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이는 다운증후군 자폐 장애우입니다.
31살이지만 정신연령은 3-4세이고 말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 병원에는 어머니와 누나가 치과치료 받아야 해서(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그냥 따라오게 되었지요. 병원에 들어오는 성현이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어머니께 “아드님이세요?” 라고 말을 건넸는데…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성현이의 치아상태에 대해 중얼거리듯이 말하셨어요. “성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치과에 갔었는데, 가만히 있지 못하니까 아이를 묶어 놓고 (Pedi-Wrap) 고문하듯이 치료하고부터는 모든 치과치료를 외면하고 심지어 이도 닦지 않았어요. 엄마와 누나가 도와주려 해도 완강하게 거부하고. 서른살이 지나서야 대학병원과 장애인전문치과에 데리고 갔었고, 어쩔 수 없이 전신마취한 후 대부분의 이를 뽑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전신마취실로 들어가다 성현이가 소리를 지르며 도망쳐 뛰쳐나오는 바람에 치과치료는 아예 포기했지요“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말도 못하고. 그런 성현이가 대기실 소파 한 쪽 끝에 앉길래, 다가가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성현이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하며… (그 날이 추웠어요~) “코코아 타줄까?”라고 물었는데 눈으로 “네~”라고 하는 것 같았죠.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주니 맛있게 마시더군요. 그리고 가지고 있던 아이들 장난감 몇 개 선물 주고 “우리 또 보자!”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머니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성현이를 치과에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고는.
그 후 계속해서 매주 똑같이 무릎 꿇고 코코아 타주고 장난감 주고 손잡고 눈인사하고 그렇게 반복했는데, 네번째 주 되던 날, 성현이가 과자 하나를 제 손에 쥐여주는 거예요. “와!” 마음의 문을 이제야 열었구나라고 느끼게 된 순간, 치과치료를 한 번 시작해 봐야겠다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치과의사 치위생사를 포함한 10명의 모든 직원들이 성현이 치료를 위한 세미나를 한 후, 각자 역할 분담을 하고 한걸음 씩 나아갔습니다. 장난하듯 덴탈미러로 검진을 하고, 파노라마 X-ray를 찍고, TBI를 하고, 같이 이를 닦고 (다행히 칫솔질을 너무 잘 했어요!), 조심스레 스켈링을 시작했어요. 몸을 움직이며 힘들어하긴 했지만 손을 잡아주며 최단시간 덜 아프게 진행을 해서인지 나름 잘 견뎌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특히 위 앞니들은 이미 뿌리까지 상했고 잇몸 치주도 염증이 너무 심해 최대한 빨리 발치를 해야 했습니다. “할 수 있을까? 성현이가 참아낼 수 있을까?” 두려움과 불안함도 있었지만 화살기도후 담대하게 마취를 시작했습니다.
이쑤시개로 서로 손등을 찔러보며 솔직하게 아플 수 있다고 설명한후에. 다행히 마취는 잘 되어, 발치만 잘 하면 성공! (미국)교정치과전문의인 저는 30여년 동안 발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부서진 앞니를 (Root Tip) 잘 뽑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운이 좋게 15분만에 잘 마치고 성현이가 거즈를 물고 나오니까, 모든 병원 직원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목걸이를 걸어주며 축하와 응원!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어요. 그 곁에서 어머니는 울고 계셨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해왔는데… 이가 없으니까 그 다음은? 임플란트가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수순인데~ 과연 우리가 그리고 성현이가 해낼 수 있을까? 다시 전체 직원회의를 했습니다. ‘이정도까지 한 것도 대단한 것 아니냐? 짧은 시간내에 임플란트를 할 수 있을까? 과연 큰 수술을 견딜 수 있을까? ‘등등 반신반의하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다시 한 번 팀웍을 발휘하기로 하고 각자 역할을 정하고 새삼 결의를 다졌습니다. 마침내, 임플란트 심는 날, 제일 좋은 Astra 임플란트 2개를 준비하고 맡은 바 대로 15분내로 준비-마취-수술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성현이는 그 모든 과정을 잘 참고 해냈습니다. 또 한 번의 기립박수 그리고 또 다시 어머니의 눈물… 이번엔 누나의 눈물까지.
