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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종합병원 예방치과의 마지막 이야기

시론

상급종합병원의 모든 진료과목이 수익성이 좋다면, 병원장의 입장에서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러나, 상급종합병원도 나름 ‘장미의 가시’ 같은, 돈은 못 벌지만 데리고 함께 가야 하는 의과 과목이 있는 것처럼, 종합병원 치과에서도 어쩔 수 없이 공존해야 하는 과목이 있을 것이다. 종합병원 치과에 5개 과목 이상을 두어야 인턴과 레지던트와 같은 수련의를 선발하여 교육할 수 있다고 현행법에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병원장의 입장에서는 5개 과목의 구성을 어찌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종합병원의 입장에서는 구강악안면외과 한 과목만으로도 아쉬움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강악안면외과 단독 과목(구강악안면외과 수련의 선발이 가능하다.)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경우의 수의 장단점을 살펴보면 종합병원 치과의 구성의 이치를 독자들께서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이 모두 가능한 5개 과목의 경우, 일단 법에 명기되어 있듯이, ‘구강악안면외과’는 ‘당연 과목’으로 넣어주고, 독자분들 머리 속에서 바로 튀어 나오는 ‘치과보철과’와 ‘치과교정과’를 순서와 관계없이 3위까지 적어둘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 많이 벌고, 수련과목으로 인기 있는(?) 과목이니 그렇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과목은 어떤 과목이겠는가? 보통의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치주과’, ‘치과보존과’. ‘소아치과’ 중 두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고 볼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고민을 해 보아야 하는 대목이 ‘이해상충(利害相衝)’이라는 말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부딪친다는 의미로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필자의 비판적인 시각의 관찰 결과, 구강악안면외과와 치과보철과, 치과교정과는 싫어도 서로 의지하면서 돕는 것이 가능한 듯하다. 그 다음 순서의 진료과목을 정하는 일은 당연히 ‘구강진료수요’에 기초할 것이다. 당연히 ‘치과보존과’와 ‘치주과’가 그 다음 순서에 등재하게 된다. 임플란트 환자가 쇄도하는(?) 종합병원 치과라면 치과보철과와 구강악안면외과를 도울(?) ‘치주과’는 더욱더 필요할 것이다. 치과보존과의 경우는 비교적 ‘이해상충’이 적은 과목이 되지만, 수익성에서는 앞서의 세 과목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 있는 과목들 모두가 의뢰해야 하는 분야이므로, 담당과목의 교수 입장에서 병원측의 치과 내 타 인기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우(?)에 만족한다면, ‘장수’할 수 있는 과목이 된다고 본다.

 

다음 인기과목인 ‘소아치과’는 어떠할까? 필자의 시각으로는, ‘이해상충’의 문제 때문인지 타과들이 ‘소아치과’를 영입하는데 그리 적극적이지 않아 보이고, 설사 선발을 원해도 ‘소아치과’ 전문치의 수 자체가 적은 편인 듯하다. 이제 남는 과목이라면, ‘구강악안면영상치의학과’와 ‘구강내과’, 그리고 ‘구강악안면병리학과’, ‘예방치과’가 남는다. 물론, 최근 다수가 배출된 ‘통합치의학과’도 있지만, 지금 하는 이야기는 이 분들이 배출되기 훨씬 이전의 version이니 일단 그냥 넘어갔으면 한다. 그러면, 위에서 수련과목으로 ‘예방치과’를 포함한 3개 과목보다는 훨씬 인기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과목으로 ‘구강내과’가 있을 것이다. 이 과목의 경우도 전문치의의 수가 충분치 않아서인지 지원자도 흔하지 않을 뿐더러 위의 기존 인기과목과 진료항목 간의 ‘이해상충’의 관계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아마도 필자가 선택될 때에는 필자가 현재 근무하는 치과에 지원자가 특별히 없어서 그리 된 듯도 하고, 달리 ‘이해상충’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버릴 수 있는’ 카드로 ‘예방치과’를 택한 것 같다. 처음에는 힘센(?) 3개 과목 교수들 모두 필자에게 ‘그냥 존재’만 해 달라고 했고(아마도 인기과목 3개 과의 수련의를 무사히 선발하기 위해),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도 고마운 마음으로, 타과 대학원생들 지도도 도와주고, 병원 직원들 진료도 저렴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수년이 지나서 제도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되니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서, 무언가 기본 수익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임상교수인데도 대학, 대학원 일에도 깊이 관여를 시키는 분위기가 되면서, 개업할 때보다도 오히려 업무량이 많아졌다. ‘이 병원, 이 대학에서 무언가 될 수 있을까?’를 꿈꾸었던 시기였지만, 곧 헛된 상상의 모래성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면서, 그때부터는 나만의 Burkit list를 만들어, 예방치과의 일이 아닌 일들을 하나씩 떼어내면서 정리를 해나갔다.

