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 되새겨 보는 그때 그 시절 국민교육헌장의 고찰

2022.08.03 09:35:03

시론

아마 지금 50세 전후 국민학교 출신 이상의 세대라면 학교에서 숙제처럼 암송하던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글은 박종홍, 안호상, 이인기, 유형진 등 학계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기초위원 26명과 심사위원 48명이 초안을 작성하고, 국회의 만장일치의 동의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 12월 5일 발표한, 당시의 대한민국교육의 지표를 담은 것이었다. 이후 모든 교과서 첫 장에 인쇄되어 있었고, 교실 칠판 옆에도 크게 써 붙여 있었다. 그러다가 민주화가 되고 박정희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정권을 갖게 되면서 이것이 군사정권의 잔재이자, 일본의 메이지 유신 당시 “교육칙어”(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제정과 유사한 목적을 가진 친일잔재라 하여 언제부터인가는 아예 교육현장에서 없어지게 된다. 그 역사가 어떠하든 필자는 신기하게도 당시 외운 국민교육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또렷하게 암기가 가능하다.(지금은 돌아서면 오던 길도 잃어버릴 판이지만…) 어릴 적에는 그 세세한 깊은 의미도 잘 모르고 암기하였고, 국민교육헌장이 친일 군사정권의 잔재이고 국민을 전체주의로 세뇌시키기 위한 도구였다고 언론에서 떠들 때도 그저 덤덤하게 지나갔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독일에 유학을 할 때 시간 여유도 있고, 살고 있던 독일의 역사도 궁금하여 이 책 저 책 뒤져보던 중, 아니 독일에도 그러한 것이 있었지 않은가?

 

거의 근세까지도 많은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 민족, 잠재력은 있었으나 너무 분열되어 있던 탓에 이 나라에 치이고 저 나라에 치이던 낙후되고 가난했던 독일 민족은 민족 최강국 프로이센마저 나폴레옹에게 패전(1807)하면서 자존감은 땅에 떨어지고 그저 자기들끼리 다투면서 하루하루 자기 살 길만을 챙기는 3류국가의 전형을 보이고 있었다. 이때 독일 관념론의 대표주자의 한 명이던 피히테(Johan Gottlieb Fichite, 1762-1814)라는 철학자가 프랑스 점령치하의 베를린에서 실의에 빠진 대중들에게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민족의식의 고양과 자존심 회복을 위한 피를 토하는 절절한 강연을 하게 되고 이 내용을 모아 “독일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 Nation)” 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이 내용은 패망한 당시 독일 정치인들, 지식인들 특히 교육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는데 이 글에서 피히테는 독일 민족에게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교육으로만 성취될 수 있는 “도덕적 개혁”을 촉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적 개혁을 시작하고 실현해 나가기 위해 새로운 교육의 시발점이 될 베를린 대학의 설립을 추진하고 초대 총장에까지 취임한다. 이후에도 우리 모두 잘 아는 프로이센 공국의 대 재상 비스마르크(Bismark, Otto von Furst, 1815-1898)와 대원수 몰트케(Moltke, Helmuth von Barnhard, 1800-1891)가 독일 민족의 생존과 부흥을 위해 계속해서 국민교육의 지표로 삼게 된다. 이렇게 노력하고 절치 부심한 끝에 64년 후 다시 벌어진 프랑스와의 전쟁(1870-1871)에서 마침내 대승을 거두고 멋진 복수를 이루게 된다. 이때 노구를 이끌고 귀환하는 영웅 몰트게 원수를 열열히 환영하는 독일 국민들 앞에서 몰트케는 “승리는 나와 군인들의 공이 아니라 그간 훌륭한 독일국민을 만들어 주신 초등학교 선생님들 덕이다. 모든 공을 그들에게 돌린다” 라고 하며 그간 이뤄져 온 독일교육에 먼저 감사한다.