성공적인 임플란트 수술 후 실밥을 뽑는 날이 마침 성현군 생일이라, 어머니 누나와 함께 온 직원, 다른 환자분들, 미국에서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 나름 성대한 생일파티를 했습니다. 선물은 성현이가 좋아하는 무선 장난감 자동차 2대 (매일 한참씩 가지고 논답니다!) 특히, 미국에서 방문한 소아치과의사 가족들은 정말 놀랍다고 Amazing! 감탄사를 연발했지요. 기억에 남을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제주도 애월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유명한 (원은희) 화가분에게 성현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작가분이 감동을 받으시고 ‘멋진 성현’이라는 그림을 그려 기증해 주셨습니다. 색감도 너무나 아름다운 멋진 작품입니다. 이 그림이 주제가 되고 소재가 되어 점차 스토리가 번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치료비는? 성현군은 치료할 게 많아 치료비용이 꽤 커서 고민하다가, 50%는 병원에서 부담하기로 하고 어머니께 알려드렸더니, ”기적같은 치료도 해 주셨는데“라며 흔쾌히 내시겠다고 하셨죠. 그리 넉넉치 못한 형편이신 것 같던데… 그래서 ’만원의 기적‘ 치료비 모금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간단한 행사를 기획하고 알리다 보니 정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어요. 수많은 사람들이(환자분들, 직원, 동료 치과의사 교수들, 예술인, 연예인 스포츠스타들, 다른 장애우 가족들, 심지어 미국에 있는 의사, 정치인들까지) 연결 연결 일파만파 동참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비를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 모금이 되었습니다. 10만원 100만원을 낸 분들도 계셨지만 9만원 99만원 다 돌려드렸습니다. 액수 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십시일반의 마음이 더 중요하니까요. 게다가 회사(유한양행)는 성현군에게 평생 임플란트를 제공하기로 하였고, 애니메이션 유튜브 인터뷰 다큐제작 등으로 좋은 뜻을 알리려는 자원봉사자도 생겼습니다. 아직 세상은 살 만하고,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놀라운 ‘사랑의 기적’은 이렇게 일어나고 이루어지는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한 영향력의 핵폭발 같고 세포분열같은 도미노효과의 증인이 되어보니, 우리가 서로 마음과 힘을 모아 조금만 더 겸허하게 조금 더 배려하고 노력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기적처럼 변화하고, 그 가족이 행복하게 바뀌고 (어머니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었다”고 표현하심), 그 주위가 이 사회가 아름답게 달라질 수 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지요? 그렇게 엄청난 상처를 가졌던 성현군이 왜 어떻게 이 모든 걸 받아주고 견뎌냈을까요? 아마도 찐 진정성을 느껴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진실된 무릎 꿇음, 기도하며 기다려 줌, 따뜻한 손잡아 줌, 마음 다해 응원해줌, 최선을 다해 치료해줌, 놀랄 만큼 많은 선한 도움들 모두 모두, 성현군이 마음을 열고 힘든 과정을 견디게 해준 기적의 열쇠, 사랑의 비밀이었지 않았을까요? 이름하여 ‘사랑의 기적’!
가치 있고 보람된 치과의사로서, 치위생사로서, 치과에 관련된 전문인으로서 당신도 이 ‘사랑의 기적’을 한 번 만들고 동참해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또 다른 ‘멋진 성현’이 여기저기서 나올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치과인으로서 진정한 긍지를 느끼게 될 것이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멋진 리더가 될 것입니다.
P.S.
예술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던 제가 얼마전부터 야생화 사진찍기를 배우고 도전해 보았습니다.
아주 키 작은 야생화를 가장 좋은 앵글로 아름답게 찍으려면 야생화보다 내 몸을 더 낮추어야 한다는 놀라운 겸허함의 진리를 체득하고, 유격 훈련하듯 땅바닥을 기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지요. 어쩌면 성현군 앞에서 저절로 무릎 꿇은 이유가 야생화 사진찍기에서 얻은 깨달음 때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진정한 깨달음만이 행동의 변화를 가져다주니까요.
*이 수필의 내용은 사전에 성현군 어머니, 손명희님의 동의를 받았으며, 널리 알려지기 원하셨음을 공지합니다. ‘멋진성현’ 후원계좌 (만원의 기적) 하나은행 287-910905-82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