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방법

2023.02.01 14:18:51

임철중 칼럼

십층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버스정류장 8개가 곧게 뻗은 알록달록 8차선 도로다. 전국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찍으려 찾아오는 세트 시설 스튜디오 큐브 앞에, 지난 연말 새 그림 하나가 추가되었다. 천체(天體)를 상징하는 동글납작한 트러스 형 돔 구조 안에, ‘어린 왕자’ 별 기둥이 들어앉은 대형 탑이다.

 

밤이면 지팡이 꼭대기 붉은 별이 트러스에 빼곡한 LED 전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빛의 축제, 루미나리에를 이룬다. 이름하여 ‘영원한 빛 - 우주’, “인류가 지향하는 미래에 대한 꿈과 가치”를 표현했단다. 예산과 노력을 기울여 이러한 상징물을 세울 만큼 대한민국이 성장했구나, GDP $35,000 국민으로서 가슴이 뿌듯하다. 백 미터쯤 지나 신세계백화점과 대덕대교를 잇는 횡단보도를 만난다. 신호가 나서 걷는데 삐익! 좌회전하던 승용차가 코앞에서 급정거한다. 멈칫했다가 마저 건너자 빵 빠앙, 뒤에 선 시내버스가 경적을 울린다. 노인네 지나갔으니 빨리 출발하라고 승용차를 재촉한다.

 

푸른 신호는 아직 15초나 남았는데... GDP 천 달러가 못 되는 미개한 후진국형 ‘자동차문화’다. 둘 사이 거리가 고작 백 미터다. 숙소 사빌에서 ‘9 to 5’인 오피스텔까지 걸어서 3천 걸음, 왕복하면 하루 목표량 7천 보를 너끈히 넘긴다.

 

그 길에 과학 도시 대전의 상징물 두 개가 더 있다. 별 기둥 남쪽 과학관 앞에는 걷는 이의 로망인 ‘끝나지 않는 길’ 뫼비우스의 띠가 있고, 북에는 AI를 탑재한 로봇 ‘HUBO’가 앉아 있다. 로봇의 배경 둥근 원판에 만 원권 지폐에 등장하는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고구려에서 전해져 이태조 4년에 제작했다는, 우리 옛 과학의 대표적 유산이다. 역사적인 자랑거리와 현대과학과 미래의 꿈이 있는가 하면, 지극히 부끄러운 자동차 문화가 뒤섞여 공존한다.

 

필자 눈에는 10위권에서 턱걸이할 올리비아 핫세를 많은 사람이 최고의 미녀로 꼽는다. 71세 할머니가 55년 전 출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제작사 파라마운트에 $5억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단다. 당시 15세로 다른 선택권이 없었던 자신을 속이고 누드를 찍어,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다는 주장이다. Franco Zeffirelli 감독은 La Traviata 등 많은 오페라를 영화화하고, 2019년 타계한 명장(名匠)이다. 사망한 감독 대신 회사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시비를 따져보자. 첫째, “예술은 기본적으로 관음증(觀淫症: voyeurism)적 요소를 내포한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의 노출 없이 영화가 세계적인 히트를 하고 그녀가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을까? 둘째, 미성년임을 강조한다면, 계약서에 서명한 친권자, 부모야말로 가장 책임이 무겁지 않을까? 감독이 성범죄자라면 서명자는 주범급 공범 아닌가? 셋째, 이 사건은 캘리포니아 당국이 2020년 법을 개정하면서, 어린 시절 겪은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3년간 없앤, 한시적인 중단 조치를 계기로 벌어졌다. 법률의 근간인 예측 가능성 훼손과 막대한 경제적인 왜곡으로, 사회의 안정성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해방 80년, 우리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없던 격변을 경험했다. 소득 $60에서 $35,000까지, 남침 전쟁의 동족살상과 혁명과 쿠데타,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를 겪었다. 그 모든 격변을 살아낸 증인들이 모두 한데 엉겨서 아웅다웅 다투며 산다.

 

미인(美人)을 보는 눈부터, 자동차문화도 삶의 가치관도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좋게 말하면 다양성 넘치는 역동적인 나라요, 나쁘게는 콩가루 집안이다. 갈라치기를 무기 삼아 양극화의 단물을 빨아먹기 딱 좋은 포퓰리스트의 텃밭이다. 이에 편승하여 정치는 퇴행하고, 제헌국회보다도 한참 뒷걸음친, 19세기 입법 만능주의 3류 국회가, 사회 안정성을 위협한다. 조폭과 공권력의 기묘한 동거, 콜라보도 엿보인다.

 

김정은의 핵 공갈보다 더 무섭다. 치유방법은? 먼저 ‘천차만별’부터 인정하자.

‘다름을 틀림(Different Vs. Wrong)’으로 단죄하지 않는 ‘포용과 용서’로 인기영합주의자들의 갈라치기를 뿌리 뽑자. 소득 $60 시절 저지른 미성년자의 어리석음을, $35,000 어른의 잣대로 재단하려 들면, 다양성은 콩가루 집안으로 역동성은 극단적 증오로 독버섯처럼 자라지 않던가? 계묘년 새해에는 되도록 입은 닫고 산토끼의 큰 귀를 닮자. ‘말에 앞서 듣기 먼저’ 이야말로 포용과 용서의 첫걸음이니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철중 치협 대의원총회 전 의장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한진규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