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5번째) 고3 아들에게

  • 등록 2011.08.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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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5번째


고3 아들에게

  

수능을 3개월여 남긴 아들에게선 초롱초롱한 눈망울 외엔 나날이 피곤이 짙어 간다.


자식의 성공 요건 중 아빠의 무간섭(무관심?) 항목에서 만큼은 본의 아니게 일관성을 지켜온 터라 요즈음은 후환이 두려워 등교 시간 걷는 수고를 덜어 줄 요량으로 운전대를 잡곤 한다.


위로와 격려의 말을 주고자  마음먹고 얘기를 건내려다가도, 지구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눈꺼풀을 상대로 힘겨운 전쟁을 하는 모습에 이내 포기 하고 만다.


매일 매일이 기막히게 반복되는 고3 생활이 지겨울 법도 하지만,  크게 흐트러지지 않고 제법 의연하게 버텨가는 아이가 이젠 고맙고 대견하기만 하다.


그리곤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은 30년전 내가 겪었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다.


냉방도 난방도 여의치 않던 시절. 고만 고만하게 철이 들듯 말듯한 까까머리들이 이른 아침부터 저녁 10시까지 내무반 생활처럼 고3시절을 보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그렇듯 기껏해야 선생님 골탕 먹이는 수준의 소소한 일탈들이 있고, 간혹 공부에 흥미를 잃은 친구들의 야릇한 유혹들이 지루한 일상의 화제가 되어 엉뚱한 무용담으로 부풀려 지곤 했는데, 문제는 무엇 때문에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선생님께서, 선배들이 홀리는대로 ‘저 높은 고지’를 향해 ‘저마다의 정열’을 불태우던 시절이었다.


그렇듯 번잡스럽고 어설픈 일년이 끝나자마자, 평생 그곳에서 그렇게 함께 살 것 같았던 친구들은 ‘저 높은 정열’을 찾아 ‘저마다의 고지’를 향해 개미굴에서 개미가 빠져 나가듯 흩어 졌다.


각자는 이제 공통된 고민 보다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상의 과제들에 웃고 울다가, 먼저 간 친구의 부음을 듣고 모였다.


적절하게 살찌운 뱃살과 하나 같이 두툼하게 늘어진 볼살로 중년의 무사함을 과시하곤 있어도, 누구나의 머리 마다엔 고민덩이 하나씩은 무겁게 얹혀있는 약간은 주저 앉은 어깨들을 하고 있다. 일단은 서먹서먹하고, 잘못 아는 체해서 실수 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조금은 더 성공한 친구가 있고, 아직은 힘겨운 삶에 애처로운 노총각도 있다. 그냥 그것 뿐이다. 모인지 한 시간도 안됐는데 모두는 놀랍게도 30년전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 패싸움하다가 무기정학 먹었던 친구는 그 급박했던 현장을 열나게 설명하고 있지만, 그는 고등학교에서 학생 과장을 도맡아 하고 있는 고난도의 도덕성을 갖춘 교육자고, 몽환적인 눈빛으로 그 거짓말에 빠져들고 있는 이들은 멀쩡하게 사회생활 잘 하고 있는 사회 지도층들이다. 우리는 그렇게 아직은 어린 아들들을 두고 간 친구에게 미안한 줄도 모르고 그 시절의 묻어 두었던 추억들을 하나씩 건저 올리고 있다. 무엇이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를 현실의 고민들로부터 벗어나게 해줄까? 아무래도 그것이 고3의 멍에를 진 내 아이에게 전해줄 위로일 것 같다.


먼저, 자신의 꿈과 가능성에 대해 가장 빛나는 오만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그 시절 이후로 단 한번이라도 그토록 비현실적인 자기애를 아빠는 누린 적이 없다. 비록 1등급과 2등급의 사이가 거대한 계곡만큼의 간극임이 현실일지라도, 꿈과 가능성이라는 날개를 크게 펼쳐보고 자신에 대해 맹목적인 가치를 부여해 볼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친구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경쟁이라는 틀 속에 갖혀 있다 보면 상대방의 장점보다는 약점에 솔깃 하는게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회인이 되고 나면 조화와 융합을 무기로 삼아야만 할 것이고, 사회화라는 과정도 서로를 이해하는 훈련으로 구성된다 할 수 있다. 편차보다는 유사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 시기를 매우 풍족하게 채워 줄 좋은 미덕이 아닐까 한다.


또한 좌절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했으면 한다. 이는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용기를 갖자는 의미다. 누구나가 모두 성공할 수는 없고 누군가가 항상 성공을 하기도 어렵지만, 좌절과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만이 성공의 과실을 절실히 갈망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꿈과 가능성을 찾고 경험한 좋은 추억으로, 영원히 보내고픈 어두운 밤들이 아닌 30년이 지나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빛나는 시절로 꾸며 주었으면 한다.

 

박영채

목고박치과의원 원장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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