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을 오가던 변덕스럽던 날씨가 어느새 또 바뀌어, 이제 정말 여름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5월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병원과 집을 오가며 햇빛 따사로운 시간대에는 작은 진료실에 틀어박혀 환자를 돌본다. 이 단조로운 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10년. 이런 내게 이동진료는 작은 변화이자 기쁨이 되기에 충분했다.
2005년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2008년 처음 장애인 이동진료 차량이 병원에 생겼다. 큰 대형버스를 개조한 이동진료 차량에는 치과용 체어 두 대와 작은 진료실이라는 말이 어울리게끔 다양한 장비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저 병원에 앉아서 이곳을 찾는 환자들을 기다리던 것에서 벗어나, 치과진료가 필요한 더 많은 장애인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발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 시내에는 생각보다 이동진료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곳이 많이 있다. 장애아동들을 위한 특수학교, 서울시립정신병원, 장애인 생활시설 그리고 다른 시립병원들과 함께 공동으로 찾아가는 쪽방촌 및 노숙인들까지…. 긴 시간동안 이동진료를 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는 서울시립축령정신병원이다.
축령산 자연휴양림을 옆에 둔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 자리 잡고 있는 병원. 하지만 3월 초 그러니까 봄기운을 갖기에는 좀 이른 시기였기 때문일까.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딱딱한 구조의 병원건물은 춥고 썰렁하기만 했다.
병원을 방문하는 총 4회의 이동진료 일정 중 내가 담당한 것은 1회와 3회였다. 첫 방문에서 만나게 된 환자들은 주로 여성행려환자들로 보호자나 연고자가 없이 병원에 입원하여 보호를 받는 장애인들이었다. 틈틈이 병원 차량을 이용해 인근 치과병의원이나 서울에 있는 병원을 방문하여 치과진료를 받고는 있었지만, 진료 여건이 열악하다고 했다. 그날 검진과 함께 아픈 치아 위주의 간단한 치료가 선별적으로 이루어졌다. 정신적인 문제 등으로 본인 스스로 위생관리가 어렵고 관리에도 어려움이 많았던지라 전반적으로 구강위생상태가 매우 불량하고 이에 따른 치주염과 출혈, 골 소실이 심한 경우가 많았으며 흔히 보기 힘든 heavy caculus deposit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잇몸상태를 가진 환자들을 보면서 치과의사로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수간호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치석제거와 구강위생관리의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생각난 것이 치과대학이나 치위생학과의 봉사활동이었다. 혹시나 하는 맘에 이에 대해 설명해 드리고 그렇게 된다면 환자들의 구강건강이 크게 좋아질 수 있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2주 후 다시 축령병원을 찾게 되었을 때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너무나 밝고 기쁜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아주셨다. 그 2주 사이에 모 위생학과에 연락하셨고, 거기 교수님께서 흔쾌히 봉사해주실 것을 동의하셨다고 한다. 매년 하루에 20명씩 병원차량으로 학교를 방문하여 위생과 학생들에게 스케일링을 받기로 약속했다는 것. 그저 입으로만 쉽게 했던 의견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실천으로 보여주신 선생님 덕분에 일회성의 이동진료보다 더 많은 것을 남길 수 있었다.
매일 진료팀이 교대로 나가 검진과 예방중심의 진료를 시행한 지도 벌써 수 해. 꾸준히 방문하고 있는 장소에서 만나는 장애인들의 구강 상태는 미약하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2013년 병원에는 새로운 이동 버스도 추가로 들어오게 되었다. 일회성 방문으로 검진 위주의 진료를 시행했던 것을 보완하여,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설 등을 한 진료팀이 4회에서 6회까지 담당하여 방문하고 필요한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3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매해 시작되는 이동진료는 따스한 봄과 더운 여름, 시원한 바람이 함께하는 가을을 지나 배관이 얼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겨울까지 계속된다. 이동진료 버스를 타고 나가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은 사실 나의 작은 즐거움이다.
황지영 서울특별시립장애인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