 

전국에서 예방치과를 개설해 있으면서 병원에서 수련을 시킬 수 있는 곳은 필자가 근무하는 예방치과와, 강원도에 있는 대학치과병원 예방치과, 그리고 충남에 있는 대학치과병원 예방치과의 세 곳에 불과하다. 세 곳의 수련기관을 제외한 곳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예방치과 레지던트는 수련 기간 중 1년간 무조건 위의 세 군데 수련병원에서 파견 수련을 받아야 하는데, 위의 세 곳 중 선택한 곳에서 수련을 받아서 1년간의 수련기간을 채우게 된다. (여러가지 면을 고려하여 보건복지부에서는 ‘예방치과’와 같은, 수련병원에 존재하기 힘든 과목을 개설한 종합병원에 ‘가산점’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수년 전에는 예방치과 수련의를 교육시켜 예방치과 전문의도 1명 배출시켰고, 필자가 근무하는 예방치과를 거쳐 교육받은 타 기관의 파견수련의가 두 명이나 있으니,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꽤 해낸 것 같다. 아울러, 2년 전에는 치과가 확장되면서, 국내에서는 어느 예방치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예방치과 진료실을 구비하게 되었다.

 

당시 진료실 설계 때부터 필자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계획을 수립했던 것 같다. 필자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상급종합병원 예방치과를 후배 예방치과전문의에게 승계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해 두어야 했다. 의료원 입장에서는 ‘치과’를 수익원으로 삼고자 할 것이 분명한데, 필자가 굳이 이를 부정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 예방치과를 제외한 4개 과가 간절히 원하는 ‘치주과’를 선발하는 일이 필자의 퇴임 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일단 설계부터 치주과와 예방치과에 맞게 독립 공간을 확보했고, 구강악안면외과의 곁에 위치하는 것을 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4개 과 모두가 필자의 의도를 별도로 설명하지 않아도 동의해 주었다. 다음의 단계는 퇴임 6개월을 앞두고 의료원 측의 의견을 묻는 과정으로, 필자의 퇴임 후 예방치과의 잔류를 원하는지, 치주과의 신설을 원하는지를 물어보았고, 며칠 후 의료원 보직자 회의 결과, ‘치주과’를 원한다는 답을 듣고, 아쉬운 마음은 컸으나 그들의 선택을 인정해 주었다. 이제 다음 단계는, 필자가 속한 학회에 그간의 경과보고를 하고, 안타깝지만 2024년 2월부로 대한민국의 상급종합병원 예방치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보고하는 일로 마무리를 지었다.

 

6개월 후의 계속구강관리 진료는 다른 교수님께 의뢰드리는 이유가 필자의 정년퇴임이라는 사실을 알고 환자들은 악수를 청하면서,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건네는 일이 요즈음의 예방치과 진료실 풍경이다. 이와는 달리 이제야말로 진심으로 편히 지내고 싶어하는 필자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예방치과로 몰려드는 ‘구취증 환자’는 연말까지의 진료약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몰려드는 ‘구취증 환자들’의 필자에게로의 초진 진입 차단을 퇴임 3개월 전에는 해야 할 것 같다는 담당 치과위생사의 말에, “이 정도면 수익면에서도 병원에 도움이 되는 예방치과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닌 채, 지난 20년간 안식년은커녕 안식월(安息月?)도 없는 임상교수가 매년 절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연간 21일간의 휴가를 이번에는 여한 없이 다 사용해 보려는 시도를 늦게나마 해 보고 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