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축번호 1번 ‘닮고 싶은 아빠’

  • 등록 2016.04.08 10: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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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2112번째

오후 6시.
벚꽃 가득한 교정을 빠져나오는 지금!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아빠는 조금 많은 연세에 3남 2녀 중 막내인 나를 보셨다.
‘딸 바보’라는 말이 그 시절에 있었다면, 아마 최고 자리를 차지하셨을 정도로 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다. 막내딸이 태어난 날 너무 기뻐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시며 식사를 대접하신 탓에 잔소리 꽤나 들으셨다 하셨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말을 아끼셨지만 둘이 있을 때에는 속 깊은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털어놓으셨다. 덕분에 나도 아빠에게만은 남자친구 얘기를 제외한(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남자친구 얘기를 꺼냈던 날 아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소소한 일들까지 털어놓는 수다쟁이 막내가 됐다.

막내딸이 태어나던 날 아빠의 소원은 내가 10살이 될 때까지 건강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었단다. 내가 10살이 되던 날 아빠의 소원은 20살까지 나의 곁을 지켜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20살이 됐고 대학생이 된 나에게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 생각지 못하셨다며, 축하의 편지와 함께 헤어스타일링기, 그리고 메이크업 브러쉬를 선물하셨다. 10년 후 나의 결혼식에서는 엄마보다 더 많은 눈물을 보이셨고 서운해 하셨다.

아빠는 편지를 참 많이 써주셨다.
사춘기 딸이 혹여 삐뚤어질까봐 걱정돼 쓴 편지, 공부를 위해 타지로 가는 딸에게 전날 밤 쓴 편지, 결혼을 앞 둔 딸에게 당부의 말들을 빼곡히 적어 놓으신 편지, 첫 아이 출산을 앞 둔 나를 위해 내가 태어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셨던 아빠의 심정을 담은 편지, 지나고 보니 서예를 취미로 둔 걸 참 잘한 것 같다하시며 나의 퇴직 후 모습까지도 그려보신 마지막 편지까지….

어리석게도 늘 내 곁에 계실 줄 알았다. 내 가방 속, 책상 위에 언제나 편지를 놓아주실 줄 알았다.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오후 6시 퇴근길에 아빠와 통화를 했고, 잠들기 전 영상통화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보고 싶다 하셨다. 보름 전에 제주도에 다녀간 막내딸이 또 보고 싶다 하셨다.

못 뵌 지 4년이다.
아직도 매일 아침 나를 깨워주시던 아빠의 목소리가.
나의 출근길을 함께 했던 아빠의 차안이.
아빠와 나의 비밀장소 시장국밥집이.
아빠의 편지와 수다가… 많이 그립다.

오후 6시 퇴근길
아빠와 나누었던 시시콜콜한 통화내용들을 떠올리며 헛헛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계실까.
아직도 내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은 변함없이 ‘닮고 싶은 아빠’라는 것을 알고 계실까.

김창숙 울산과학대 치위생과 교수

김창숙 울산과학대 치위생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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