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9번째)1급 비밀

  • 등록 2010.02.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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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9번째


           1급  비밀

 

 

김 광 화
조선문학 문인회 부회장
부천 김광화치과 대표원장

 

 

사람에겐 누구나 크고 작은 비밀이 있기 마련이다.   그 비밀은 자기 자신만이 알고 있는 채로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을 터이고 때론 타인에게 누설이 되어 크게는 패가망신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지금 밝히려하는 것은 한동안 남이 알새라 전전긍긍해하며 아내 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1급 비밀 중의 하나이다. 지금 내가 심경의 변화를 갖게 되는 데는 순전히 심리적인 것으로, 아무도 없는 숲속에 들어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댄 동화속의 이발사와 같은 심정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대학원 동문회에서 회보 발간을 위한 원고청탁이 있어서 본 내용의 에세이를 보냈는데 편집위원들이 좀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취소하고 다른 내용의 칼럼으로 대신한 적이 있다. 그들이 난감해 하는 대는 겉으론 나의 체면이 깎일 수 있음을 걱정해주는 것이었지만 내심 잘나가는 대학교의 이름이 들어가는 동문회보의 위상에 손상이 간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게다. 저명한 수필가 김시헌 선생님의 글 중에 어느 독자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대목이 있는데 수필의 본질을 잘 나타내주는 적절한 말이기에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세상에는 자기의 생각들을 기가 막히게 간결한 글로써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시인입니다. 세상에는 또 기가 막히게 사실인 것처럼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소설가입니다. 그리고 선생님! 세상에는 기가 막히게 사물을 투시하며, 자기의 인격을 글로써 정확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수필가입니다.”


수필의 다른 분야와 또 다른 일면을 잘 나타내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이 나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내용일지라도 주저 없이 쓰고자 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7 년 전 쯤의 일이다.

주말이라 일찍 퇴근한 나는 곧바로 집 근처 백화점에 있는 휘트니스클럽으로 향했다. 건강을 위한 운동의 중요성은 새삼 언급할 나위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몸의 유연성은 둔해지기 마련이고 운동의 필요성은 절실해진다.   언제까지라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던 복부의 임금 왕(王)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원치 않는 곳에 무허가 건물들이 슬슬 평수를 넓혀간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 중의 하나가 수영이다. 사우나에서 간단히 샤워를 한 후 수영을 위해 수영모와 수경을 착용했다. 부옇게 흐린 윈도우에 비치는 이런 나의 모습이 마치 미소년 같아 보여 기분 좋게 씨익 웃어보는 여유로움도 가지면서 수영장에 들어서서 몸을 풀었다.


“하낫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여느 때와 같이 수영하기 전 준비운동을 열심히 해댔다.   초가을이라도 날씨가 더워서인지 실내 수영장은 평소 때보다 붐볐다.


“셋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넷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열심히 맨손체조로 몸을 풀고 있는 나의 시야에 문득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작은 눈동자들이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도 수영을 하다말고 물장난을 쳐대던 그 꼬마들이다. 어? 그러고 보니 나를 바라보는 건 그 애들만은 아니었다. 수영장 건너편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수영객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듯 했다. ‘쑥스럽게시리 준비운동 하는 것 첨보냐?’
“하나 둘 셋 넷…”
이 때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낸다.          
“저어- 있지요”
“네!”
“저기요….”
“왜요?”  
“수영복을 안 입으셨는데요.”
“네에?”
아뿔사! 오 마이 갓!!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 이상 뭘 망설이겠는가? 샤워실까지 정신없이 뛰었다.   거시기를 양 손으로 가린 채로, 이런 황당한 일은 꿈에서나 있을법한 일이잖은가? 샤워실 한 쪽 귀퉁이에 주저앉은 나는 살며시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다. 꿈은 아니었다. 불행히도 무척 아팠다. 조금 전 상황을 생각해보면 할수록 얼굴이 화끈거린다.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상상해보라. 점잖은 어른 체면에 수영모와 검은 수경으로 폼 잡는 것 까진 좋았는데 아랫도리는 그대로 덜렁 내 놓은 채 남녀가 모여 있는 수영장, 그도 한 복판에서 열심히 체조를 해댔으니… 몸을 좌우로 비틀어대는 몸통운동을 해 댈 땐 아랫도리의 모양새는 어떠했겠는가? 떫은 감 씹은 얼굴로 나를 응시했던 어린 소녀, 오던 길을 갑자기 되돌리던 아주머니, 오호 통재라!


요즘은 다른 운동에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예전처럼 자주 수영장을 찾지는 못하지만 샤워실에서 수영장으로 가기 전 수영 복장을 할 때는 반드시 수영복을  먼저 입고 고개를 내려 두세 번 확인을 한다. 그리고 수경은 맨 나중에 쓰는 게  철칙이 되었다. 수경은 구조상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수경을 착용하고 나면 시야의 제한을 받아 일부러 고개를 숙이지 않은 한 하반신 쪽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악몽 아닌 악몽 같은 이 사건은 지금까지 아내 외 아무에게도 말 한 적이 없는 1급 비밀 중의 하나이다.  
“당신만 알고 있어야합니다. 쉿!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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