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 등록 2014.10.24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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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은 흔히 쓰이는 고사성어 중 하나인데, 아마도 중학교 한자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별 감흥 없이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는 대로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안다’라고 그냥 달달 외웠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의미를 더 되새기게 된다.

이는,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온고이지신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라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앞 쪽 문구만 널리 쓰여진다.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온고이지신’의 정신이 비단 스승이 되기 위한 조건일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한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길이가 길게 잡아 100년이라 해도, 유구한 역사의 길이에 비하면 찰나에도 못 미치는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의 삶이 좀 더 풍요로우려면, 지나간 모든 시간들이 쌓인 지혜인 ‘옛 것’을 익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공상과학영화 속에서나 보던 ‘손 안의 컴퓨터’가 생활 필수품이 되고, 현대판 잭과 콩나무라 불리는 일본의 야심찬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 계획을 볼 때는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본질적인 모습은 오래 전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특히, 약 2000년 전에 건설된 로마 수도교를 보거나, 수백 년 전에 씌어진 철학자들의 글을 읽을 때면, 현재의 우리 사는 모습이 약간의 편리함을 더한 과거의 변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2년 전쯤, 중국의 고전인 ‘순자’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저자인 순자는, 맹자와 달리 성악설을 주장하여 정통 유학파에서 배척 받았으며 생전에 그 뜻을 펼쳐보지 못했지만, 나름의 학문 체계를 구축하여 제자들을 가르쳤고 후세에 인정받고 있다. 그 때 마음에 와 닿는 몇몇 구절들을 정리해 놓았었는데, 얼마 전 컴퓨터를 정리하다 그 글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중 일부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 공이 이룩되는 것은 중단하지 않는 데 달려 있다.

- 군자는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에 힘을 쓰고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은 흠모하지 않는다. 소인은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은 버려 두고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을 흠모한다. 군자는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에 힘쓰고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은 흠모하지 않기 때문에 날로 발전한다. 소인은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은 버려 두고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을 흠모하기 때문에 날로 퇴보한다.

- 망하는 사람은 독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의로움이 이익을 이기는 나라는 잘 다스려지는 세상이 되고, 이익이 의로움을 이겨내는 나라는 어지러운 세상이 된다.

- 선한 것은 남겨 놓지 말고 바로 행하며, 물어야 할 것은 묻어 두지 말고 바로 물어야 한다.

- 자기의 행동이 불완전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지나치게 한다.

- 군자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그가 얻으려는 뜻을 즐기고, 바라는 것을 얻은 다음에는 또 그것을 처리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 까닭에 평생토록 즐거움만 있고 하루도 걱정이 없다. 소인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곧 그가 얻지 못하고 있음을 걱정하고, 바라는 것을 얻은 다음에는 또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그런 까닭에 평생토록 걱정만 있고 하루도 즐거움이 없는 것이다.

- 군자에게는 세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젊어서 공부하지 않으면 나이 먹어서 무능해진다. 늙어서도 남을 가르치지 않으면 죽은 뒤에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다. 풍요한데도 남에게 베풀지 않으면 곤궁해졌을 때 의지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젊어서는 나이 먹은 뒤를 생각해 공부하고, 늙어서는 죽은 뒤를 생각해 남을 가르치고, 풍부할 때는 곤궁해질 때를 생각해 베푸는 것이다.

다시 보아도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견해는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시대에 맞게 해석만 잘한다면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온고이지신’의 정신이 아닐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은아 서울이바른치과의원 원장

최은아 서울이바른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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