 

이후 독일은 통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탄탄한 교육과 자신감으로 무장하며 유럽의 가장 발전된 강대국으로 나아가게 된다. 지금도 독일하면 교육, 기술, 신뢰성, 정확함으로 상징이 되며 독일 사람들은 이러한 독일인의 특성을 갖게 한 시작을 바로 피히테의 그 저서와 이를 지표로 정치인들과 교육가들이 국민들을 잘 계몽시킨 결과라고 믿고 있다. 물론 이후 독일이 지나친 애국, 국수주의 및 전체주의로 나간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어려운 시절 민족의 생존이 위기에 처한 시점에서 새롭고 명확한 교육 지표의 제시로 인하여 민족의 자존심 고취와 더불어 뭔가 나아갈 방향을 잡게 되었고 결국 변화된 독일민족은 부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독일을 많이 배우려 했던 개화기의 일본도 메이지 유신 때 “교육칙어”를 제정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 성과가 가시화 되며 비로소 서구 열강에 근접하여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식민지화 되지 않고 당당히 생존을 지킬 뿐 아니라 당시 열강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어 먼 훗날 가진 건 사람들뿐이었던 대한민국에서도 이를 참고하여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하게 된 듯하다. 지금과는 시대가 다르므로 이러한 교육 지표의 효과가 어떠할런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우리나라의 입시기계 양산만을 위한 암담한 교육상황을 보면 미래를 위한 교육의 지표 비슷한 것이라도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전에 만든 것이지만 당대 훌륭한 학자들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고심하며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그 때 그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아주 주관적이고 간단한 고찰을 한번 해보도록 하겠다. 아울러 어떠한 정치적 편향이나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힌다.

 

단락 1 :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되살려 안으로는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고찰 :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다만 민족중흥 부분이 좀 국수적으로 느껴져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겠으나 재야(?)고대사가 취미인 필자는 이 부분이 특히 너무 좋다. 우리 고대사는 자의로 타의로 감춰진 것이 너무 많고 생각보다 대단했던 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단락 2 :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운다.“

고찰 : 공익과 질서는 선진국일수록 더욱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이고, 능률과 실질 숭상은 개인적으론 동의한다. 아마 능률보다 아날로그 감성 같은 것 좋아하는 분들은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단락 3 :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건설에 참여하는 국민정신을 북돋운다.“

고찰 : 당시 국가가 거의 최빈국 수준이고 어느 나라나 그렇듯 먹고 살기 힘들면 자기 살길 찾기에만 급급하여 이기적인 성향을 보이므로 국가발전 우선을 강조했던 듯 하다. 이제는 선진국이라고 해도 무방하니, 개인도 나라도 같이 발전해야 하는 것이 요즘 시대 국민의식에 합당하다.

 

단락 4 : “반공민주정신에 입각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게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역사를 창조하자.”

고찰 : 북녘 변종 공산주의 독재가 우리 생존을 잠재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한 개인적으로 반공에는 찬성이다. 애국애족이라는 말 역시 국수적이고, 폐쇄적인 느낌이나 우리나라처럼 초강대국 틈에 끼인 국민들은 외국과 외국인에 배타적이지 않는 한 적당히는 외쳐도 좋을 것 같다. 그 나머지 뒷부분은 아주 마음에 든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되고 있고 세계경제 동향도 심상치 않다. 점차 세계는 자국 우선주의 및 블록화 되며 신냉전의 기운이 뚜렷해지고 있고, 자유주의 진영의 최전선에 있는 향후 우리나라의 위치는 구한말 시절과도 같이 쉽지 않을 듯 하다. 다만 그 시절 문약했던 국가의 국방 경제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수준의 국방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잘 대처하리라 생각한다. 국가나 치과계나 미래를 위한 방향성 있는 교육이 이뤄지길 바라고, 무엇보다 위기의 시대에 독일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듯이 우리도 분열하지 말고 단결하여 슬기롭게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부규 서울아산병원 치과 구강악안면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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