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1번째) 불신의 늪/ 김 정 웅

  • 등록 2009.11.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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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1501번째


 불신의 늪


요즘 경제, 사회적 불안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그 쪽 경기는 어떠냐는 말로 인사를 시작할 정도다. 눈 뜨면 접하는 신문이나 각종 언론매체들도 연일 사회불안, 경제위기 등 우울한 기사들로 넘쳐난다. 이런 와중에도 묵묵히 경제 최전선에서 일하는 국민들은 멍하니 TV에 나오는 경제를 이끌어 가시는 높으신 분들의 입에서 진심어린 희망의 목소릴 기다릴 뿐 딱히 방법도 없다.


몇 주 전 가을을 맞아 가족과 억새풀을 보러 장흥 천관산을 다녀왔다. 입구에 돌탑들이 넉히 수 십 여개가 길 양옆에 놓여 있었다. 이 탑들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아들 녀석이 “누가 이걸 다 쌓았을까? 왜 태풍이나 비바람을 맞아도 안 무너질까?” 하고 묻는다. 작년에 전북 마이산에 갔을 때도 이 녀석이 똑같은 질문을 하기에 어디선가 들은 얄팍한 과학지식으로 설명해 줬던 기억이 있는데 처음 던지는 질문인양 잔뜩 궁금한 얼굴로 또 묻는다. 고민 끝에 해 준 답변이 이랬다. “이걸 쌓기도 전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지금 우리가 볼 수 없었을 테고, 쌓으면서 큰 바람이 불면 어쩌나 하면서 올렸다면 아마도 태풍에 무너졌겠지.” 이렇게 답을 줬더니 아직 어린 아들 녀석은 그게 무슨 대답이냐며 시큰둥한 얼굴을 짓곤 다른 관심거릴 발견했는지 금세 웃으며 앞장서 서두른다.


산행 길 중간 탑산사에서 오가피차를 얻어 마시며 잠시 쉬고 있는데 하산하던 한 등산객이 애가 어리니 이 길은 험하다며 다른 길로 돌아 올라가라고 고마운 충고를 해 주신다. 망설이고 있는데 언뜻 보아도 70은 족히 넘으신 듯한 노년의 등산객께서 아들을 보더니 “넌 할 수 있겠다. 이 할아버지도 올라 다니는데…….” 하시며 부추긴다. 이 길이 익숙하시다는 영감님을 따라 올라가는데, 아들을 돌아보시며 연신 올커니하며 칭찬한 덕분인지, 아들 녀석도 즐거워하며 밧줄을 잡고 열심히 올라갔고 그 날 억새와 함께 가족 추억을 만들려는 계획도 쉽게 영글었다. 그 다음 주 고흥 팔영산은 천관산 경험으로 무난히 오를 수 있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코스였으나 아들 녀석은 부모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험한 산행을 이제는 즐기는 눈치다.


이번 산행을 다녀와서 아내와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어리게만 봤던 아들이 씩씩하게 커가는 게 대견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우리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식을 교육시킬 때는 항상 ‘하면 된다, 세상은 네가 바라보는 마음처럼 따뜻한 거란다’ 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진료현장에서도 막연한 불신을 갖고 일방적으로 진료를 지시(?)하려 하거나 진료에 대한 설명을 무시하시는 환자분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지나친 방어 진료식의 설명이나 사무적인 어투의 설명이 자주 튀어 나오고 있지 않은 지 되짚어 보게 된다.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아직도 치료 후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 지 한 번쯤 되돌아 볼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경제가 어렵고 나라가 어수선한 탓인지 이 사회가 우리도 모르게 점점 서로를, 자신을 못 믿는 불신의 사회로 되가는 것 같다. 어려울 때일수록 긍정적인 시각으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며 힘을 냈으면 한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께서는 “반전집회라면 나를 부르지 말고 평화집회라면 기꺼이 가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똑같은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분께서는 아마도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부정적 확신보다는 평화가 유지되리라는 긍정적 희망을 믿고 계셨으리라……. 우리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는 불신의 늪을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가 키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서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모든 사회 구성원이 노력하는 따뜻한 세상이 올 것이라고 조용히 믿어본다. 불신의 늪이 더 이상 커지지 않기를….


김 정 웅
여수 스마일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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