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 : 가을이 왔건만 가을 같지 않다
중국 당나라시대의 시인 동방규의 昭君怨(소군원)이라는 시를 보면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같지 않더라’는 내용이 있다. 昭君怨(소군원)이란 ‘소군의 원망’이란 말로 한나라시대의 왕소군의 한(恨)을 이야기한 것이다. 왕소군은 중국 한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로 중국 역사상 2대 미인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녀를 이야기할 때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란 표현을 쓴다. 중국 4대 미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시가 물가에 있을 때 미모에 반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서 물밑으로 가라 앉았다고 해서 “침어(沈魚)"이다. 왕소군은 미모에 기러기가 날개 짓 하는 것조차 잊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낙안(落雁)"이며, 삼국지에 나오는 초선은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서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고 해서 “폐월(閉月)"이다. 마지막은 모두가 잘 아는 양귀비로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고 해서 “수화(羞花)"라고 했다. 그 뒤 계보를 잇는 미인은 양귀비와는 쌍벽을 이룬 이로 가볍기 그지 없어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였다는 “작장중무(作掌中舞)" 조비연(趙飛燕)이다. 현대라면 글래머였던 양귀비보다 앞설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왕소군은 한나라의 원황제 때, 후궁이었는데 한번에 많은 후궁을 볼 수 없었던 황제는 화가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해서 선택을 하였다. 뇌물을 받고 그림을 그려 주던 화가는 뇌물을 주지 않는 왕소군을 일부러 못생기게 그렸다. 따라서 왕소군이 가장 못생긴 것으로 황제는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흉노의 왕이 화친을 위하여 한나라 여인과의 결혼을 원하자, 황제는 가장 못생긴 왕소군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통보하였다. 흉노의 왕에게 보내는 날 아침 처음으로 왕소군의 미모를 보고 한탄을 하며 화가를 처형하였지만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에 왕소군이 흉노의 땅으로 떠나면서 슬픔을 담아 말한 것이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라는 이야기이다.‘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겠냐마는 봄이 와도 봄과 같지 않다’라고도 해석되는 글로 예전과 같지 않은 현재를 말한다.
오늘은 입추이다. 가을이 시작되는 날이다. 하지만 입추가 지나서 말복이 온다. 비록 가을은 시작되었지만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러기에 필자는 동방규의 소원군 시를 본 따서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가을이 왔건만 가을 같지 않다”라 한다. 절기상 가을이 왔지만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말이다. 마치 늙은 호랑이가 기운이 달리니 더욱 까탈스러워지고 난폭해지는 이치이다. 하지만 머지 않아 힘을 잃고 사라질 것도 또한 이치이다.
요즘 치과계를 보면 여름이 와도 여름 특수는 사라졌으며 더 이상 어려울 수 없는 어려운 상태이다. 거기에 내부의 불법 네트워크 문제는 곪아터져서 세상의 화젯거리가 되었지만 치과계의 담장 밖은 공정하게 심판해줄 국민들이 아니고 치과를 전체로 갑(甲)으로 보는 을(乙)의 입장이었다. 세상은 을의 입장에서 싸고 좋은 진료의 답을 물었다. 상대적으로 잘 사는 치과의사가 저가 치료가 좋은 진료가 될 수 없음을 피력하기엔 국민정서의 벽이 너무 높다.
불법 네트워크의 행태는 최소한의 양심도 없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며 오늘 입추에 불현듯 대다수의 치과의사들은 왕소군 같고 불법 네트워크는 화가이며 국민은 속은 황제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소신으로 불법 거래를 하지 않은 왕소군은 흉노의 왕비로 가고 불법 화가는 처형당하고 속은 황제는 운다. 현실도 그리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부디 현명한 황제가 불법 화가를 처단하고 사랑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에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가‘가을이 가을 같지 않다’는 한탄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은 무던히도 덥지만 얼마되지 않아 사라질 더위라는 의미였으면 한다. 소신 속에 가슴앓이 하는 대다수 치과의사의 가슴에 시원한 가을 바람 한자락 불어주었으면 한다. 멀리서 매미소리가 들려온다.
최용현
STM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