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넘도록 나라가 혼란스럽다.
중동발 호흡기 증후군인 메르스로 인해서 우리 사회가 잠시 정지된 듯하다.
연일 국민들이 불안한 나머지 사회 활동을 줄이거나 외출조차 안 하고 있으니 말이다.
혼잡하던 시내 도로가 한산해서 놀란 적이 여러 번 있을 정도였다.
거의 모든 모임이 취소되고 병·의원은 물론 식당, 극장, 대중교통 및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대부분 영향이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겠다.
급기야 폐쇄하는 병원이 생기고, 병원에서 환자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에게 6월 한 달은 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메르스 감염에 대한 공포와 가정과 사업장의 적자 운영의 현실까지 느껴져 서늘하기까지 하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는 푸념뿐이다.
작년 세월호 사건 때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 메르스로 인한 우리 사회의 손실은 실로 대단할 것으로 추측된다.
외국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리는 등 경제적인 손실 말고도 민심이 흉흉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인간성의 상실보다 더 큰 손해는 없기 때문이다.
버스나 전철 안에서 기침이나 재채기만 해도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는 말도 들리고, 내원 환자에게도 의심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 현실에 마음이 편치 않다.
언제나 진정이 될지 알 수 없으나 빨리 안정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사스, 신종 플루 그리고 메르스를 겪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엔 새로운 질병의 출현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 같다. 물론 과거에는 그 두려움을 더 컸을 것이다.
요즘도 시대는 다르지만 역병이 생긴 마을을 흰 천으로 입을 가린 군졸들이 에워싸고 불태우던 사극 드라마의 장면과 크게 다름이 없어 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기후 변화, 질병, 전쟁 등 여러 가지 시련과 싸우며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이 대단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희생과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예방주사쯤이라면 좋겠다.
메르스 사태에 있어서 환자들 본인이 히스토리를 정확히 진술하지 않았고, 통제에 잘 따르지 않았으며, 정부의 대응이 늦었고, 면회 문화 등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이 있다.
감염에 있어서는 국민들의 성숙한 예방 의식이 필요하다.
단편적인 예이지만 용변을 본 후 손을 씻는 사람은 73%, 비누를 사용하는 사람은 33%라는 보고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반면에 의료계에서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병원 내 감염은 보이지 않지만 항상 가능한 일이다.
너무 바빠서 그러셨겠지만 무좀 환자의 발을 맨손으로 만지고 차트에 기록한 다음 바로 다른 환자를 진료하던 어떤 피부과 선생님의 모습이 생생하다.
남의 일만이 아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생각나는 것이 있다.
1989년경 공보의 시절에 ‘치과에서의 감염 방지’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연자 선생님의 열성적인 강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 당시 개원가의 감염 방지 시스템이 너무 열악하다고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었다.
그때의 강의 제목은 ‘만약 침이 빨간색이라면…’이었다.
여러 장의 슬라이드를 보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 이유는 실내가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그 빨간색의 정체는 다름 아닌 환자들의 타액이 에어로졸 형태로 멀리 퍼졌던 것이다.
바로 하이스피드 핸드피스와 쓰리웨이 시린지나 타구대에서부터 말이다.
진료를 하는 공간은 물론 대기실을 포함한 모든 공간이 오염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매우 멀리 날아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이 개선되고 발전되었으나 지금도 우리는 그런 같은 환경 속에서 매일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감염에 스스로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감염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진료실에서의 감염 방지는 기구의 멸균뿐만이 아니라 접촉 가능한 모든 부위의 소독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미 알려져 있는 치과에서의 감염 방지 매뉴얼이 잘 지켜져서 치과의원이 감염의 매개체가 되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그것이 결국엔 치과 종사자들과 환자 모두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방역복을 입고 더위에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힘겹게 환자들을 돌보고 있을 의료진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호진 양평 영진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