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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주위 흔한 도시나무 – (3) 회양목

Relay Essay 제2600번째

봄이다. 봄이 오면 사방에 하얗고 노란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때 내 무릎 크기의 작은 나무가 아무도 모르게 연한 연두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이 나무가 바로 회양목(淮陽木)이다.


회양목은 정말 흔한 나무다. 회양목은 아파트 정원을 둘러싸서 경계를 이루며 통로 옆을 줄지어 서서 지켜주는 흔한 나무로 그 키가 작고 활엽수임에도 불구하고 일년 내내 녹색잎을 유지하는 상록수이고 음지에서도 잘자라서 아파트 테두리를 구성하는 데 적격이다. 이 나무가 봄에 별 모양의 향긋한 꽃을 피워내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봄에 산책하면 코에 진동하는 향긋한 봄 냄새의 대부분이 이 회양목 꽃향기다.


회양목은 그 키가 커 봐야 2~3m인 작은 소교목이다. 천연기념물(제459호)로 지정된 여주 영릉의 회양목은 나이 약 300살, 높이 4.7m, 둘레 63c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회양목이다. 


회양목은 영어이름이 ‘Korean boxwood’인데 정말 박스 모양 같기도 하고 무성한 잎을 살짝 젖혀보면 내부가 텅 빈 것 역시 박스 같기도 하다. 아무튼 언뜻 보면 나무가 아니라 들풀로 오인할 정도로 작고 너무 흔해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봄이 되면 짙은 향긋한 꽃을 피워내고 꽃이 지면 귀여운 원숭이얼굴 같은 열매를 맺는다. 


회양목은 경북 북부, 강원도, 황해도의 석회암지대에 주로 서식한다.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의 회양(淮陽)에서 많아 회양목(淮陽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회양목은 자그마한 나무지만 예로부터 고급나무로 아껴온 나무다. <삼국사기>에 보면 6두품과 5두품은 “자단, 침향, 회양목, 느티나무, 산뽕나무를 말 안장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금지하고 있는데 회양목이 5대 귀한 나무중 하나로 인정받은 것이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는 점을 치는 도구로 회양목을 사용하였고 의정부에서 호패법에 의하면 4품이상의 관리는 녹각대신 회양목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세종 25년(1443년)에는 동궁을 출입하는 표찰로 회양목을 사용하였고 호리병재료로 쓰기도 하였다.

 

회양목은 물관세포와 섬유세포의 크기가 작고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목질이 치밀하여 목활자나 도장으로도 많이 사용하였고 서민들의 장기알로도 사용되어 서울과 경기의 노래인 <장기타령>에는 “만첩청산 쑥 들어가서 회양목 한가지 찍었구나. 서른 두짝 장기 만들어 장기 한 판 두어보자….”라는 구절이 있다. 


회양목은 자라는 속도가 느리고 크게 자라지도 않아 옛 사람들은 일이 잘 진척이 되지 않으면 황양액윤년(黃楊厄閏年)이라고했다. 이는 ‘회양목은 일 년에 한 치씩 더디게 자라다가 윤년을 만나면 오히려 세치가 줄어든다’는 소동파 시에서 나온 말이다. 

 

 


이렇듯 작고 느리게 자라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회양목이 꽃을 피어내는 봄이 왔다. 아주 잠시 피었다 지지만 향기가 짙어 곧 많은 벌들이 꿀을 얻으러 찾아올 것이다.


올해는 우리 집 앞을 말없이 지켜주는 회양목 한 그루와 친구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園中草木春無數 (원중초목춘무수)
只有黃楊厄閏年 (지유황양액윤년) 

정원의 풀과 나무 봄이 오면 무수히 자라건만
오직 황양목(회양목)은 윤년에 재앙을 당한다네 
 - 소동파의 시 “퇴포(退圃)”에서 -