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치과의사.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남자 치과의사에게는 군의관과 함께 꼭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치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자리 잡고 나서부터는 남자 신입생은 대부분 군필자가 들어오기 때문에 공중보건치과의사 수도 줄고 있는 추세이고, 공중보건치과의사 제도나 역할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물론 나의 경험이 공중보건치과의사 생활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경험을 통해 공중보건치과의사의 지역사회에 대한 역할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갓 졸업한 신규 치과의사들에게 3년간의 공보의 생활은 개인적으로는 첫 사회생활이자, 치과의사라는 타이틀을 걸고 본인 주관으로 환자를 보게 되는 첫 직장이다. 어떤 일이든 ‘처음’이라는 것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경남 시골의 치과진료실과 구강보건실이 있는 보건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첫 2년간은 구강보건실로 발령을 받아 구강보건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학기 중에는 학교 구강보건실로 출장을 나가 어린이집 아이들,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아 홈메우기 및 간단한 충치치료를 하고, 학교 방학기간에는 마을을 돌며 출장을 다니면서 어르신들 구강위생 관리 교육이나 무료보철 대상자를 검진하고 선정하는 일을 한다. 겨울에는 노인 무료 스케일링 사업과 함께 구강위생 관리용품과 의치 소독제를 드리고 사용법도 상세히 알려드리고 온다. 처음 발령을 받고서 실런트나 불소 도포 같은 간단 처치를 하는데도 긴장하고, 어르신들 앞에서 TBI 와 의치 관리 교육을 하면서 낑낑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긴장하고 헤매던 시간이 지나고 차츰 일에 익숙해져가면서 그 동안은 보이지 않았던 ‘환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근무지가 시골이라 학교에 결손 가정이나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았다. 보통 이런 가정은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구강위생관리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구강위생이 현저히 나쁜 경우가 많다. 어르신들의 경우도 오래 돼서 입만 벌려도 흘러내리는 의치를 끼고 계신다던가, 무허가 의료행위로 제작된 잘못된 의치를 사용하고 계신 경우가 꽤 많았다. 또 무료 스케일링 사업을 나가면 80평생 스케일링을 처음 받아 치석에 뒤덮여 치아가 보이지 않을 지경인 분도 있고, 스케일링을 하려고 틀니를 빼 달라고 말씀드리면 틀니를 끼고 계시면서도 본인은 틀니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다. 틀니를 처음 제작해서 끼운 이후로 한 번도 빼지 않으신 분이다. 치석과 곰팡이로 뒤덮인 틀니를 빼서 보여드리면 그제야 놀라신다. 그동안 큰 도시에서만 생활을 해왔던 나는 2년간의 구강보건사업을 통해 도시과 시골의 격차는 사회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구강 상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사실 조금은 안이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공보의 생활이지만 치과의사로서 일종의 사회적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마지막 3년차 때는 보건소 치과진료실에서 일하면서 구강보건 사업을 통해 알게 된 시골의 구강보건 실태와 여건을 바탕으로 나름 최선을 다해 진료에 임할 수 있었다.
지난 3년간의 공중보건치과의사 생활동안 지역사회에 봉사도 하고 자기계발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한편으로는 구강보건사업의 혜택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경남 지역의 경우 2010년에 신규 공중보건치과의사 수가 26명이었던 반면 작년에는 22명, 2013년에는 9명으로 줄었다. 바뀐 치과의사 양성 제도에 따라 공보의 숫자가 점점 주는 것은 불가피한데, 이로 인해 공공치과의료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까지 혜택이 못 돌아가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공중보건치과의사들이 좀 더 의사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진료에 임하고, 주변에 개인 치과의원이나 치과 병원도 구강보건사업에 잘 협조한다면 비록 공중보건치과의사 숫자가 줄고는 있지만, 최대한 피해보는 사람 없이 좀 더 많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 갈 수 있지 않을까.
조민철 부산대학교치과병원 진료처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