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것

2021.06.28 10:41:39

Relay Essay 제2454번째

1987년 2월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서울에 홀로 대학에 입학을 하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왔다. 입학식에서 부산 사투리를 쓰는 친구가 혹시 치의예과 신입생이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본인도 같은 학과 신입생이라고 잘 지내보자고 했다.

 

물론 고등학교 동기가 27명이 서울대에 같이 입학을 하여 친하게 지낼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치과대학은 혼자여서 잘되었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 친구는 브니엘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부산의 동아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 하나 더 섭외하고 학습동아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나중에 치과의사가 되었을 때,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는 미적분학과 물리학 학습 동아리가 되어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그 유명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민주화 투쟁이 터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시위를 위해 거리를 헤매일 때, 우리는 도서관에 있었다. 1학기 기말고사를 학과 차원에서 거부하기로 하고 시험장 입구를 일부 학생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나는 그 와중에 시험을 보러 들어갔다. 나중에 치과교정학을 전공한 친구가 입구에서 나에게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나중에 친구들을 어떻게 보려고 이렇게 하느냐?”

 

사실 부친이 사업에 망하고 월세도 낼 돈이 없어 시골 창고에 가족들이 지내던 상황에서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업을 유지하기 힘들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이러한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기는 너무 싫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첫 일 년이 지나고 고등학생들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느 정도 홀로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게 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여, 치과대학 동기들과 본격적으로 어울리게 되었다.

 

마침 86년 건대 사태로 제적을 당한 선배들이 대거 복학하여 혜화동으로 옮겼을 때에는 처음 입학할 때의 105명에서 많이 불어나서 약 140명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아서 선배들이 전혀 없는 동아리를 고르다 보니 검도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검도부는 당시 본과 1학년만 3명이 있는 동아리라 등록 취소의 위기였는데, 마침 그런 동아리가 치과대학 불교학생회가 있어서 서로 회원의 이름을 빌려주기로 하고 불교학생회에도 들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본과 4학년 겨울 종강파티에서 서로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전까지 별로 친하게 지나지 않았던 친구가 내게 물어보았다. “너는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으니?” 그래서 나는 “공부가 좋아서 계속 공부하고 싶어”라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나는 치과대학 교수들이 무척 싫은데, 별로 아는 것도 많이 없으면서 너무 잘난 척을 해. 너는 조금 아는 것을 남에게 숨겨서 그것을 자신이 살아가는 데 방패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해”라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누군가 물어본다면 다 가르쳐 줄 것이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어 그것을 나의 방패로 할꺼야”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것이 모두 진리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87년에 나를 막았던 친구도 나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친구였고, 졸업 때 물어본 친구도 시골에서 어렵게 상경한 친구였다. 내가 동기들에 대해서 아는 것도 일부에 불과했고, 현재 나의 학문적 성취도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어려운 시절에 같이 공부한 친구들에게 문득 안부를 전하고 싶다.

김성곤 강릉원주치대 구강악안면외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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