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8번째)‘우열’을 가리다

  • 등록 2009.12.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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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8번째


‘우열’을 가리다

 

 

요즘 ‘루저’라는 말이 유행이다, 아니 논쟁이 한창이다. 사람의 신체를 정형화한다고 비난이 거세다. 거센 비난의 소리라고 해야 별로 나을 것이 없다. 대상을 다시 정형화해서 싸잡아 욕하는 거다. 우리는 사람들을 어떤 유형의 집단에 집어넣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형화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대부분 ‘루저’다. 신체적 특징만이 아니라 특정지역, 인종, 국가, 종교, 경제적 배경 등, 모든 것이 대상이 된다. 한사람의 인간에 대한 존중은 없고, 모든 사람들은 정형화된 특정 집단으로만 인식한다. 이런 모습은 오랜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반복해서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인종차별의 근본적 모습이기도 하며,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기도 하다.

 

에이지즘(ageism)이라는 말이 있다. 노인을 특정한 유형의 집단으로 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연령차별’이라고 해석할까. 나이든 분들을 ‘노인’이라는 한 가지 호칭으로 부르면서, 모든 ‘노인’은 똑같이 열등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처럼 인식한다. 사람은 20세부터 늙기 시작한다고 한다. 사실 생물학적으로는 태어나면서부터 노화가 시작된다. 결국 덜 늙은 사람들이 조금 더 늙은 사람들을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고 싶어 하는 거다. 정신적으로 더 현명해지고 깊은 경험을 소유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정형화된 ‘노인’에게서 그런 부분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여기서 문제는 개인이 가진 개성이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다. 60대에 30대의 신체를 가진 사람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특정 집단을 구분하는 이유가 객관적 사실의 인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돕기 위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사실은 자기보다 열등한 집단들을 찾아내어 차별하기 위해서일 뿐이고, 자신은 거기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거나 우월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오죽 심했으면 연령차별 금지법이 생겼을까. 분명한 것은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끝없이 구분하고 편가르기를 하는 동안 자기 스스로도 그 벽속에 갇혀서 점점 꼼짝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치과의사라고하는 전문가집단에서도 이런 모습들은 우리 사회와 별반 다르진 않은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편가르기가 있어 왔다. 요즘에는 같은 학교를 나와도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이가 많이 들어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에 들어오면 사람은 학문의 발전이나 사람을 치료하는 것보다 경제적인 이익에 관심이 더 크다고 한다. 그런가? 슈바이처박사는 나이 서른이 되어서 의사 공부를 시작했다. WHO 사무총장을 지내셨던 고 이종욱박사도 공대를 다니다 군대 갔다 와서 의대를 들어왔다. 경제적 관심으로 의대에 들어갔을까? “아니 그런 분들은 예외라고, 왜 예외인 분들만 거론하나?”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하고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사실 모든 사람은 ‘예외’가 아닌가? 학문을 하거나, 슈바이처와 같은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연령제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우리’들이 걱정하는 문제가 사실은‘제발이 저려서’하는 행동이 아닐지 반성할 필요는 없는가? 모든 문제를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성숙한 집단이 되었으면 한다.

 

어느새 한해가 가고 있다. 우리 육체는 아무래도 그만큼 늙어 가겠지만, 정신이나마 좀 더 성숙해졌는지? 좀 더 ‘어른스런’ 모습으로 한해를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재 일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구강병리학교실 교수

 

이 재 일/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구강병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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