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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겨울이다

이미연 칼럼

날씨가 사뭇 춥다. 그예 겨울이 오고야 만 것 같아 씁쓸하다. 필자는 1년여 전 치의신보에 ‘우리의 가을’이라는 글을 기고한 적 있다. 우리에게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 회원들의 안위와 생존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글이었다. ‘회원의 당면한 필요를 충족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근거없이 협회를 비방하고 업무력을 낭비’하지 말고 내분을 지양하며 협력을 도모하자고도 썼다. 일을 맡은 사람이 잘못을 했다면 응당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지면 될 일이나, 도를 넘어선 시시비비 제기를 응대하느라 업무시간과 인력이 저당 잡히면, 그 낭비된 자원만큼 고스란히 회원의 피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협회 홍보이사로 일하고 있었다. 협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통상 두 명인 홍보이사 자리를 부족한 본인 혼자 맡게 되어서 심정적으로도 참 힘들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치의신보 글을 쓴 뒤에 협회 정기감사에서는 그간 했던 홍보업무에 대한 평가나 질책 또는 대안에 대한 제시는 전혀 없이, ‘왜 치의신보에 글을 썼느냐’고 삼십 분 가까이 혼나야 했다. 또 누군가의 이름을 언급한 적도 없건만, 필자의 이름을 공공연히 들먹이며 필자 글엔 있지도 않았던 ‘선동’이니 ‘날조’니 하는 북한방송에서나 볼 법한 단어로 비난하는 글이 어느 신문에 실리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는 신문사 기념식에 외빈으로 참석하였다가 ‘더 글로리’의 학폭 피해자처럼 옷깃을 잡혀 으슥한 구석으로 끌려가 ‘당신이 뭐나 되는 것 같나’ ‘내가 당신을 가만 두지 않겠다’ ‘단단히 혼을 내 주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힘들었으니 위로해달라는 말씀이 아니다. 특별히 여성이 임원을 하는 것에 대한 혐오라든가 지역에 대한 차별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이미연이라는 개인 하나에 대한 싫은 감정에 대해서는, 굳이 누구처럼 고소 고발로 귀결하려는 마음은 없다. 책무를 맡은 자리에서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듯이 누군가를 사사로이 미워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런 개인적인 증오를 공적 업무영역에 발산하는 상황이 정상적이라고 여기시는지 회원들께 듣고 싶다.

 

여러 선배님 앞에서 말하긴 부끄럽지만, 필자도 세상을 제법 살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과 대학원 2년 그리고 치의학전문대학원 4년까지 도합 22년의 교육을 받았지만, 운이 좋았는지 학교폭력을 구경해 보지 못했다. 회사원 생활 7년과 봉직의 생활 6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힘든 일이 없기야 했겠냐마는, 이렇게 린치를 당해본 적은 없었다. 특히 치의생활을 하고 회무를 접하며 알게 된 선후배들은 요즘 그 어떤 집단과 비교하여도 단연 손꼽히게 점잖은 분들이었기에, 그 격차가 더욱 당혹스러웠다.

 

선거에서 다른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토론을 하고 이견을 내며 경쟁하다 보면, 사람인지라 감정을 품을 수도 있다. 상대방이 못내 얄미운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회적 위치와 체면을 알 만한 연배에, 꼭 이런 방식 밖에는 자기 표현을 못하는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안쓰러운 마음과 별개로, ‘이런 이들이 회원을 위해 일해야 하는 자리를 맡지 않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이때부터였다.

 

회무란 회원을 대신해서 회원의 삶을 돌보는 일이라고 말씀드린 바가 있다. 또한 회무란 우리의 3만여 회원이 타고 있는 방주를 삭풍이 이는 밤바다에서 이끄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서쪽으로 나아갈지 남쪽으로 나아갈지는 배를 책임지는 선장에 맡기기로 하고 우리는 선장을 뽑았다. 이끄는 대로 돛을 펴고 닻을 올리고 노를 저어야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배가 뭍에 다다를 때까지는 배를 뒤흔들거나 뒤집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배를 타는 승객의 상식이다. 선장이 모두의 안위를 책임지는 것보다 자신의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적어도 우리 배의 모두와 운명을 같이 하려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선장을 빌미로 배를 그예 부수고 승객을 바다에 빠뜨리는 것을 획책하는 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협회를 무력화하고 회원 간의 불화와 반목을 조장한 폐허 위에서’ 무엇을 도모하고 싶은지는 필자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영원히 알 수 없기를 소망한다. 부디 우리 3만여 치과의사 회원들이 배마저 빼앗겨 얼음장 같은 겨울 바닷물에 희생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