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택시기사

  • 등록 2014.06.03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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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제1936번째

“그린치과까지 가주세요. 흠 흠… 차에서 상큼한 향기가 풍겨나네요?”

어제 아침 평상시처럼 출근을 하기 위해 걸어가다가 시간이 좀 늦어져 택시를 잡아 탔더니 말로는 ‘향기가 풍긴다’ 했지만 차안에 방향제를 얼마나 뿜어 놓았으면 어지러워 구토가 날 정도였다.

“예, 차가 오래 되지는 않았는데 주행을 많이 해서 그런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향수를 뿌렸습니다. 향기가 좋으시지요?”

운전 기사는 그게 그리 자랑스러운지 아니면 간만에 손님을 태워서인지 연신 싱글 벙글이다.

“네, 좋지요. 하지만 좀 강한 편이네요.”

사실 나는 얼굴에 로션도 냄새가 싫어 거의 바르지 않는다. 더구나 방향제 같은 그런 인공적인 향은 기관지에 자극을 받아 더욱 싫어한다.

자랑스런 방향제에 폐를 끼치기 싫어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달리는 중에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와 나는 결국 창문을 열어 상큼한 바깥 공기를 모셔 왔다.

“이 차를 5년이나 몰았는데도 겨우 90만km 밖에 주행하지 못했어요. 앞으로 몇 년 더 몰아야 본전을 뽑는데….”
운전 기사는 새로 사야 할 차 할부금이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싱글거리던 미소가 사라지고 다소 풀이 죽은 모습으로 혼자 말을 하였다.

“겨우 90만km 밖에 주행하지 않았다구요? 겨우! 그게 얼마나 긴 거리인데요.”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말을 이어갔다.

“90만km를 달렸다면 자동차로 지구를 몇 바퀴나 도셨는 줄 아세요? 자그마치 스물 두바퀴 하고도 반바퀴를 더 돈거예요. 5년 동안에…어휴!”
“에에, 스물 두바퀴를 돌아요? 지구를! 에이 그럴리가?”
운전 기사는 말도 안된다는 듯이 눈을 치켜 뜨고 되물었다.

“그럼 내가 그러니까 음… 내 차로 1년에 지구를 4바퀴를 더 돈다는 말씀이세요?”
“네에 그렇네요. 기사님께서 하루에 500km를 주행한다면… 에에… 지구 둘레가 정확히 4만km이니 80일이면 지구를 한바퀴 도는 겁니다. 지구 일주에 세 달이 안 걸리네요.” 
따지고 보니 영업용 택시의 ‘80일간의 세계일주’인 셈이 되었다.

“그리고 더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요… 기사님은 그 동안 빛이 3초간 이동한 거리보다도 더 멀리 여행한 겁니다. 우주에서 제일 빠른 빛이 3초간 간 길이보다도 ‘더’ 라는 말입니다. 대단하지 않으세요?”

만약 그가 5년 동안 무사고로 운전을 하였다면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것일테다.
 “에에? 지구가 4만 키로 밖에 안되나요? 선생님! 과학 선생님이신가 몰라도 잘 아시네요. 근데 이 큰 지구 둘레를 어떻게 잰대요? 바다가 있어서 줄자로 잴 수도 없을테고…그리고 어떻게 조금도 에누리 없이 정확히 4만km가 되나요? 나 참.”

택시 기사는 아직도 자기가 운전한 거리가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이런 대화가 싫지는 않은지 물어 왔다.
“뭐 지금은 GPS나 다른 장비로 아주 정밀하게 재겠지만서두…” 나는 좀 뜸을 들였다.

“지구의 둘레를 최초로 잰 기록은 BC 234년이에요. 예수님이 태어나기 200여년 전에… 물론 아주 정확한 값은 아니지만….”
“혹시 어느 나라 사람인 줄 짐작하겠어요? 기사 양반.”
그 오랜 옛날에 지구의 둘레를 잴 생각을 하였다는 것 자체만해도 사실 감탄할 만한 일이지않는가?
아무튼 대화가 사뭇 재밌어진다.

“미국은 아닐테고요….” 이제 기사도 약간은 여유를 되찾은 듯 농담을 약간 곁들이며 대답했다.
“그리이스나 로마 사람이 아닐까요?”
“그렇죠. 내 생각에도 당시에 그리이스인이나 로마인이 가장 똑똑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도형이나 기하학은 이집트가 가장 발달했대요.” 

그리고는 ‘나일강 상류로 부터 흘러온 강물의 매년 반복되는 범람으로 인한 경작지의 측량 기술에 의한 결과로 이집트의 기하학이 발전되었다’고 말하려다가 뒤가 복잡해 질까봐 속으로만 생각했다.
“와아, 지금은 후진국인데 옛날에는 대단했었나 봐요, 이집트가. 그나저나 뭐 특별한 기계도 없었을텐데 어떻게 알아 냈대요?” 택시는 이윽고 사직동 사거리를 지나 체육관을 통과하여 시계탑 5거리 신호등에 멈춰섰다.

“네에,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왔군요. 자세한 것은 집에 혹시 자제분이 계시면 함 물어 보세요. 중학생이라면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나는 택시 요금을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중에 시간이 남아 다시 한마디 거들었다.

“지구 둘레가 정확히 4만km인 것은 현대인들이 지구둘레를 4천만으로 나눈 값을 1m로 정했기 때문이야요.”

P.S. 택시기사에는 못미치겠지만 우리도 매일 출퇴근에 50km씩 달린다면 800일에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실로 느껴진다.


박정용 그린치과의원 원장

박정용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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