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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I 윤리 매뉴얼 1.1

이지나 칼럼

“14살 환자가 보호자인 어머니와 함께 치과에 내원했다. 환자의 앞니가 고르지 않아 교정치료가 필요하다는 권유를 받았는데, 오디션 스케줄이 다음주로 잡혀 있어 라미네이트나 크라운으로 치료해 달라고 한다. 환자의 나이를 고려할 때, 돌출되어 있는 치아부분을 삭제하다가 치수노출과 그에 따른 신경치료의 가능성이 높고, 100세를 사용할지도 모르는 건강한 치질을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환자는 이번 오디션이 본인의 진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금 치료를 해달라고 하고, 보호자도 치료를 해달라고 한다.”

 

어떤 결정이 옳은가? 환자의 치아 건강을 위해 라미네이트는 해줄 수 없다고 거절해야 하나? 환자 본인에게 중대한 문제가 걸려있어서, ‘치과적으로 최선책이 아니더라도 결과는 본인이 감당하겠다’고 하는데, 환자나 보호자는 어느 정도로 치과치료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현대의 소비자 중심 문화가 가져온 외모 우선주의를 의료혜택으로 보아야 하나, 아니면 배고픈 치과원장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치료에 대한 결정권은 치과의사, 환자, 보호자 중 누구에게 있나?

 

세계보건기구(WHO)는 1948년에 건강은 “온전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웰빙 상태이며, 단순이 질병과 허약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라고 정의를 내렸는데, 웰빙이란 용어가 가치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강’ 이라는 단어도 특정한 ‘생리적 상태’를 표현하기 보다는 우리가 ‘바라고 소중히 여기는 상태’에 대한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

 

치과의사와 치의학이 추구하는 구강건강의 목표와 환자가 추구하는 본인의 최적의 구강건강이 다를 수 있다. 환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통증에서 벗어나는 것에 구강건강의 목표를 두고 있는 반면, 치과의사는 환자의 구강건강을 증진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효과적인 치료’라는 용어 조차 가치-중립적인 말이 아니고, ‘환자에게 최선’이라는 가치 판단을 포함하고 있다. 

 

세계치과의사연맹(FDI)에서는 구강건강을 “자신있게 그리고 두개안면부의 통증이나 불편함, 질병 없이, 말하고, 웃고, 냄새 맡고, 맛 보고, 느끼고, 씹고, 삼키고, 얼굴표정으로 여러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을 포함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만약 치성으로 인한 심한 통증이 있는 환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 사람은 말하고 웃고 삼킬 수 없을 뿐 아니라, 통증으로 웃거나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구강건강의 상태는 어떤 개인이 선호하거나 원하는 대로 얻어지거나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치성 농양이 생긴 환자는 맘대로 치료를 연기하거나 치료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없는 약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데, 스스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는 치과의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는 치과의사가 권하는 치료가 치과의사의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믿어야 하고, 자신을 치료하는 치과의사가 치료할 실력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반면에 환자의 이런 취약성이 상대편인 치료자에게 오히려 윤리적 책임감을 요구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환자가 자의로 치료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는 하나, 선택사항들의 경중이나 좋고 나쁜 점을 환자에게 제시할 사람이 치과의사이기 때문이다.

 

환자와 치과의사 사이의 관계는 수익자(beneficiary)와 수탁자(fiduciary)의 관계에 가깝다. 수탁자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의 금전이나 어떤 소중한 것을 책임지고 맡아주는 사람’인데, 환자가 치과의사에게 맡긴 것은 치과의사 개인 뿐 아니라 치과의료집단 전체에 대한 신뢰이다. 집단을 대표하는 협회나 보건복지부는 교육과 자격 검증을 통해 치과의사들이 최신의 지식과 기술을 갖추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개개인의 치과의사는 환자들의 신뢰에서 오는 윤리적 도전을 매 순간 현실에서 응대하고 있다. 진료실에 내원한 환자들의 질병의 경중과 응급성, 치료의 필요성과 해당 환자의 경제적인 문제, 전염의 가능성과 환자의 비밀보장 등의 문제를 어떻게 저울질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가를 예로 들 수 있다.   

 

과학으로서 치의학과 의술로서 치의학은, 모두 다 치과의사에게 ‘가치 판단’을 내리도록 요구한다. 그래서 “치과의료에 어떤 윤리가 적용되는가” 라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다. 치과의료 자체가 윤리의 영역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