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 나의 한센인

  • 등록 2014.05.09 11: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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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제1929번째

사람들이 천형이라 부르는 한센병. 과거에는 나병, 심지어 문등병이라 칭하며 천대와 멸시를 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한센인은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우리 인간사에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가족같이 생각하면서 누구보다 더욱 사랑했던 이들. 오직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사는 이들. 많은 사람에게 접근하기 두려운 대상일지 모르지만, 오직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사는 이들. 이번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며 누구보다도 많이 울고 아파했던 이들 또한 한센인이다. 어렸을 때 한센병에 걸려 이웃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았고, 부모님과 생이별을 경험한 아픔 때문에 더 슬펐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친다.

과연 우리가 한센인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단지 육체적 건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인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살고 있기 때문인가?

소록도는 한때 천형의 땅이라 불렸던 곳이다. 단지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교육도 받을 수 없었다. 가족과 일가친척, 심지어 살던 동네에서 추방당했던 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본인의 이름과 호적이 없어지고 새로운 이름이 생겼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개,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며 이들은 강제 노역을 당하기도 했다. 이에 모자라 죽게 되면 실험대상으로 여겨져 시체 해부를 당했다. 이 병이 유전된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관리자들의 말을 듣지 않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강제적으로 정관수술을 해야만 했다.

한센인이라 하여 반항 한번 못했던 그들이지만, 오직 살아있는 자체를 기뻐했으며 천국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고통을 이겨냈다. 나는 이들의 고통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덧 2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해오고 있다. 내가 이들에게 해 주는 것이라고는 단지 말을 들어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난 이들에 비해 육체적 건강은 가지고 있으나 너무나 부족한 게 많다고 늘 생각해 왔다. 천형이라 불리는 한센병은 결핵과 마찬가지로 법정 3군 감염병이다. 결핵예방 접종제인 B. C. G. 한번 주사에 한센병은 학술적으로 40~80%의 예방 효과가 있다. 보건학적으로 예방사업이 잘된 우리나라에서는 B. C. G. 한번 주사에 99% 예방효과가 있다고 연구됐다.(가톨릭 의대 한센병 연구소) 또 항나제 주사로는 1회 po med로 최소 3개월만 복용해도 전염성이 사라지는 병이다. 너무나 약한 질환이어서 지금까지 배양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한센인들이 ‘아이들 간을 빼먹는다’, 성경에서는 ‘이 병을 하나님께서 주신 벌이다’ 는 인식으로 지금까지 천대와 멸시를 받아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한센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전국 정착지(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곳) 약 90여 곳에 1만2000여명이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한센병이 다 치유되어 전염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없으며, 단지 조기 발견이 어려워 치료가 늦어져 몸에 기형이 있을 뿐이다.

지금 소록도에는 580여명의 한센인이 살고 있으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74세이다. 나는 이들에게 치과 진료도 하지만, 가족같이 오순도순 얘기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고구마 튀김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서 손이 불편한 한센 할머니가 직접 키운 고구마를 잘라 고구마 튀김을 해오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가 편견을 버릴 때다. 한센인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요즘은 이곳에 사는 한센인이 일주일에 평균 한두 명 세상과 이별을 한다. 이들의 죽음을 대할 때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이 세상에 살면서 너무나 많은 수모와 고통을 겪었던 이들이 부디 천국에 가 편히 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부장

오동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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