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열정’을 프놈펜 하늘아래 뿌리고(하)
-덴탈캠프 캄보디아 프놈펜시 장애인 치과진료일기-
제1499번째
<1789호에 이어 계속>
10월 17일
장애를 가진 친구들의 너무 순수한 눈빛이 티 없이 맑아 보였고, 치료할 때 많이 아픈데도 잘 참는 아이들을 보니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했었다. 너무나도 해맑은 모습이었다. 통역하시는 분에 따르면 대부분 지체장애인인 이곳 사람들의 경우 어려서 지뢰를 밟아 생긴 장애이고, 여러 차례 수술을 했기 때문에 통증에 대한 역치가 상당히 높은 것이라 한다. 마음 한 구석이 왠지 먹먹해 오며, 더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곳의 휠체어는 일반적인 휠체어와는 달리 바퀴가 3개이고 의자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많았는데, ‘메콩 휠체어’라고 했다. 울퉁불퉁한 이곳의 도로 사정에 넘어지지 않고, 나무를 구하기 쉬우며, 좁은 반경으로도 회전이 자유로운 형태라 그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놀라웠다. 국내에서 중증장애인만 치료한 우리에게는 너무 조용한 분위기였다. 드물게 울음소리와 큰 소리가 들리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드는 것은 무얼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거의 전악에 걸쳐 치료해 주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여기에 올 때 진료한 환자의 숫자 보다는 진료의 질을 더 생각하자고 서로 의견을 모은 터다. 그러다 보니 심한 우식환자는 치수절단 후에 케탁몰라로 충전, 그리고 SP Crown까지 진행하고, 발치 후에는 즉시 틀니 등 전악에 걸쳐 시간이 허락하는 한 모든 것을 해주게 되었다. 잘 참아준 환자들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오전에 대내외적으로 일하면서도 예진파트에서 목소리 쉬어가며 광분하는 회장 신재호 선생이 분야별로 조금 힘들어 하시는 선생님들을 교대해 주시고, 약 30명의 환자를 본 후 점심시간이 되었다. 추 사장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오신 김밥과 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배가 잔뜩 불렀는데, 부대장이신 마오 장군이 점심 스테이크를 대접한다고 해서 먹는데 너무 구워져 거의 육포수준이었다. 그러나 매끼 직접해주시는 그 정성이 고맙기만 하였다.
소아치과에서 손에 파스를 붙이며 진료했던 정래정, 윤희훈 선생은 페디 랩을 동원, 세라, 희정, 지희, 정희 선생이 같이 진료했으며 보존파트에서는 황순주 선생이 근관치료 위주로 묵묵히 말도 없이 진숙 선생과 열정적으로 진료했다.
외과와 보철파트에서는 나와 이재영 선생이 우선적으로 틀니 할 환자들을 선별해 발치(심지어 외과적 발치도 마다 않고)와 인상채득을 했다. 힘들게 같이한 하늘, 신희, 현진 샘은 분주히 환자들을 돌보고, 기공파트에서는 오필선, 권영훈 두 분의 기공소장님이 틀니를 만드느라 분주하였다.
첫 날 다섯 환자를 즉석에서 제작해 장착까지 마무리하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 현지 치과의사들과 환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스케일링 파트에서도 엉덩이에 본드를 붙여 놨는지 쉬라 해도 쉬지 않는 권 미, 이미현 선생의 사랑과 열정의 스케일링이 이어졌고, 환자가 많아 손켈링(수기구로 하는 스케일링)도 마다하지 않았던 원경 샘. x-ray도 찍고 이 모든 기록을 위한 사진도 찍었던 박경원 방사선사. 멀티 플레이어처럼 장비들을 손보며, 궂은 일을 마다 않고 다녔던 이우재 계장. 중, 고생 자녀 둘을 데리고 나와 자원봉사에 나선 윤성호 이사님. 악덕 시어머니처럼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모든 것을 지휘·총괄해온 박경화, 정정화, 지은 선생. 현지 부대원인 타이거부대를 지도하며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했던 박노준 과장. 통역들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우리가 얘기하기도 전에 먼저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환자를 곁에서 붙잡아 주며 위로해 주었다.
대기실에서는 타이거부대가 환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비디오시청, 우리나라의 전통놀이인 윷놀이, 목걸이 만들기 등을 해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고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대기실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첫날 오후 9시 넘어서까지 진료하고 정리하니 밤 10시가 다 되었다. 호텔에 10시30분에 도착해 간단하게 회의하면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평가 및 토의를 한 후 방에 들어가니, 12시가 넘었다. 이 모든 사람이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사랑과 열정으로 계속 진료해 첫째 날은 130여명, 둘째 날 210명, 셋째 날 120여명 등 틀니제작 20명을 포함해, 3일간 460명에 달하는 수 많은 진료를 해왔다. 진료 후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의 강행군을 하면서도 힘든 기색없이 웃으며 진료할 수 있는 이들에게서 덴탈캠프의 모토인 ‘사랑’과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10월 18일
별반 다름없이 진료하고 점심, 진료하고 저녁 먹고 진료, 또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진료 종료. 부대에서 제공한 저녁식사 역시 육포 수준의 스테이크였으나 엄청난 시장기로 인해 깨끗이 비웠다. 오늘은 피로도 풀 겸, 맥주도 한잔 했지만, 통증 때문에 약을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
10월 19일
오늘은 오전 진료만 하고 짐 정리를 해야 하므로 주소 부위만 해결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했다
점심 메뉴가 비빔밥으로 바뀌어 다들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컴프레셔도 날씨가 덥고 너무 무리를 했는지 연결관이 계속 터졌다. 소음이 있더라도 조금 시원한 실내로 들여오니 정상적으로 작동해 다들 기계나 사람이나 똑같다고 웃었다. 또 청각장애인 환자가 있어 수화통역을 위해 선생님을 찾던 중, 학생보다 먼저 진료를 받겠다고 앞에 서서 기다리는 씁쓸한 장면도 있었고, 거의 마지막 환자인 청각장애인 환자가 너무 천진스럽고 밝아 별 스스럼없이 놀다가 데리고 치료를 받으려니 지도 선생님이 HIV환자라고 해 깜작 놀라 모든 감염예방준비를 하고 진료를 시행했다.
진료를 종료하고 짐을 꾸린 후, 비행기 타기 전 저녁식사를 하면서 진료를 도와주었던 타이거 부대원이 우리와 같이해서 행복했고 내년에 다시오면 꼭 같이 하고 싶다는 가슴 뭉클한 사연의 편지를 읽어 줘 모두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또한 진료를 하기까지 모든 것을 도와주신 현지 교민 분들이 내년에는 더 잘해 줄 테니 꼭 다시 오라며 부탁의 말씀을 해주셔서 그 분들의 노고에 조그마한 보답이라도 하고 가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지내온 프놈펜에서의 아쉬움은 더 많은, 좀 더 좋은 치료를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봉사라는 것은 누구에게 베풀기 보다는 살면서 받은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록, 진료는 힘들었지만 우리 모두가 사랑과 열정이라는 모토로 한 쪽만을 추구한 값진 추억이었다. 같이 한 모든 덴탈캠프 가족들(우리는 회원보다는 가족이라고 한다)과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내년에도 프놈펜의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꼭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다.
프놈펜 하늘 밑에서 진료 전과 진료 후에 각각 외치는 ‘사랑!, 열정!, 덴탈캠프!’가 귓가에 계속 메아리친다.
최 한 선
안양 선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