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6번째) 특별한 오늘에 감사하며…

  • 등록 2011.08.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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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6번째

 

특별한 오늘에 감사하며…

  

여름철 장마. 연일 호우 경보, 호우 주의보가 판치다가 잠시 한풀 꺾여서 오늘은 흐린 날씨에 비가 가볍게 내려온다.


이런 날 혹자는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혹자는 상쾌함을 느끼리라.
나에게는 오늘의 날씨는 불쾌한 날이다. 전날 잠을 뒤척여서인가? 뒷목도 뻐근하고, 살짝 편두통도 있는 듯하다.


7월초라 한가한 병원, 비가 오니 환자도 없는 유비무환(?)의 금요일. 오전을 한가하게 보내고 점심시간이라도 좀 길게 잡아서 휴식을 취할까 하고, 1시부터 2시 반 까지의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12시 반쯤에 점심을 시켰다. 이런 날은 나가봐야 피곤하기만 하다.


마침 한 직원이 어제밤 있었던 소개팅 이야기로 분위기를 띄운다. 즐거운 이야기로 피로가 살짝 풀릴려고 할때즈음. 대기실에 환자가 한 명 찾아왔다. 2007년도에 병원에 처음 내원하여 거의 전악 치료를 받으셨던 환자인데, 나름대로 꼼꼼한 성격이라 최상의 치료를 하기보단 실수를 적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 환자에게는 참 많은 탈이 났었다.


임플랜트도 하나 실패하여 재식립하였고, 전치부 브릿지 같은 경우는 한지 1년만에 깨져서 다시 재제작을 했던 환자다.


환자분은 늘 웃어주며 “다시 한번 합시다”라고 격려를 해주었지만, 의도하지 않은 자격지심에 괜히 그 환자분은 나에게 미운 사람이었다.


그 분이 온 것이다. 나름대로 병원 직원들은 초비상이다. 오늘은 무슨일이 벌어졌을까?
함께 밥을 먹던 직원 한 명이 나가서 인사를 한다.


“아버님 일찍 오셨네요. 근데 어쩌죠? 저희 병원 지금 점심시간인데.”
“나 원장님께 꼭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원장님 계신가요?”
“지금 식사 중이신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안그래도 좋지 않은 날씨에 모처럼 좀 점심시간에 휴식을 갖고 싶은데 왜 굳이 일찍 와서 또 무슨 내 진료에 트집을 잡을려고 그러나.


소파에 기대고 앉은 환자분께 다가가서 너스레를 떨며 친한척을 한다.


“아버님 어쩐 일이세요?”
안색이 좋지 않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왔다.
“나 원장님께 할말이 있어서 왔어요.”
“네 아버님 이리 들어오세요”
또 괜한 트집을 잡을까 두려워서, 밀폐된 공간이 있는 상담실로 환자분을 이끈다.
“네 아버님 무슨 말씀을….”
“별일은 아니구요. 나 사실 원장님께 인사하러 온거에요.”
“네?”
“원장님. 저 작년 초에 제가 여기서 마지막으로 체크 받고, 바로 몸이 안좋아서 병원갔는데 췌장암 말기 판정 받았어요. 이제 두달 남았다네요. 그래서 그간 수고해주신 원장님께 인사하러 온거에요.”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얘지고, 무슨 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원장님 덕분에 식사도 잘하고, 이렇게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떠나려고 주위를 정리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원장님이 생각났어요. 아들녀석이랑 같이 왔는데 꼭 인사드리고 싶어서 들렀습니다.”


“(아버님 바보세요? 저 때문에 아버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원장님 앞으로 공부 더 열심히 하시고, 좋은 의사가 되어주세요.”


“(난 왜 말을 전혀 못하고 있지? 무슨 말이라도 하란 말야)”


이내 난 그 환자분의 손만 꼭 잡고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도대체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인사를 마친 후에 문까지 배웅해드리며 “아버님. 아드님이 너무 잘생기셨어요. 아버님 그리고 다음 체크는 6개월 후에 오셔야 합니다. 그때는 이렇게 힘없는 모습으로 오시면 안돼요. 피부관리도 좀 하시고, 살도 좀 찌우시고, 건강하게 오셔야 합니다. 옆에 멋진 아드님. 꼭 건강하게 모시고 오세요.”


항상 나에게 너그럽고 여유롭게 웃어주시고 용서해주시던 그분의 큰 마음에 비해 돌아가는 그분의 어깨는 쳐져 있었고, 당신의 몸하나 가누질 못해서 아들에게 기댄 채 손을 흔들며 떠나셨다.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아들과 함께 돌아가는 저 분의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고 갔으며 얼마나 많은 체념을 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겠는가.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멍하니 얼마간 앉아 있었던 나에게 그간 생각 저편에 밀어놓았던 많은 생각들이 새삼스레 몰려온다. 마치 해일이 다가오듯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가 다시 물이 빠져나가듯 정리되고 난 자리엔 새삼스럽기 이를데 없는 일상에 대한 고마움과 행복이 남는건 내가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이기 때문일까. 나는 지금도 오늘이라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하루를 무심히 보내고 있다.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특별한’ 하루를. 오늘만큼은 나도 특별한 오늘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김재영
미소랑치과의원 원장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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