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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차 치과의사, 인생의 로또를 맞다”

Relay Essay 제2408번째

나는 예나 지금이나 로또 사는걸 즐겨하지 않는다.


어린 학창시절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집안 사정이 그렇게 가난한 형편은 아니었는데도…


당시에 부모님은 화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중학교 1학년 때 엄마와 함께 치과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환자가 엄청 많았다. 그 때 생각에 치과의사가 돈을 많이 벌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미술대학 대신에 치과대학을 갔다. 치과대학에 다니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고,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무난히 합격하였다. 치과의사가 되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철과 수련 후에 군의관을 마치고, 잠시 개원을 하면서 보철과 박사학위 과정을 거친 후 모교의 치과대학에 교수로 들어갔다. 기회가 되어 독일의 Freiburg 치과대학에 방문교수로 다녀오기도 했다. 그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공직을 떠나서 다시 개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치과의사가 된 지 30여 년이 넘은 나이에 치과보철과 전문의 시험에 응시해서 전문의가 되었다.

 

그러니까 1986년 치과의사가 된 이후로, 치의학박사, 치과대학 교수, 해외 방문교수, 거기에 더불어 치과보철과 전문의, 개원의까지 치과의사로서 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볼 정도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앞만 보고 살아왔다. 치과대학에 재직 시에는 사적인 시간이 많지 않아 가족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가 몸이 아파 대학병원에서 UC라는 진단을 받았다. UCLA, UCSF만 알고 있던 나는 UC가 궤양성 대장염 (Ulcerative Colitis)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치과대학 다닐 때 내과학에서 자가면역질환에 대해 배울 때 한두 번은 들어본 희귀난치성 질환이었다. 이런 일들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절대로 생기지 않을 거라고 믿고 살아왔었는데, 막상 닥치니 난감한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 모두 아픔을 받아들이고, 아내의 치료에 전념하면서 각자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 후로 8년이 지난 금년 초에 아내의 증상이 악화되어 서울지역의 대학병원에서 대장전절제술과 인공장루 형성술을 받았으며, 2주 뒤 조직검사 결과에서 상당히 진행된 대장암으로 진단되어 12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담당교수님으로부터 들어야했다.


 나는 로또를 사지 않는다. 이런 높은 확률을 요하는 일에는 기대를 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이렇게 희귀난치성 질환과 악성종양에 걸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앞만 보고 살아왔다. 그렇지만, 어김없이 35년 차 치과의사인 나에게도 이런 일이 불현듯 찾아왔다. 이제까지 살아온 날들 동안 과연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왔는지, 나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치과의사 시절에는 좋은 차와 좋은 집에 사는 것이 나의 로망이었으며, 그것이 행복을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30여 년 이상을 치과의사로서 살면서 큰 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내왔고, 주변에도 그리 나쁘지 않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살아왔지만, 언제나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지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앞으로 더 행복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었다. 아내가 UC 진단을 받은 이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생각도 하고 고민도 해봤지만, 행복해지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내가 더 불행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더구나 사랑하는 배우자가 암 진단을 받은 이후에는 하필이면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닥쳐올까 하는 자괴감과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아픈 배우자를 일으켜 세우려면 내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기 시작했다. 개원 치과의사로서 진료시간도 줄이고, 외부 강의, 임상저널 집필 등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동창모임이나 사회활동도 가능하면 자제했다. 그저 가능하면 남은 시간은 아픈 배우자와 함께하기로 하였다.


 집에서 함께하는 시간, 필자 스스로는 그림을 그리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곤 하였다. 캔버스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칠하다 보면 어느덧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다. 젊은 시절 치과의사는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상태인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였다면, 35년 차인 지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심리적 자유’를 추구하는 편이 되었다. 부와 명예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자가 모두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며, 가난하고 명예가 없는 사람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다.


 치과의사인 내게 그림은 아주 특별한 친구이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부터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배우면서, 전시도 하고, 많은 아트페어에도 참가하면서 이제 나름대로 비전공 분야인 미술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 치과의사로서 오랜 시간을 진료와 강의, 논문집필, 저널 집필에 몰두하고 살아왔으니,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려고 한다.

 

그동안 치의미전 대상, 도솔미술대전 대상 그리고 금년에는 전국규모의 미술공모전인 2020 아시아프 (ASYAAF) 히든 아티스트 부문에 응모하여 참여작가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 덕분에 미술 비전공자인 35년 차 치과의사가 국내에서 미술대학으로 유명한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금도 나는 로또를 사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인생의 로또를 맞았다. 그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닐지라도, 사랑하는 배우자의 암투병도 역시 나에게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인생의 로또였다. 그것은 나에게 치과의사로서의 자부심은 물론이고, 작은 것에 감사하게 해주고,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그림으로 인정받는 것에 대해 더없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아직 나의 아내는 항암치료 중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꽃 그림도 내가 그려주기도 하고, 나의 그림 활동에 아내와 가족들이 조그만 행복을 느끼면서 아픈 몸과 마음을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내가 그리는 그림을 보는 아픈 이들의 심신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회화작업에 임하고 있다. 요즈음 아내의 손을 잡고 항암치료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바로 그림인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 곁에서 함께 응원해주고 사랑을 나누어준 많은 분들이 계시기에 이렇게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이 지면을 빌어, 우리 가족에게 사랑과 관심으로 격려해주시는 주위의 많은 분들께 진정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35년 차 치과의사인 나는 질병, 슬픔, 절망에 이어 사랑과 관심이라는 최고의 로또를 맞았다. (이 글은 사랑하는 아내의 동의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