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인터넷 IT 산업이 발달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인터넷 전송속도 세계 1~2위를 다투는 나라, OECD 가입국 중에서도 아마 수위권을 다툴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든 빨리 빨리를 추구하는 것같다. 인터넷이든 공사든 식당의 주문이든 느긋한 여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60~70년대 개발도상국에서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고자했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물론 좋은 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얼마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친구로부터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와이파이가 되면 공짜로 문자, 사진, 음성도 즉시 전송이 된다. 옛날을 생각하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라 할만하다. Steve Jobs가 만들어낸 스마트폰이 인류의 생활을 바꾼 것이다. 공간적으로 얼마나 떨어져있던 손쉽게 공짜로 소식을 주고 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실로 그 문명의 이기에 경탄해하며 편리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옛날의 아날로그 시절이 그리워지는건 왜일까? 국내서도 소식한자 전할려면 몇일씩 기다려야 한통의 편지를 받아 볼 수 있었던 시절, 밤새 애태우며 쓴 연애편지를 빨간 우체통에 넣을때의 떨림과 설렘, 연애하고 데이트할때도 전화 한통할려면 공중전화 부스에 눈치보며 기다리다 사람이 없을때 들어가서 여자친구의 집에 전화해야했던 시절, 운좋게 본인이 받으면 다행이고 부모님이라도 받으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야 했던 그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건 영원히 불가능하겠지만…. 편의성으로 따지자면 낙제점이고 느려터졌지만 거기에 인간미의 자취를 느낄수 있었기에 그 시절이 더 그리운건 아닐까? 요즘이야 인터넷으로 100메가의 데이터도 순식간에 내려받는 세상이지만 처음 인터넷에 접속했을때의 설렘, 떨림, 흥분은 사라진지 오래다. 1메가의 데이터를 받는데 한시간 걸리던 시절 넷스케이프의 요트그림이 천천히 화면에 로딩될때의 설렘을 아직도 잊을수 없다. 우리는 속도와 효율성을 얻고자 정말 중요한 그 무엇을 상실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에겐 초등 1학년 시절의 그림 일기장이 있었다. 1974년이니 지금부터 40년전의 일기장이었다. 내가 결혼하기전 나의 어머니께서는 가끔씩 그 일기장을 보시면서 네가 결혼하면 네 아이들에게 보여주려무나 이런 말씀을 생전에 하시곤 했다. 그 말씀대로 난 결혼해서 내 딸들이 초등학생일때 그 일기장을 보여주곤 했다. 아빠가 초등 1학년때 쓴 일기장이라고 말하면서…. 딸들도 보고는 재미있다고 깔깔대곤 했다.
그런데 전산상의 기록이란 얼마나 빨리 날아가고 없어지는가? 수많은 e-mail, 수많은 SNS의 대화가 정말 순식간에 증발된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마치 현대의 인간관계, 인간 실존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한 생각이 든다. 언제나 쉽게 지워지고 삭제되고 필요에 의해 언제든 리셋될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모든 사회의 인간관계가 오로지 효율성과 필요에 의해 유지되는 세상, 경쟁력과 속도로 평가받는 사회, 어디에도 느림의 미학(美學), 삶의 관조(觀照), 인생의 여유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 자본주의에 매몰된 우리 사회가 주는 인간성의 상실인 것 같다.
지난 겨울 난 초등학교 밴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좀 성가시지 않을까? 잘 모르던 동창친구도 많고,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차차 그 모임을 통해서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한 옛 추억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어릴때 꾸었던 우주과학자의 꿈, 마음에 담고서도 쑥스러워 손 한번 잡지 못했던 애틋한 첫사랑의 추억, 내가 나고 자랐던 그리운 옛 동네가 그들과의 대화속에 녹아있었다. 이제껏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려온 것같다. 이제 좀 여유를 가지고 마치 자신이 태어난 곳을 향해 먼 길을 찾아 떠나려는 연어들처럼 새삼 내가 걸어왔던길을 뒤돌아보게 된다.
지난 시절은 늘 그립고 아쉽기 마련이다. 슬픔, 괴로움, 기쁨, 이 모든 옛 기억들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봄볕 꽃망울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것이기에….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철민
메트로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