세대들의 공모전은 2001년에 일회성으로 실시하였는데 의외로 인기가 좋아 매년 지속하게 되면서 이 공모전의 이름을 실버 센류 즉 노년층의 일본 정형시로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읽다가 때론 폭소를, 때론 아픔을 느끼게 하는 한마디로 웃픈 내용이 많다.
다음은 격하게 공감된 시를 책에서 추려 보았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무농약에/ 집착하면서/ 내복약에 절어 산다
연명 치료/ 필요 없다 써 놓고/ 매일 병원 다닌다
자기소개/ 취미와 지병을/ 하나씩 말한다
경치보다/ 화장실이 더 신경 쓰이는/ 관광지
심각한 건/ 정보 유출보다/ 오줌 유출
눈에는 모기를/ 귀에는 매미를/ 기르고 있다
입장료/ 얼굴 보더니 단박에/ 할인해 줬다
젊게 입은 옷/ 자리를 양보받아/ 허사임을 깨닫다
몇 줌 없지만/ 전액 다 내야 하는/ 이발료
미련은 없다/ 말해 놓고 지진 나자/ 제일 먼저 줄행랑
내용보다/ 글자 크기로/ 고르는 책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제 없어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
찾던 물건/ 겨우 발견했는데/ 두고 왔다
생겼습니다/ 노인회의/ 청년부
남은 날 있다고/ 생각하며 줄 서는/ 복권 가게 앞
심란하구나/ 손주가 보고 좋아하는/ 구급차
비상금 둔 곳/ 까먹어서/ 아내에게 묻는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쓰는 돈이/ 술값에서/ 약값으로 변하는 나이
모두가 한 번쯤 겪었을, 혹은 겪게 될 삶의 단면을 재미있게 풀어낸 구절들로 자신만의 경험과 감정을 투영한 한 줄짜리 인생 이야기들이다. 위의 짧은 시를 읽고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연식이 어느 정도 된 사람이고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면 아직 젊은 사람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 이 ‘실버 센류’에 강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노인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었다는 점이다. 스스로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래의 이야기겠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 본연의 통찰력과 인생이 담긴 재치에 젊은 세대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칠 팔십 년의 세월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결코 쓰기 힘들 종류의 글로 단순히 글솜씨나 교육 수준과는 다른 요소가 필요한 글이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 길을 걷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배울 점도 많고, 미리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듦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 흐름을 부정하거나 숨기기보다는 삶의 한 축으로 품고 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우울하고 걱정스러운 이미지로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노년 역시 자연스러운 삶의 한 지점이다. 신 노년 세대는 이미 그 길을 걷고 있으며 이제는 우리 사회가 그들의 여정에 함께 발맞추며 나이 들수록 더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그 안에서 담담함과 여유, 웃음이 스며들 수 있다면 우리의 후반 인생도 생각보다 꽤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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