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족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캠핑은 직장과 일터에서 지친 아빠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일등공신이다. ‘1박 2일’과 ‘아빠 어디가!’라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캠핑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겐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는 병만 족장처럼 든든하고 멋진 모습으로 변신하는 아빠의 모습을, 캠핑을 싫어하는 아내에겐 육아와 살림에서 벗어나 모처럼 자유로운 시간이 허락된다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져서 처음 캠핑을 시작하게 되었다.
캠핑장비 일체를 매장에서 구입한 친구와는 달리, 나는 캠퍼들이 많이 가입했다는 블로그와 카페를 뒤져가며 일단 필요한 장비들의 리스트를 만든 후 하나씩 구입해나가기로 했다.
캠핑을 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지인들에게 캠핑장비들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더니, “아니 깨끗하고 시설 좋은 펜션이나 호텔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캠핑 장비를 사요?”, “캠핑가면 남자가 다 해야 하는데 남자만 생고생해요!”라며 다들 뜯어 말리는 분위기다.
주말이 되어 아들과 함께 다양한 크기의 텐트가 전시돼있는 대형캠핑용품매장에 갔다.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비는 매장 안에는 나처럼 캠핑을 막 시작하려고 텐트며 여러 장비 등을 순례하듯 둘러보는 사람들과, 캠핑장에서 눈여겨 본 장비들을 업그레이드하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캠핑장비들 중에서는 아무래도 가장 먼저 텐트를 사야할 것 같아서 지난번 마음속으로 점찍어둔 그 제품을 파는 대형매장 몇 곳에 전화를 해보았다. 모두들 품절이라며 언제쯤 입고가 될지 모르겠다는 말들뿐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며칠 전만해도 매장에 재고가 있었는데….
며칠 뜸 들이는 사이에 그만 품절되고 만 것이다. 혹시 다른 중소형 매장에는 재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전화해보니 때마침 재고가 있는 매장이 있었다. 한걸음에 달려가 텐트를 구입하고 보니 뿌듯한 마음에 집이라도 한 채 장만한 것 같은 기쁨이다.
나머지 장비들은 매장을 방문해서 온라인 쇼핑몰과 가격을 비교해보고 하나씩 구입해나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캠핑용품들이 배달되기 시작했다. 침낭, 가스버너, 가스랜턴, 바비큐 테이블, 의자, 식기, 코펠 등등… 장비를 사려고 드니 참 많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캠핑을 시작한 뒤로 본인의 집으로 택배아저씨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담당 택배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다는 어느 방송인의 너스레가 빈 말이 아니었다.
텐트를 구입하며 잠깐 설치하는 요령을 듣기는 했지만, 막상 첫 캠핑을 앞두고는 텐트 치는 게 가장 큰 부담이었다. 아내에게 “공원에서 텐트를 좀 쳐봐야 되지 않을까?”라며 물으니 “그냥 캠핑장에 가서 치면 되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 공원에서 치려면 아무래도 번거로울 거야?”
캠핑을 떠나는 날 아침, 집안 구석구석에 꼭꼭 숨어있던 캠핑장비들이 거실로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도대체 저걸 언제 다 샀나 싶다.
장비들과 먹거리들을 차에 싣고 푸르른 산들과 시원한 바람이 마주하는 캠핑장에 도착했다. 대부분 오토캠핑장은 예약 후에 당일 날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 도착해보니 이미 즐비하게 설치된 텐트들 사이에 빈자리가 몇 개 안남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부랴부랴 짐들을 차에서 내려놓고 부담스러워 열어보지도 않은 텐트설치설명서를 꺼내어 읽어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치를 시작해야하는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내와 두 아이는 아빠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참으로 난처한 상황이었다. 염치 불고하고 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옆 텐트 캠퍼분에게 다가가 텐트치는 걸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분이 텐트 설명서를 읽어보더니 능숙하게 텐트를 치기 시작했고 잠시 후 우리가족의 얼굴에는 감사의 기쁨이 넘쳐흘렀다. 텐트가 완성된 것이다.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가져온 과일을 가져다드리며 고마움을 전했다. 캠핑촌의 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가스버너를 설치하고 아내와 아이들과 같이 쌀을 씻고 김치찌개거리를 준비해서 가스버너에 찌개와 밥을 올려놓고 나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보글보글 김치찌개에, 지글지글 삼겹살에,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꼬치구이에, 행복한 밥상의 완성인 끓인 누릉지까지….
쉴 새 없이 수저와 젓가락들을 식탁위에서 춤추게 한다. 아빠를 닮아 입이 짧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캠핑장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 먹는 음식은 샤베트처럼 새콤달콤한가보다.
캠핑장에 어둠이 내리면 가스랜턴의 불이 밝혀지고, 랜턴의 은은한 불빛이 어둠속에서 따스한 불빛으로 피어오른다. 화로대에 장작이 쌓아 올려지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화로대 주변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맹렬하게 타오른 장작의 불길이 사그라들면 우리 집 냉동실에서 오랜 시간 동면중이던 박대와 흰 가래떡에 호일로 옷을 입힌다. 그들은 추석 때 어머니가 챙겨주셨으나 우리 기억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었던 냉동실의 터줏대감들이다. 그리고 감자와 고구마가 차례로 호일에 싸여 숯불에서 익어가는 동안, 아이들은 주워온 삭정이로 괜스레 불장난을 해보기도 한다.
밤이 깊어가고 화로대의 숯불이 잦아들면, 텐트 안으로 들어가 침낭을 펼쳐 덥고 낯설지만 익숙한, 불편하지만 편안한 숲속의 대저택에서 잠을 청한다.
화로대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정겨운 웃음소리가 달빛아래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들국화를 흔들어 놓으며 캠핑장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열섬과도 같은 서울에서는 밝은 조명과 불빛 때문에 결코 볼 수 없었던 운치 있고 포근한 별빛은,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가며 내는 나무 타는 소리는, 숯불에 적당히 잘 익어가는 구운 고구마냄새와, 호호 불어가며 뜨거운 감자의 껍질을 벗겨주는 엄마의 손길이, 기분까지 구수하게 만드는 커피 맛이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캠핑의 즐거움이다.
야생의 캠핑에서 장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캠핑장비들은 우리에게 약간의 편리함을 더해줄 뿐, 중요한 것은 캠핑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삶의 여유로움과 힐링과 여행이 주는 즐거움 그 자체이다!
임 용 철 선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